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놀이연구소> 강동완&최윤미
온통 하얗던 아침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보령의 어느 초등학교를 찾았다. 밤새 쌓인 눈에 푹 빠졌는지, 학교 여기저기에서는 이미 아이들이 나와서 눈을 뭉치고 던지며 놀고 있었다. 강당으로 들어가니 그보다도 훨씬 더 재미있게 노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눈 쌓인 바깥의 모습도 뒷전이라는 듯, 공을 던지고 나무토막을 쌓고 고무줄을 튕기며 놀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골목대장처럼 아이들을 이끌고, 놀이에서 지고 풀이 죽어 맴돌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용기를 주며 소곤대는 두 어른이 있었다.
세상의 재미있는 놀이를 찾아 널리 전하는 사람들. 〈세상놀이연구소〉를 이끄는 강동완 대표(이하 온달)와 최윤미 실장(이하 평강)이다. 아이들에게 더 즐겁게 노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오늘도 그 속에서 함께하는 모습이었다.
두 분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온달 누가 뭐래도, 저에게 가장 큰 비중과 의미를 갖는 공간은 저희가 어린이들을 위해 직접 만든 놀이기구를 싣고 다니는 저희만의 차량, ‘노리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곳이고, 쉴 수도 있고 다시 스스로 기합을 넣고 충전도 할 수 있는 곳이고…. 다 해당되는 것 같더라고요. 오늘 아침에도 실장님이랑 같이 이 차를 타고 나오면서 오늘의 일정에 관해서도 얘기하고, 그 이후의 일정들, 앞으로의 계획 이런 모든 논의와 자잘한 이야기를 하면서 왔어요. 물론 집에서도 같이 있지만 집에서는 또 가정 나름의 해야 할 일과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일에 관해서는 노리카가 가장 중요한 공간 같아요.
그 공간에서 애착을 가지는 물건이 있나요?
온달 아무래도 노리카에 가득 실려 있는 놀이도구겠죠? 가장 오래된 것은 8년 전에 만들어서 지금까지 가지고 다니는 것들도 있어요. 처음에는 만들 재주가 없어서 종이에 그린 그림을 들고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기도 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놀이도구들이 하나둘씩 늘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게 되었지요. 그때 만들었던 놀이도구들을 보고 있으면 그것들을 만들게 된 이유, 만들어 준 사람, 그리고 그것들을 함께 가지고 놀던 이들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처음에 만들 때는 시행착오도 많았고 만드는 시간도 꽤 걸렸지만, 하다 보니까 점점 익숙해지고 점점 숙련도도 늘었어요. 지금은 세상놀이연구소에 목공실도 따로 두고 있고 제가 직접 만들기도 해요. 지금도 계속 새로운 놀이도구들을 늘리고 있어요.
이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는 건설회사에서 일하셨다고 들었어요. 생소하다 싶을 만한 거리감이 있는 직업인데 특별히 이 일을 선택한 이유가 있으셨을까요?
온달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 번째 이유로는 건설회사에 다닐 때, 내 인생에 들었던 의문 때문이었어요. “내가 지금 잘살고 있는 걸까?”라고 스스로 묻게 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그러면서 삶을 좀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새로운 길을 찾아보게 되었죠.
사실 처음부터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을 하자고 결심했던 건 아니었어요.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처음 선택했던 직업은 사회복지사였거든요. 나이 마흔이 넘어서 삶의 물꼬를 바꿔볼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고, 생각이 시작된 이듬해에 바로 직업과 직장을 바꾸고, 면 단위 시골로 이사를 해서 삶의 터전도 바뀌게 되었죠. 전부 제가 결심했던 그 이듬해, 그 안에 이루어졌던 일이었어요. 이사 후 마을에서 처음 깨닫게 된 사실 중 하나가, 저희 아이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마을의 아이들도 똑같은 마음으로 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아이들 학교의 학부모회장직을 하면서 학부모들과 함께 ‘와글와글 놀이터’라는 놀이 품앗이 활동을 시작하고 이후로는 ‘신양놀이문화마을’이라는 마을 교육공동체를 만들게 되었어요.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그 일과 함께 마을활동가, 놀이활동가 등을 겸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놀이하는 어른’이 된 거죠. 그것이 이제는 직업이 되었어요.
또 다른 이유는 제가 어렸을 때 실컷 놀아보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이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 같아요. 유년 시절 저는 동네 밖을 잘 나가지 않고 부모님 말씀이라면 위험한 곳은 얼씬도 하지 않아서 한겨울 동네 개울가에 썰매 한 번도 타보지 못했어요. 그렇게 쌓인 ‘놀이의 결핍’ 덕분에 제 아이들을 키우면서 제 아이들과 부족하지 않도록, 그리고 저 자신이 위로받을 수 있도록 그 부분을 채우고 싶었던 것 같네요.
충남 지역을 활동 기반으로 삼으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만약 세상놀이연구소가 서울에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평강 사실 꼭 충남 지역에 국한하고 싶지는 않아요. 아이들은 어디에나 있고 또 놀이가 필요한 것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원래 저희 모토가 ‘어디든’ ‘언제든’ ‘누구든’ 찾아가는 놀이터예요. 하지만 노리카는 한 대고 저희 몸도 하나씩밖에 없잖아요. 시간 내에 갈 수 있는 거리도 한정적이고요. 그러다 보니 저희가 사는 충남 지역을 중심적으로 활동하게 되는 거죠. 다행인 것은, 충남도 엄청 넓은 곳이고 앞으로도 찾아갈 아이들이 아직도 많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실장님과 함께 배에 노리카를 싣고 보령 앞바다의 섬에 있는 작은 학교로 아이들을 만나러 갔는데, 새벽에 출발했는데도 오후에 배가 끊겨서 그날 결국 섬에서 못 나온 적도 있었어요(웃음).
만약 서울에 있었다면 더 좋은 점도 많았겠지요. 하지만 서울이나 다른 대도시에 비해 작은 시골일수록 아이들은 함께 놀 친구들, 놀 공간, 즐길 놀이가 부족해요. 방과 후 바로 학교에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골 아이들에게는 그 시간 이후 함께 놀 친구도, 놀 공간도, 즐길 만한 놀이도 없어요. 그렇기에 노리카가 그런 아이들에게 더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작년 화제가 되었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TV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대표님의 활동을 알아보며 극 중 나오는 ‘방구뽕’이라는 인물을 많이 떠올렸어요. 이 인물의 대사와 가치관이 주목받았었는데, 대표님만의 구호와 가치관이 있을까요?
온달 저희도 그 드라마 재미있게 봤어요(웃음). 저희의 구호는 “크게 웃자! 크게 말하자! 크게 뛰자!”에요.
우선 웃어야 해요. 일부러라도 웃다 보면 아이들은 즐거워져요. 다음으로는 크게 말하고 씩씩하게 뛰어다니면서 자신감과 행동력을 길러야 해요. 내성적이고 소심한 아이들이 즐거운 환경 속에서 자신 있게 자기 생각을 말하고 친구들과 소통하는 법을 알아가기 위한, 세상놀이연구소만의 필수 지침입니다.
"저희의 구호는 “크게 웃자! 크게 말하자! 크게 뛰자!”에요.
우선 웃어야 해요. 일부러라도 웃다 보면 아이들은 즐거워져요."
왜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하시나요?
온달 잘 놀아보고 싶었어요. 어릴 적 놀지 못했기 때문에 제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함께 노는 게 무척 어려웠어요. 그런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노는 걸 제가 꽤 잘하더라고요. 계기야 어쨌든, 지금은 이 일이 제게 너무 잘 맞아요. 저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한 거죠. 어린 시절에 제대로 놀지 못해서 ‘놀이 결핍’이었던 한 어른의 간절함이 이 길을 열어준 것 같아요.
그동안의 저에게도 맞는 일이었지만, 재작년부터 실장님이 원래 하시던 어린이집 보육교사 일을 정리하고 이 일을 돕게 되면서부터 점점 더 제게 맞는 일이 되어가고 있어요. 실장님과도 어떤 때는 부부로서, 어떤 때는 파트너로서 함께 이 일을 하며 점점 더 호흡을 맞춰가고 있으니까요. 그럴수록 점점 일이 재밌고, ‘세상에 천직이란 것이 있다면 이런 것이겠구나.’ 하고 느껴요.
일하면서 재미나 보람을 크게 느낄 때는 언제이신가요?
온달 노리카가 다니는 곳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 학교예요. 작은 학교 중에서는 일 회 방문에 그치지 않고 여러 번 재방문하는 곳도 많거든요. 그런 경우 저희가 노리카를 끌고 학교 운동장이나 마당으로 들어서면, 아이들이 “노리카 왔다!”라고 소리치며 쫓아와요. 그리고 저희를 보고 ‘온달 쌤’, ‘평강 쌤’하고 불러줄 때 정말 행복해요.
언젠가 실장님이 그런 모습을 보았대요. 겨울에는 노리카에 군밤을 가지고 다니면서 아이들과 불을 피우고 군밤도 구워 먹곤 하거든요. 그럴 땐 땔감을 주변에서 주워와서 불을 피워야 하는데, 어느 날인가 제가 나뭇가지를 주우러 학교 운동장을 어슬렁어슬렁 돌고 있는데 아이들이 그 뒤를 졸졸 따라가면서 함께 나뭇가지들을 줍고 있더래요. 마치 어미 닭 뒤를 따라가는 병아리들처럼요. 그런 얘기들을 들으면 너무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만큼 아이들과 우리가 많이 가까워져 있구나- 하면서 보람차곤 해요.
평강 전 오늘도 보람찬 날이었어요. 오늘 오전에 초등학교 친구들과 도미노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다 끝나고 한 친구가 저한테 “선생님, 우리 언제 또 만나요?”하고 물어보더라고요. 마치 영화 슈렉에서 나오는 눈물 그렁그렁한 고양이 같은 표정을 하고요. 다음에 또 볼 수 있겠지 하니까 너무 아쉬워하면서 오늘이 너무 좋다고, 다음에 또 꼭 만나고 싶다는 거예요. 어떤 친구들은 세상놀이연구소를 찾아가면 오늘처럼 더 놀 수 있냐고도 물어봐요. 그런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그 아이들의 마음 한쪽에 오랫동안 남겨져 있을 추억들을 보태고 왔다고 생각하면 뿌듯하기도 하고요.
반대로 ‘아, 그만하고 싶다’ 하고 생각했을 때는 없으셨나요?
평강 제가 곁에서 볼 때는 대표님은 이 일이 맞는 것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할 때나 조금 피로할 때 흔히 넋두리처럼 ‘아, 출근하기 싫다,’, ‘아, 일하기 싫다.’라고 푸념하곤 하잖아요. 그런데 놀이하는 어른이 되고 노리카를 시작한 이후로 대표님이 빈말로라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어요. 계속 새롭고 더 재미있는 놀이와 활동들을 생각하고 궁리하느라 지치거나 염증을 느낄 새가 없으신 것 같아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죠. 대신 대표님도 저도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과 계속해서 뛰어놀려면 나름 꾸준히 운동해서 체력을 더 길러야겠더라고요(웃음).
온달 정말 애들이랑 한바탕 뛰고 나면 너무 힘들어요. 이렇게라도 뛰어다녀서 그나마 운동 겸하고 있는 거예요(웃음).
사실 힘든 시기도 있었어요. 오랫동안 해오던 직장생활을 접고 사회복지사로 직업을 바꾸고 마을활동가로 살아가던 시절에는 이전에 비해 수입이 많이 줄었죠. 그나마도 놀이를 전업으로 하겠다고 사회복지사 일마저 그만두었던 시기에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가계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도 못 벌어다 준 시절도 있었고요. 한때는 다시 예전에 하던 일로 직장을 구해야 하는 고민하던 시기도 있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제가 하는 일에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고 저 대신 오랫동안 직장을 유지하며 가계에 보탬을 이어왔던 실장님께 감사하고 있어요. 덕분에 이 노리카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다행이에요.
대표님은 스스로가 혁신가라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온달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계속 새로운 걸 찾아내고 싶고 적당함에 안주하고 싶지 않아요. 늘 새로운 것을 꿈꾸고 실천하려 하는 혁신가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제 하고 싶은 것을 욕심껏 채우고 사는 욕심꾸러기일 수도 있고요.
언제까지 이 일과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평강 이렇게 아이들을 찾아갈 수 있는 한, 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죠. 그리고 언젠가는 아이들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고도 싶어요. 자연 속에서 뛰어다니고 놀 수 있는, 해방구 같은 ‘자유 놀이터’를 꿈꾸고 있어요. 아이들뿐만 아니라 놀이가 결핍되고 놀이가 고픈 어른들도 함께할 수 있는, 많은 것이 허용되는 그런 공간으로요. 아이들은 모험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들을 무엇보다도 좋아하니까요. 그런 것들을 스스로 채워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 공간이 생긴다면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들을 알려줄 수 있을 거예요. 학교가 가르치는 지식이 아닌 자연이 가르치는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곳. 그리고 상상할 줄 알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곳. 그런 과정을 거치며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할 동력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학교가 가르치는 지식이 아닌 자연이 가르치는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곳.
그리고 상상할 줄 알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곳.
그런 과정을 거치며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할 동력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지금 말씀을 듣고 나니 아이들에게 있어 정말 필요한 혁신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의 어린이들은 더 이상 놀이터와 운동장이 아닌 피시방과 휴대전화, 온라인 공간 속에서 놀고 있잖아요.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평강 만남과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배워나가는 것들이 있어요. 지금은 다른 사람의 표정을 보지 않고 모니터와 휴대폰 화면만 볼 뿐이라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하고, 협동하는 면에서 부족할 때가 있어요. 이런 것은 분명 수업이 아닌 놀이로 배워야 할 부분이에요. 예를 들자면, 누군가와 부딪쳤을 때 화를 내는 게 아니라 ‘미안해.’하고 말하며 먼저 손을 내미는 행동 같은 거요. 오늘 오전에 아이들과 놀면서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팀을 나눠서 게임을 했어요.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어떤 아이가 실수해서 그 팀이 그대로 졌어요. 그러자 다른 친구가 “야, 너…!” 하다가 말았는데, 그 애가 결국 맨 뒷줄에 혼자 앉아서 훌쩍훌쩍 울더라고요. 달래주느라 한참 걸렸어요(웃음).
온달 예전에 한 아이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열심히 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 게임을 멈추는 거예요. 그 판에서 본인이 질 것 같으니까 그 판을 멈추고 새로운 판을 시작하기 위해서였어요. 게임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져온 놀이판 위에서도 본인이 잘할 수 있고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놀이만 골라서 참여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전화위복’이란 말이 있잖아요. 거듭된 실패들이 이유가 되어서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법인데 아이들에게는 아직 와 닿지 않는 말인 거예요. 정말 어렵고 힘들게 이겨봐야만 실패나 패배를 “그럴 수도 있지!”하고 인정할 수 있어요. 결과에 승복할 줄 알아야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건데, 아이들은 아직 그런 경험이 부족하지요. 그러다 보니 승부에서는 무조건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집착하고, 어쩌다 지기라도 하면 일기에 울음을 터트리거나 화를 참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런 것들에 대해 올바르게 배울 줄 아는 기회를 주고 싶어요.
저희가 놀이 현장에서 강조하는 게 있어요. ‘연습’이라는 말이요. 많이 해도 되고, 많이 해야 하는 것은 ‘연습’이라고 늘 말해요. 그 연습은 성공을 위한 연습뿐만 아니라 실패와 패배를 통한 좌절과 분노를 다스리는 연습이기도 해요. 활동이 끝나면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함께 외치는 마법의 주문이 있어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힘들고, 어려울 때 소리 내어 세 번만 외쳐보라고, 부끄럽고 쑥스러우면 큰 소리가 아니고 작은 마음의 소리로라도 세 번만 외쳐보라고 해요. 가끔 그 주문의 효험을 맛봤다는 소감을 듣기도 해요.
평강 : 이건 비밀이긴 한데, 사실 대표님이 승부조작의 달인이에요. 아이들과 놀 때 적당한 시점에서 져주기도 하고, 승리를 맛보게 해주고 싶은 아이들에게는 감쪽같이 일등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무궁무진한 비법들이 있으세요.(웃음)
소박한 꿈이 있다면?
평강 지금 하는 일을 꾸준히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나눌 수 있고 그 아이들의 마음속에 그 순간들이 오래오래 남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보다 더 원대한 꿈이 있다면?
온달 1998년도에 현대 그룹의 정주영 회장이 1,001마리의 소 떼를 이끌고 휴전선을 넘어서 북한 땅을 밟았어요. 그래서 저는 소 떼 대신 노리카로 휴전선을 넘어 북한을 지나, 몽골과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가는 상상을 합니다. 오랫동안 서로 다르게 살아온 남북의 아이들이 아직도 공통점으로 가지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놀이예요. 남과 북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똑같거나 비슷하게 존재하는 놀이를 찾아 모으고 있어요. 그리고 그것들을 노리카와 제 맘속에 가득 담아 찾아가 함께 놀이판을 펼쳐 보는 것이 제 꿈입니다.
꿈이 하나 더 있는데, 지금까지 담아내고 채워낸 노리카의 시스템이 더 많은 지역에 전파되었으면 좋겠어요. 아이와 어른,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공유하고 경합이 가능한 여러 놀이가 그들을 잇는 매개체로 작용하게끔 말이에요. 좀 더 바란다면, 청년들이 이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일에 대한 열정과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동시에 가지고, 청년들과 아이들이 펼쳐낸 놀이판이 함께 성장하는 세상의 디딤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노리카가 세상을 지탱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고, 세대와 세대를 잇는 연결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린이들과 즐겁게 놀아줄 수 있는 놀이판이어야겠죠.
신이 세상에 단 한 가지의 문제만 해결해준다면, 어떤 문제를 해결해달라 바라실까요?
평강 기후 위기를 해결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안심하고 뛰어놀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위험하지 않은 환경이어야 하니까요. 질병과 기후 재난에서 안심할 수 있는 우리의 옛날과 같던 환경으로 되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세상놀이연구소>는 놀이를 지킨다. 그들에게 놀이는 어린이를 가장 어린이답게 만들고 키워줄 수 있는 목적이자 수단이다.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진심으로 축하하는 일, 좌절하지 않도록 격려하는 일이라는 것을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배우길 바란다. 더욱 씩씩한 아이들,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며 협동하는 아이들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온 운동장 한켠에 아이들이 만든 눈사람이 보였다. 눈은 금새 녹을 테지만, 아이들은 눈사람을 만든 추억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신나게 놀고 난 날은 오래 잔상에 남듯이. 노리카와 두 사람. 그들과 함께 보낸 놀이의 기억을 가슴 한구석에 남긴 어른들이 가득한 세상을 상상해본다.
<혁신살롱 프로젝트>
충남지역에서 자신만의 일과 활동을 이어나가며, 조금이라도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이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어떤 일들을 하며,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연재합니다.
제작 | 충남사회혁신센터x사과나무
글·정리 | 최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