태안 문화관광해설사, 권문선
인터뷰 장소는 태안군의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이었다. 달리는 길 왼편으로 종종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어째서 바다는 언제 마주쳐도 이렇게 설레는 것인지. 꽃지해수욕장의 긴 모래사장 위로 파도가 들이칠 때마다 흰 갈매기들이 종종걸음으로 파도를 피했다. 수평선 안쪽으로 불쑥 솟은 바위가 멋졌다. 태안 8경의 하나인 할미, 할아비 바위였다. 하늘이 유난히 푸르렀던 날, 이곳에서 문화관광해설사인 권문선 씨를 만났다. 문선 씨는 해설사로 일하면서 또 언제 어디서든 기후위기에 목소리를 높이는 환경교육사로도 일한다. 뿐만 아니라 지역의 작은 문제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바꾸려고 노력하는 열렬한 활동가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태안의 생태를 사랑하는 마음과 그것을 잘 보존해 후대에 전하겠다는 삶의 태도가 문화관광해설사/환경교육사라는 일에 잘 어우러져 있는 것 같았다. 문선 씨가 자신이 직접 내린 것이라며 보온병에서 따듯한 커피를 따라 나눠주었다. 일회용 컵이 아닌 작은 스텐 컵을 건네어 주는 모습에서 이이의 진심이 따듯하게 다가왔다.
문선님이 가장 자기다운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태안이요. 공간을 더 좁혀서 이야기할 수가 없네요. 제가 하는 일의 태반이 태안 안에서 움직이며 하는 거라 정말 더 좁힐 수가 없어요.
태안이라니, 이 인터뷰 시리즈에서 가장 큰 공간을 말씀해주신 것 같아요. 태안에서 어떤 일들을 하고,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12년 전부터 문화관광해설사를 하고 있어요. 그밖에도 하는 일이 많아요. 제가 저를 표현할 때 ‘25시간을 산다’고 말할 정도예요. (웃음) 태안에서 문화관광해설사를 너무 하고 싶었는데 자리가 없었어요.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린 게 6년이에요. 그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생태와 환경 공부를 했어요. 그게 자산이 돼서 지금은 여기저기 다니며 환경교육사로도 활동하게 되었죠. 곰섬이라고 예전에 섬이었다가 지금은 퇴적이 돼서 육지와 연결된 곳에 저희 집이 있어요. 5년 전부터는 거기서 펜션도 하고 있어요.
바쁜 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가장 나다운 공간으로 태안을 꼽으시고 풍경을 하나 그리셨는데요.
네, 이게 뭘 그린 거냐면 신두리 해안사구의 모래언덕을 그린 거예요. 해설사가 되기 전에 생태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게 신두리 사구였어요. 지금도 가장 애정을 갖고 해설하는 곳이에요. 거기가 자꾸 훼손되는 문제가 일어나서 그걸 계기로 문화유산보존학을 공부하기도 했어요. 그때 신두리 사구에 관한 논문을 준비했을 정도로 그곳에 품은 애정이 커요. 신두리 사구는 정말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곳이에요. 우리나라의 마지막 남은 생태보고이기도 하고요. 특히 더 사랑하게 된 게, 해설사를 준비할 즈음이 제가 암 수술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거든요. 그런 상황이었는데, 거기서 배우는 즐거움이 더 큰 거예요. 안색도 안 좋고, 항암치료로 머리카락도 한 올 없어서 두건을 쓰고 다녔는데, 그러면서도 조류, 곤충, 지질…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거든요. 그러니까 사랑할 수밖에 없죠.
나다운 공간으로 태안을 꼽으실 수밖에 없겠네요. 태안에서 보내는 시간 중 가장 문선 님 다운 시간은 언제인가요?
저는 삶과 일이 하나예요. 해설하러 나오는 이 시간이 저를 찾는 시간인 거죠. 현장에 나와서 이곳을 즐기며 일하는 게 곧 나다운 시간이에요.
태안을 정말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태안에서 가장 사랑하는 게 있다면 뭘까요?
태안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이라면, 자연이죠. 이 자연환경 자체가 태안의 자산이에요. 개발로 그것이 조금씩 조금씩 훼손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게 정말 안타까워요. 태안에서 자연환경이 잘 보존돼있는 곳은 다 국립공원 지역이에요. 국립공원이 해제되면 경제적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겠죠. 하지만 저는 그런 개발에 반대하는 입장이에요. 자연이 훼손되면 결국 다시 인간이 힘들어질 테니까요. 그래서 제가 사랑하는 태안의 자연환경이 훼손되지 않게 열심히 떠들고 있어요.
사명감인 거군요.
네, 되게 사명감이 있어요. 그래서 정말 열심히 떠들어요.
어떻게, 누구를 향해서 떠들고 계시나요?
계속 바뀌어왔어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데, 길을 가다가 잘못된 모습이 보이면 이전에는 막 관련 기관에 대고 떠들었는데 그게 통하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직접 안전신문고에 신고해요. 안전이나 쓰레기 등등 공익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으면 바로 올려요.
결과가 어떤가요?
제가 행동한 대로 개선되고 있는 걸 보면서 보람을 많이 느껴요. 저 얼마 전에 20만 원 포상금도 받았어요. (웃음) 충남사회혁신센터에서 진행한 ‘보통의 혁신가’에 함께한 계기도 그거였어요. 바다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개인이 하면 별로 듣는 사람이 없어요. 올해는 ‘보통의 혁신가’를 통해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보통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캠페인을 하고, 목소리 내는 계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의미 있고 좋았어요.
"혁신이 뭐 대단한 게 아니라, 내가 가진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게 혁신인 것 같아요.
모두가 불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절대 저절로는 변하지 않아요. "
‘보통의 혁신가’에 함께하셨고 이번에도 ‘혁신가’로 소개될 텐데요, 혁신이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혁신이 뭐 대단한 게 아니라, 내가 가진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게 혁신인 것 같아요. 예전엔 저도 이렇게 떠들고 다니지 않았어요. 어딘가 불편한 일이 있어도 참았죠. 그런데 그러다보니 정말 아무것도 변하지 않더라고요. 모두가 불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절대 저절로는 변하지 않아요. 그럼 누군가, 그러니까 나라도 나서서 이걸 깨야 되겠다는 생각을 어느 순간 하게 됐어요. 그렇다고 제가 완벽한 건 아니에요. 저도 실수하고 보기에 따라서는 안 좋은 면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무언가 바꾸자 고치자 말하게 되면,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되고 나부터 본보기를 보이고 실천하게 되거든요. 결국은 나도 함께 발전하는 거죠. 저는 그런 게 혁신이라고 생각해요.
아까 암에 걸리셨던 이야기를 잠깐 하셨는데요….
2001년에 미국에서 큰 사고를 당해서 죽었다 살아났어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이후로는 자꾸 몸이 아프더라고요. 지금도 림프 부종이 있어요. 여러 가지로 몸이 괴롭고 힘든데, 참 감사하게도 제가 타고나기를 긍정적인 성격인가 봐요. 그래서 잘 이겨내요. 병이 오면 병이랑 같이 지내고, 치료해서 나가게 만들면 되지 그런 생각이에요. 아프다고 누워 있으면 더 아프고 힘만 들더라고요. 일을 안 하거나 치료에만 집중한다고 해서 크게 더 좋아지지도 않고요. 그래서 이렇게 움직이면서 살기로 했어요.
해설사 이전에는 어떤 삶을 살아오셨나요?
지금과는 다른 일을 했어요. 백화점 의류 코너에서 직원 교육을 담당했답니다. 교육팀에서 일하면서 130명 되는 직원들을 아침마다 교육시켜서 내보내고 그랬거든요. 그때 결혼할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너무 즐겁게 일했는데, 얼떨결에 결혼을 하고 그렇게 인생이 흘렀네요.
교육팀에서 일했다니 지금과 그렇게 다른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혹시 살아온 과정 중에 후회되는 일도 있으세요?
어떻게 후회가 없겠어요. 인생에서 후회되는 게 한두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결혼이에요. 그렇다고 결혼 생활이 나빴다는 건 아니에요. 아이들도 다 잘 컸고 다 좋아요. 다른 게 아니라 경력단절 때문에요. 지금도 여전히 그 말이 남아 있지만, 제 때는 더 심했어요. 결혼하면 그 이전에 어떻게 살았건 경력이 무조건 끝나는 거예요. 결혼하지 않고 계속 일을 했다면 지금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살짝 궁금해요.
하지만 태안을 만났으니 됐어요. 태안을 알게 된 계기가 남편 일 때문에 태안에서 1년 정도 살게 된 적이 있는데 그게 인연이 된 거예요. 그때 태안의 자연과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몇 년 후 아예 정착하게 된 거거든요. 그리고는 운명처럼 해설사가 되어서 지금 같은 삶을 살고 있고요.
해설사 일 중에 가장 뿌듯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제가 해설하는 곳 중에 천리포수목원이 있어요. 미국인이었다가 한국으로 귀화한 민병갈이라는 분이 설립한 곳인데, 그분이 귀화하면서 자신이 평생에 걸쳐 만들고 가꾼 아름다운 자연을 우리에게, 또 이후 세대에 다 주고 갔어요. 이걸 우리가 잘 보존해서 우리도 이후 세대에게 다시 잘 넘겨주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좋은 것들을 같이 누릴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게 바로 지속가능한 사회의 한 모습일 테고요. 민병갈 씨가 바랐던 것처럼 천리포수목원이 300년 뒤에도 울창하게 남아 있다면, 그래서 우리 후손들이 그걸 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어떤 사람들은 막 울기도 해요. 메시지와 스토리의 힘인 거죠. 신두리 사구 같은 경우에도 안타까운 부분을 공감하게 만들어서 그분들이 생태 보존에 나설 수 있다면, 그럴 때 뿌듯하죠.
문선 님을 만나기 전까지 문화관광해설사가 단순하게 관광지나 관광스팟을 설명하는 직업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세상이 더 나아지도록 다양한 의미와 가치를 전하는 직업이네요.
맞아요. 저는 그래서 해설사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다 나오는 그런 단순 설명을 전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마음을 담아서만 전달할 수 있는 게 있거든요. 저는 해설사들이 그 속에 숨어 있는 가치와 철학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화관광해설사는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여러 가지 것들을 서로 연결해주고 거기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에요. 그러니 그런 일을 한다는 게 너무 감사하죠. 단편적인 역사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이 역사가 이어져서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까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점, 또 이게 환경과 어떻게 연관되는가 하는 이야기도 할 수 있고요. 그래서 이 일을 참 좋아해요.
역사와 문화와 환경을 연결 짓는 게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가닿을 것 같아요. 문선 님의 태안에 대안 열정과 긍정성도 함께 전달될 것 같고요. 혹시 불안할 때는 없으신가요. 저는 기후위기가 더 심해져서 우리 세대에 다 잃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거든요.
당연히 불안하죠. 제가 손녀가 넷이에요. 전염병이나 미세먼지 같은, 앞으로 그 아이들이 살아갈 환경을 생각하면 제 자식들에게 아이를 더 낳으라는 말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이제 두 돌 된 손주가 있는데, 그 애는 우리가 마스크를 기본으로 삼고 생활할 때 태어난 아이에요. 앞으로도 아이들이 마스크 쓰고 살아갈 걸 생각하면 너무 안타까워요. 그래도 그런 불안감이 있어도 계속 끊임없이 실천하려고 노력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이야기하죠. 환경 교육이나 해설을 할 때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지구를 구하기 위해 대단한 준비가 필요한 게 아니라고요. 내 생활의 작은 부분 하나를 바꾸는 게 하나하나 모이게 되면 지구가 좀더 지속가능하게 갈 수 있을 거라고요.
"이제 두 돌 된 손주가 있는데, 그 애는 우리가 마스크를 기본으로 삼고 생활할 때 태어난 아이에요.
앞으로도 아이들이 마스크 쓰고 살아갈 걸 생각하면 너무 안타까워요. 그래도 그런 불안감이 있어도 계속 끊임없이 실천하려고 노력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이야기하죠."
마지막으로 꿈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어요. 소박한 꿈과 원대한 꿈에 대해서요.
소박한 꿈은 뭐… 아까 계속 얘기했지만, 건강이 가장 우선이죠. 남들은 왜 피곤하면 눕거나 앉으라고 하잖아요. 저는 누우면 완전 환자가 되니까, 늘 나 제 자신과 싸우는 셈이에요. 누울 상황이면 눕지 않고 나와서 걸어요. 그렇게 해서 그 아픔을 견뎌내요. 그런 만큼 건강이 가장 소박한 문제이기도 하고 또 큰 문제이기도 해요.
원대한 꿈이 있다면요? 만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이곳이 어떤 세상이 되길 바라세요?
불편하긴 했지만, 제 유년 시절의 그 시대가 다시 왔으면 좋겠어요. 60년대에서 70년대에 이르는 시대요. 사람들은 옛날 얘기 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 시절이 지금 제 정서나 살아가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그 감성이 지금까지 저를 풍요롭게 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하고요. 자연 환경도 좋았고, 사람 간에 배려하는 마음도 컸어요. 지금처럼 각박하지 않았거든요. 영상을 다시 돌리듯이 그때로 돌려놓고 살아보라고 하면 전 너무 좋을 것 같아요. 내 나이를 젊게 해달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죽음에 관한 두려움 같은 건 없으니까요. 무슨 뜻인지 알죠? 다만 그 시대의 어떤 느림, 천천히 가는 삶들, 그런 것들이 그리워요.
자신의 퇴근 시간에 맞춰 터미널까지 차로 데려다주겠다는 문선 씨의 친절을 사양하지 않았다. 문선 씨의 퇴근 시간까지는 1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다. 가져온 노트북으로 작업을 할까 했는데, 문선 씨는 1시간 동안 꽃지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는 법을 알려주었다. 문선 씨의 조언대로 꽃지를 즐기기로 했다. 흰 조개껍질들과 파도가 모래 위에 만들어내는 흰 거품을 자박자박 밟으며 해안을 따라 걸었다. 조용히 파도가 이는 소리와 가끔 끼룩거리는 갈매기의 울음, 바람에 따라 풀과 나무들이 사락사락 부딪는 소리가 커다랗게 나를 채웠다. 자연의 일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평선 너머로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름다웠다. 이 풍경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문선 씨의 바람대로, 오래오래.
<혁신살롱 프로젝트>
충남지역에서 자신만의 일과 활동을 이어나가며, 조금이라도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이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어떤 일들을 하며,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연재합니다.
제작 | 충남사회혁신센터x사과나무
글·정리 | 김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