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고에서 활동하는 청년들, 사회적협동조합 온어스
사회적협동조합 온어스는 올해 1월 창립한 ‘새삥’ 협동조합이다. 온어스의 사무실이자 코워킹 스페이스인 ‘도고상사’는 도고의 신언3리 마을에 있다. 온어스에서 이사장을 맡고 있는 최낙원 씨는 도고의 가을날을 이야기하며, ‘요즘이 가장 예쁜 시기’라고 소개해주었다. 높은 건물로 자꾸 시야가 막히는 시내와 달리 도고 지역은 지평선까지는 아니어도 방해 받지 않는 평평한 풍경이 펼쳐진다. 가을이면 황금빛 들판! 그만큼 도고는 아산에서도 개발이 덜되고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온어스는 ‘도시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이런 곳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이곳에 터를 잡았다.
온어스는 최근 행정안전부의 공모사업 ‘청년 마을 만들기’를 통해 ‘도고 한 달 살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 외에도 ‘도고 온천장 플프마켓’, 주민 친화 프로그램 ‘핫도고’ 등 새롭고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활발하게 활동 중인 온어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사장인 낙원 씨와 조합원 다정 씨를 만났다.
먼저 낙원 씨와 다정 씨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을 소개해주세요.
다정 제 로망 중 하나가 큰 테이블을 갖는 거였어요. 그래서 도고로 이사하면서 집이 넓어지자마자 제일 먼저 큰 테이블을 샀어요. 테이블 위에 스마트 모니터를 두고, 보통 여기 앉아서 밖에서 다 못 끝낸 일을 해요.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볼 때도 있고, 책을 읽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밥이나 간식도 이 자리에서 먹어요. 거의 대부분의 일이 이 테이블 위에서 이뤄지네요. 최근엔 ‘한 달 살이’ 프로그램 때문에 자주 집에 있지 못해 좀 아쉬웠지만요.
낙원 저는 되게 심플해요. 요즈음 일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지금 보이는 이 자리, 제 자리에서 제일 시간을 많이 보내요. 여기가 코워킹 스페이스다 보니까, 혼자 일하기보다는 여러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는 때가 많고, 점심도 같이 먹어요. 저는 공간보다 노트와 노트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하는 일들, 살아가는 모습, 앞으로의 계획, 지나온 결과들까지 다 담겨 있으니까요. 그게 있는 자리면 되는 거죠.
일에 집중하고 계신 게 느껴지네요. 온어스에서 하는 일이 재밌으신가요?
낙원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고, 또 제가 못 하는 일은 같이 일하는 분들이 채워주니까 그게 재밌는 것 같아요. 제가 못하는 거를 애써서 한다면 힘들 것 같은데… 온어스 하면서 일을 많이 하지만 내가 잘하고,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니까 힘들지는 않아요. 저는 집과 회사에 대한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편이에요. 누구는 집과 회사가 구별되지 않는 걸 ‘불행하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냥 집이든 회사든 쉴 수 있고, 마찬가지로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혼자 야근을 할 때면 온어스 LED 전광판에 불을 켜놓거든요. 그럼 뭔가 기분이 좋아요.
다정 ‘커리어를 쌓고 있는 멋진 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웃음)
낙원 하하, 그렇진 않아요. (웃음)
‘내가 못하는 일’을 같이 활동하는 분들이 채워준다고 했는데, 어떤 일이 그런가요?
낙원 가령, 이 공간만 해도 그래요. 제가 인테리어에 정말 재능이 없어요. 뭘 설치하는 방법이나 기계도 모르고요. 그런 부분을 온어스 멤버이자 지역에서 간판사업을 하시는 중호님이 많이 도와주고 큰 힘이 되어주셨어요. 나머지 인원들도 시간 내서 도와줬고요. 그분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이 공간을 만들 수 있었어요. 대신 저는 집주인분을 설득하고 신뢰를 얻는 일을 하고요. 구성원들이 서로의 장점을 잘 알고 있기에 부족한 부분을 더 잘 채워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온어스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이 공간에 모두의 마음과 노력이 담겨 있었군요. 원래 어떤 공간이었나요?
낙원 예전엔 보신탕집이었대요. 몇 년간 방치되어 있으면서 폐허가 다 됐더라고요. 시청 과장님도 와서 보시곤 ‘안 될 것 같다’라고 하실 정도로요. 그렇지만 저는 날 것의 느낌이랄까, 이 공간의 느낌이 좋았어요. 바로 앞에 편의점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길목에 자리 잡고 싶었어요. 주민들 또 상인 분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곳으로요. 처음에 집주인분도 탐탁하지 않아 했는데, 계속 저희가 설득했어요. 우리가 직접 페인트를 칠하고, 조명을 달고… 직접 하나하나 만들어나간 공간이라 더 애정이 있는 것 같아요.
최근 ‘한 달 살이’ 프로그램을 하느라 집에 자주 못 가셨다고 했는데, 어떤 프로그램이었나요? 기억나는 에피소드나 사람들은요?
다정 ‘한 달 살이’는 청년들이 도고에서 4주 동안 지내면서, 도농 라이프를 실험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이에요. 1기는 온어스 멤버들이랑 같이했고, 2기에는 새로운 분들을 대상으로 했어요. 최근 마무리된 2기 운영을 위해, 한 달 동안 스탭들이 참여자 분들과 함께 숙소에서 지냈어요. 일과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한 방에 모여 운영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나 이슈를 이야기하기도 했고요. 혼자 지내면 감정을 쌓아두고 지내는데, 그날 쌓인 감정을 바로 풀고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낙원 2기 활동에 참여한 한 분이 프로그램을 다 마치고 이 지역에 정착하기로 한 게 정말 기억에 남아요. 그분은 도고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온어스와 함께 일해 보고 싶은 마음에 도고에 정착하기로 했대요.
다정 저희가 식물을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이라서 참여자 중에 비건이나 플렉시테리언을 지향하는 분들도 참여를 했었어요. 그런데 이 동네에 비건 식당은 없거든요. 정육식당은 많지만요. 그나마 가정식 백반집에 간다거나, 식당에 부탁해서 동물성 음식을 빼고 조리를 해달라고 했어요. 그래도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비건 지향하는 분들이 힘들어하셨어요. 저희의 배려에 미안한 마음도 생기고, 자기 때문에 사람들이 비건을 어렵게 생각하는 것도 신경이 쓰이고요.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남은 기간에 최대한 함께 할 수 있는 방법과 대안을 찾았어요. 그분께서도 그런 부분에 감동했다고 해요. 조율이 가능하다는 것에서요.
낙원 문제를 발견했을 때 같이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이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분께서 이주 계획을 밝히니까 그분의 주변 분들도 온어스를 찾아봤대요. 좋은 모습으로만 보아주신 건 아닌지 걱정도 되고…. 언제나 또 다른 모습도 있기 마련이니까요(웃음). 사실, 저희를 통해 이곳에 정착하게 된 첫 번째 청년이에요. 저희에겐 큰 의미이고 책임감도 느껴져요.
"도전하기 어려운 지역에서 새로운 시작을 했듯이,
뻔한 방법으로 뻔하지 않은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걸 바탕으로 혁신적인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요."
새로운 동료가 생겨서 기쁘지만, 고민도 많을 것 같아요. 어떤 점을 가장 신경 쓰고 있나요?
낙원 저희가 제로웨이스트 카페를 준비하고 있는데, 마침 그분이 카페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어요. 지역으로 새로운 청년을 초대할 때 사실 가장 걱정되는 게 일자리인데, 서로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분에게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생기고, 저희도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일하는 거니까요. 누구든 낯선 곳에서 정착하려면, 일자리, 주거, 네트워크가 중요한데, 세 가지를 모두 갖추기 어렵잖아요. 현재 함께 ‘으쌰으쌰’ 하는 네트워크는 있지만, 집이나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시스템은 부족한 것 같아요. 앞으로 지역에 정착하고 싶은 청년의 집이나 일자리 마련에 도움이 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요.
두 분 이야기를 들으니 일상과 활동에서 혁신을 생각하시는 게 느껴져요. 두 분은 스스로 혁신가라고 생각하시나요?
다정 사실 혁신이라는 단어가 무겁잖아요. 무언가를 크게 바꿔야 할 것 같고요. 그런데 충남사회혁신센터와 일하면서, 제가 혁신가가 맞다고 생각했어요. 어렵고 거창한 무언가를, 당장 바꾸는 것만이 혁신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혁신가는 세상에 변화를 만들기 위해 실천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 부분을 스스로 의심하지 말고, 검증하려고 하지 말자’라고 생각해요.
낙원 저는 혁신이라는 키워드에 안 좋은 기억이 있어요. 저희가 무언가 해보려고 할 때, ‘혁신적이지 않다, 청년스럽지 않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도전자라는 단어를 더 좋아해요. 도고는 1970년대부터 관광지였기 때문에 외지인에 대해 좀 경계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이곳에서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시작하고 보니 저희를 도와주는 주민분들이 자꾸 늘어나더라고요. 도전하기 어려운 지역에서 새로운 시작을 했듯이, 뻔한 방법으로 뻔하지 않은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걸 바탕으로 혁신적인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요.
낙원 씨와 다정 씨의 흥미로운 일화를 듣다 보니, 인터뷰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다정 씨는 다른 일정이 있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낙원 씨와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제부터 사회나 지역에 대해 관심을 가졌나요?
낙원 저는 원래 사회복지랑 청소년학을 전공했거든요. 그리고 어릴 때부터 무언가 나누는 걸 좋아했어요.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고민이나 대화 나누기도 좋아했고요. 전공 덕분에 청소년재단에서도 일했는데 청소년들을 만나고 거기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게 좋더라고요. 그러다 대학교 때 알바 했던 카페 사장님의 제안으로 식음료 회사 ‘에프앤비브릿지협동조합’을 운영하게 되었어요.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을 받은 후에는 사회공헌 활동을 많이 했고요. 로컬푸드를 활용한 제품도 만들고… 그러면서 지역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다가, 청년 기업 대표님들을 만나면서 신뢰가 쌓이고 온어스를 구상하게 된 거죠.
앞으로는 어떤 모습을 꿈꾸고 있나요?
낙원 이 동네랑 거리에 재밌는 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상점들이 개별적으로 외따로 모여 있는 그냥 상가가 아니라, 공동쿠폰을 만들어서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한다던가, 그런 시도들을 통해 공동체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희 중 누군가 결혼을 하고 자녀를 키우게 된다면, 서로 믿고 돌봐줄 수도 있고요. 정감 있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거리, 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좋은 인연의 연쇄가 있었다. 낙원 씨는 이전 회사에서 일하던 중에 현재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온어스의 시작! 서로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다가 청년기업협의체를 만들자 14개의 청년기업이 모였다. 일로서만의 네트워킹을 넘어 삶을 공유하기 위해 도고 지역에 온어스를 설립하게 되었다. 현재는 제로웨이스트숍, 게스트하우스 등을 기획하고 있다. 온어스 조합원들은 조합을 운영할 때 다른 무엇보다 서로의 관계와 신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도 여러 사람의 이름이 차례차례 등장했다. 우진, 진배, 중호, 유정, 형준 그리고 인터뷰 중 찾아온 이장님까지.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도전을 이어가는 사회적협동조합 온어스는, ‘혁신기업’의 가장 따뜻한 버전이 아닐까? 낙원 씨의 말처럼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도고와 온어스의 미래에 기대를 걸어본다.
<혁신살롱 프로젝트>
충남지역에서 자신만의 일과 활동을 이어나가며, 조금이라도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이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어떤 일들을 하며,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연재합니다.
제작 | 충남사회혁신센터x사과나무
글·정리 | 안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