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 멤바들과 군산 미군기지 이슈를 다루는 '난리법석'이라는 미디어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3년째 함께 잡지를 만들고 있는데 이번 호에 어쩌다보니 편집장이 되어부렀다. 회의 때 3호의 특집으로 동아시아의 미군기지가 있는 공간, 대만-한국-제주-오키나와를 다루어보잔 얘기가 나왔고 '오키나와? 푸른 바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오키나와 기행을 약속했다. 작년 10월의 일이다.
다른 멤버들은 일정을 기획하거나 차량을 예약하거나 무어라도 했는데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미안했다. 약속한 2월이 가까워질수록, 바빠 죽겠는데 이 시기에 평화기행이 다 무어람.. 하며 초조하고 분주한 시간들을 보냈다. 부랴부랴 이틀 전에 백신을 맞고, 새벽까지 야근을 하고 몸과 마음이 너덜해진 채로 비행기를 탔다. 이틀 정도는 나른하고 정신을 못 차린 채로 실려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여기가 어딘지, 뭘 기록해야 되는지, 뭘 느껴야하는지 잘 모르면서 그냥 다녔다.
1.
첫 장소는 평화의 공원이었다. 상징의 공간은 어디에나 있는데, 사실 역사를 잘 모르는 채로 그런 곳에 가면 충분히 알고 느끼지 못한단 이질감이 일어 찝찝하다. 바다를 향해 파도처럼 펼쳐진, 수많은 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있었다. 해안선 쪽 멋진 바위절벽은 자살절벽이라고 불린다고 했다. 패전한 이후로도 항전을 이어나가던 일본군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내린 절벽이다. 절벽 아래로 이어지는 바다는 딱 봐도 수심이 얕아 사람들이 떨어지면 고스란히 피가 고여 바다 색이 붉은 핏빛이었다고 한다.
2.
오키나와엔 가마라고 불리는 자연 석회 동굴이 많다.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3-4군데의 가마를 간 것 같다. 슬램덩크에서 본 송태섭의 동굴 아지트가 이해가 됐다. 만화와는 다르게 땅 속, 깊은 곳의 가마를 다녔다. 음지의 기운. 어둡고 축축한, 그렇지만 아름답고 신비롭게 우거진 숲 밑으로, 나무의 뿌리와 가지를 따라 동굴이 있었다. 대부분은 전쟁을 피해 숨어있던 주민들이 잡혀 죽거나, 자결해죽은 곳이었다. 제주 4.3을 다룬 영화 지슬이 당연히 생각났다. 전쟁과 폭력은 공통된 경험과 기억을 연결하며, 같은 공간을 남긴다.
3.
요미탄촌의 치비치리가마. 땅 아래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커다란 나무가 특히나 아름다웠다. 석단과 작은 석상이 군데군데 있다. 빛과 어둠 사이에 자리를 잘 잡아낸 조각이 마음에 푹 들었다. 이 가마는 전쟁 때 마을 사람들이 피신해 있다가 미군에 포위당해 집단 자결을 했던 공간이다. 그 중에 생존자가 남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그 사실을 함구를 했던 역사가 있다. 비교적 최근, 동굴이 개방되어 있을 때, 몇몇 마을 소년들이 담력 테스트를 하러 와 훼손을 했다 한다. 죄를 묻는 와중에 활동가와 조각가가 이 소년들을 용서하고 기억하는 의미로, 3개의 동상을 만들어 세웠다고 했다. 이렇게 사고를 치고도 자신의 동상을 만들 수 있던 소년들이......... 또 있나? 궁금하고 이상한 선택이다. 어째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묻지 못했다. 다음엔 꼭 물어봐야지.
아무튼 좋았던 여정 중 하나는 '한의비'와 소년의 조각을 만든 긴죠 미노루 선생님의 아뜰리에에 들러 조각을 실컷 볼 수 있었던 것. 많은 예술 장르는 0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조각은 깎아내면서 형태를 잡아내는 것이 흥미롭달까. 돌 안에 그 부처가 있고 그걸 찾아내준다는 말처럼. 한국 위안부 여성의 조각상, 부처, 미군에 저항하는 평범한 농부들의 상이 있었다. 가까이 떠올릴 수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4.
거대한 슬픔 덩어리로 설명되어지는 곳, 이름이 많은 곳에 가면 무언가에 압도 당해 쫄아버리고 마는데.. 긴죠 미노루 선생님의 조각들, 사키마 미술관에서 케테 콜비츠의 작품을 본 순간 지워지지 않을 표정들이 다시 떠올랐다. 알 수 없는 이름들이지만 읽을 수 있는 표정들. 커다란 벽면을 가득 채운 텅빈 얼굴들. 비로소 덩어리의 아픔이 가까이 다가왔다.
5.
오키나와는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너무 아름답고 커다래서 텅 비어있는 것 같았다. '우와 멋지다아'한 공간엔 전쟁과 폭력의 흔적들의 이야기가 계속 되었다. 울창하고 오래된 원시숲, 동굴에 기대어 숨어 살던 사람들. 바다 절벽마다 남은 전래들. 그런 것들을 마주할 때마다 슬픔과 아름다움의 간극에 대해 생각했다.
6.
에메랄드비치와 자살절벽. 사람은 무엇을 기억으로 남길까? 어떻게 해야 비겁하지 않게 이 공간을 살아낼 수 있는거지? 이런 숙제를 안은 채.. 졸려.. 언젠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