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로컬> 소철원, 홍민기
청양에 도착했다. 전형적인 시골의 읍내 풍경이었다. 낡은 터미널 근처에 듬성듬성 서 있는 여관과 식당들. 아주 오래된 빵집과 그 맞은편으로는 튀는 색감의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막 간판을 달기 시작한 곳. 드문드문 노인들을 지나치며 크고 작은 골목들을 거쳐 어쩌다로컬이 활동하는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어쩌다로컬은 2021년 청양 청년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에서 활동하며 만난 청년들이 함께 만든 팀이다. 청양에 연고가 없는 청년들이 카페도 운영하고 레트로 주점도 열어 화제가 되었다. 2022년 4월에는 모인 청년들이 법인을 설립하고 지역문화기획을 시작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는 청양에서 2주를 살아보며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는 ‘어쩌다민박’이라는 이름의 갭이어 프로그램이 있다. 조용한 시골에서 젊은 기운으로 파동을 일으키며 마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어쩌다로컬. 그들은 지역에서 많은 지지와 도움을 받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활동하는 청년들은 지역이 소멸하지 않도록, 또 청양이라는 지역은 정착한 청년이 성장할 수 있도록 서로에게 에너지를 주고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로컬의 소철원 대표와 홍민기 이사를 만났다.
청양에 오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홍민기 저는 20년 정도를 경남 창원에서 살았어요. 초중고대학교 시절을 모두 창원에서 지냈고 직장도 창원에서 다니고. 창원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어요. ‘창원이라는 곳을 떠나서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공간으로 한번 가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피어오르더라고요. 그래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어디 가서 살지 고민하던 와중에 2021년에 청양 청년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알게 된 거예요. 거기에 참여했다가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아직도 여기 남아서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소철원 거창한 계기나 대단한 포부를 가지고 온 건 아니었고요. 시골에 살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어요. 서울에서만 계속 살아왔는데, 서울 생활이 편하기는 해도 답답하다고 느껴졌어요. 또 서울에서는 한 가지 일만 오래 했었거든요. 그래서 서울이 아닌 다양한 곳에서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여러 후보지를 보고 있었죠. 그중 가장 불모지였던 청양을 선택했어요. 시골 중의 시골이죠.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그래서 새로운 도전을 하기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청양 청년 마을 프로젝트가 서로에게 연이 되었다고 해주셨는데요. 알아보니 재미있는 일을 많이 벌이셨더라고요. 화제가 되었는지 관련 자료를 많이 볼 수 있었어요.
소철원 ‘한 달 창업’이라는 프로젝트로 진행이 됐었어요. 청양의 청춘거리라고 불리는 원도심 일대 4개의 점포를 한 달 동안 운영해보는 프로젝트였어요. 저는 카페를 운영했고요. 민기는 주점을 운영했죠.
홍민기 청양에서 청년들이 가게를 연다고 주목을 많이 해주셨어요. 청양 주민들이 연령층이 다양하거든요. 어르신들은 옛 추억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고 젊은이들에게는 새롭게 느껴질 수 있도록 레트로 술집을 운영했었어요. 철원이 운영했던 카페는 청양 안에서 유일하게 차로 무료 배달해주는 카페이지 않았을까 싶어요.(웃음) 두 가게 모두 관심도 많이 받고 매출도 괜찮게 나왔어요.
2021년에 진행한 프로젝트로 만나서 2022년에 협동조합을 설립하셨네요.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일을 진행하셔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가능했나요?
소철원 먹고 살려고요. 어떻게든 버티고 먹고살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웃음)
철원님은 이곳에 오기 전에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하셨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지금의 일로 전환하기까지의 과정은 어떠셨나요? 결정이 어렵진 않으셨나요?
소철원 제가 태권도 사범을 오랫동안 했어요. 그만둔 건 태권도만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서였어요. 한 가지 일에는 능숙하지만, 그 외에 해본 것들이 너무 없는 삶이 두려웠어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서 중요한 시기에 과감하게 그만두고 제주도에서 일 년 살이를 시작했죠. 그게 시골살이하게 된 전환점이 되었어요. 서울에서는 편하게 이루지는 일들이 제주에서는 어렵더라고요. 이동이나 식료품을 구하는 일도 어렵고요. 그렇지만 그런 불편함에도 좋았어요. 서울은 정해진 대로만 흘러가잖아요. 오랫동안 버스를 기다리고 조금 돌아가 장을 보고 오는 일도 좋더라고요.
이 인터뷰는 혁신가의 공간을 소개하는 콘텐츠예요. 가장 좋아하는 곳,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공간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소철원 저는 집을 좋아해요. 집돌이예요. 혼자 생각도 많이 하고 제일 저다울 수 있는 공간, 충전하는 공간도 집이에요. 반려동물 똥강아지 두 마리를 입양한 지 얼마 안 됐거든요. 그 강아지들 키우는 맛에 집에 돌아가는 시간이 좀 기다려져요.
홍민기 청양의 8개 면 중에 운곡면이라는 데가 있어요. 거기 어슬티굿밤이라는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펜션이 있습니다. 어쩌다민박이라는 갭이어 프로그램을 운영했을 때 23명의 외지 청년이 그곳에 와서 함께 청양에 대해 알아가고 공부하고 함께 밥을 해 먹고 공동체 생활을 했던 좋은 기억이 남아있어요. 그래서 프로그램은 끝났지만 저는 종종 어슬티굿밤에 찾아가요.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에요.
어슬티굿밤이라는 이름이 예쁘네요. 그곳에서 주로 어떤 시간을 보내세요?
홍민기 어슬티가 지명이에요. 거기 가면 불을 피울 수 있는 굴뚝이 있어서 그저 넋 놓고 불구경하며 있어요. 도시에서는 쉽게 못 하는 거잖아요. 제가 올해 27살인데 살면서 불멍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어요. 시골에 와서는 이렇게 주기적으로 불을 보면서 멍을 때려요. 불 앞에 모여서 동료들이랑 차분하게 이야기 나누는 그 순간을 정말 좋아해요.
"시골에 와서는 이렇게 주기적으로 불을 보면서 멍을 때려요.
불 앞에 모여서 동료들이랑 차분하게 이야기 나누는 그 순간을 정말 좋아해요."
어쩌다로컬의 기획들도 궁금해져요. 어쩌다민박은 어떤 프로그램이었나요?
소철원 저희가 타이틀로 잡았던 건 ‘부캐’라는 주제였어요. 마음속에 다양한 꿈을 지니고 있지만, 현실에 맞춰서 살아가는 청년들이 많잖아요. 그런 청년들의 꿈을 이루어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한 기획이었어요. 2주 동안 참여자가 직접 부캐를 선택해서 그대로 살아보고 마지막 파티에서 자신의 부캐 활동을 전시하고 내비치는 방식의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올해 3회의 기수가 다녀갔네요.
어떤 부캐들이 있었나요?
소철원 농부, 바텐더, 바리스타, 뮤지션, 로컬피디, 에디터, 화가… 굉장히 다양했어요. 청양에 있는 동안 부캐로서 활동할 것들을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식이었어요. 마지막 파티에서 참여자들이 청양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을 초대했어요. 부캐가 요리사였던 참여자는 오는 손님들에게 내어줄 음식을 개발하고, 뮤지션은 공연하고, 피디는 2주간 생활을 담은 브이로그 상영회를 했고요. 여러 부캐들의 활동을 다 묶어서 잘 풀어냈습니다.
청년들의 꿈을 이루는 시간을 만들어준다는 말씀이 인상 깊네요.
소철원 저희가 모여서 청양에 남은 계기도 청년 마을만들기 프로젝트였잖아요. 갭이어의 일환이었거든요. 그 프로그램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우리 같은 청년을 더 늘려보고 싶었어요. 우리가 직접 경험해봤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우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시네요. 팀으로 활동하시는 게 중요한 이슈인 것 같이 느껴져요.
소철원 네. 맞아요. 지금도 계속 팀을 대변한다는 느낌으로 제 개인보다는 어쩌다로컬 팀의 마음으로 인터뷰에 답변하고 있어요. 팀원들이 없었다면 이곳에 더 오래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을 거예요. 말씀드렸던 여러 활동을 함께 해오면서 얻은 보람이 매우 컸거든요. 올해 진행한 어쩌다민박에 애착도 많이 갔지만, 또 정말 힘들기도 했어요. 팀원들이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충분히 잘 메워줬기 때문에 무사히 사업을 마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감사하죠.
"팀원들이 없었다면 이곳에 더 오래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을 거예요.
말씀드렸던 여러 활동을 함께 해오면서 얻은 보람이 매우 컸거든요. "
정착 후 가장 힘들 때는 언제였나요?
홍민기 정착을 결심하고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아무래도 주거였어요. 우리 팀 모두가 느꼈을 거예요. 토지도 넓은데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요. 살고는 싶은데 살 만한 공간이 없는 거예요. 주거가 가능한 공간을 찾느라 많은 고생을 했어요. 또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죠. 꾸준히 지출되어야 하는 비용은 있는데, 수입이 없었어요. 그래도 공무원분들과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많은 분이 도움을 주셔서 어려움도 함께 이겨나갈 수 있었어요. 여성인 멤버에게는 군에서 감사하게도 지역 대학과 연계해서 기숙사를 구해줘서 거처를 마련할 수 있었고요. 남자 멤버들은 큰 집을 구해서 같이 살면서 공동체 생활을 했어요. 그러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은 것 같아요.
소철원 대단한 계획을 세워서 극복했던 건 아니에요. 저희의 힘듦을 알고 손 내밀어준 사람들 덕분이죠. 청년 마을만들기 프로젝트를 주최하면서 돈독해진 청양 사람의 이재영 대표님 그리고 저희가 추위에 벌벌 떨고 있을 때 지금 있는 사무실을 나누어 준 청양관광두레 박영혜 피디님. 그 밖에도 청양에 자리하고 계신 분들 덕분에 저희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었어요. 어쩌다로컬을 알리는 데에도 든든히 한몫들을 해주셨고요.
공동생활은 어땠나요?
홍민기 제일 재밌었던 시기였어요. 자유롭게 살았던 시기라고 기억돼요. 그 집이 청양 안에서도 제일 시골이었거든요. 집 앞에는 풀밖에 없고 인근에 집도 하나 없었고요. 출퇴근길에 고라니가 반겨주고.(웃음) 문도 안 잠그고 살았어요. 매일 뭐 해 먹지, 이런 고민 하면서요. 겨울에 추워서 뜨거운 물이 안 나오는 바람에 가스버너에 물 데워서 그걸로 씻고.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 재미있는 추억이 많았어요.
두 분은 자신이 혁신가라고 생각하시나요? 혁신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떠세요?
소철원 대단한 걸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처음에는 들었어요. 요즘 지역에 혁신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업이 많이 생겨나고 있어서 그 단어에 관해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이제는 거창한 걸 이루어내야만 하는 단어라고는 생각 들지 않아요. 가장 보통의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게 혁신이 아닐까. 우리 팀이 하는 게 바로 혁신이 아닐까 합니다.
홍민기 저도 같아요. 큰 전환점, 큰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요. 내가 뭔가를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단순히 생각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천하는 게 혁신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작은 실천을 통해 내 주변의 작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 그게 혁신 같아요.
작은 실천. 좋은 말이네요. 어쩌다로컬은 청양에서는 꽤 쟁점이 되는 일들을 펼치고 계신 것 같은데 하시는 일들이 작아 보이지는 않았거든요. 실제로 진행하시면 어떠세요? 많은 주목을 받으실 것 같아요.
소철원 많은 주목을 받는지는 모르겠고요.(웃음) 타지역에 비해 인구가 적은 만큼 청년인구도 적기 때문에 청년이 하는 일들이 빛을 내는 것 같기는 해요. 서울에서는 이미 다 있는 것들 이곳에서는 없어졌고, 저희 팀은 그런 없어진 것들을 재미있게 만드는 일을 할 뿐이죠. 재밌잖아요. 치킨집이 없으니까 치킨집을 만들고, 라면 먹고 싶은데 라면집이 없으니까 라면집을 만드는 일. 어떻게 보면 저희에게 필요했기 때문에 만든 것이지만, 이곳에서는 그게 혁신이 되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조금 들었어요.
2023년 어쩌다로컬은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있나요?
소철원 그동안 사회적경제 분야 사업들을 맡아서 해오면서 많이 배웠어요. 올해는 우리만의 색을 담은 프로그램들을 전개해나갈 예정이에요. 단순한 투어가 아니라 어쩌다로컬만이 만들 수 있는 고유의 투어 프로그램이나 벼룩시장 같은 걸 열고 계속 확장해나갈 예정이에요. 다재다능한 팀원들이 모였지만, 모두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전문적인 역량을 키우기 위해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신생 기업이다 보니 잡히지 않은 체계와 미숙함도 있었죠. 2022년을 마무리하면서 그런 부분을 잘 가다듬고 싶어요. 내년에 사업을 추진할 때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요.
이번엔 꿈에 대해서 질문드리고 싶어요. 혹시 소박한 바람 같은 게 있으신가요?
소철원 소박한지는 모르겠지만, 강아지들을 키울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에 살고 싶어요. 그럼 강아지들도 행복하고 나도 좋겠다는, 소박해 보이긴 하지만 전혀 안 소박한 희망이 있습니다. (웃음)
홍민기 저희가 늘 이야기하는 게 있어요. 나중에 나이가 들고 이런 현업에서 은퇴하게 되면 다 같이 큰 연립 주택 같은 걸 지어서 농사지으면서 살자고요. 작년에 같이 살면서 재미있게 공동 생활했을 때처럼요. 언젠가는 큰 집을 구해서 농사도 짓고, 잘못하면 와이프한테 쫓겨도 나고(웃음) 그런 재미있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원대한 꿈이 있다면요?
홍민기 저희가 하는 일들이 더 잘 됐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인구구조가 바뀌고 지역이 소멸하는 추세잖아요. 지역이 소멸한다는 건 누군가의 고향이 사라진다는 뜻이고요. 고향은 내가 힘들 때 항상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인데, 그런 누군가의 고향이 사라지지 않게 소멸하여가는 지역에 많은 사람의 관심과 쟁점을 불러 모으는 게 제 원대한 꿈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철원 2주 살기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참가자들과의 인연도 되게 소중하거든요. 실제로 참가자 중 한 명이 정착해서 매니저로 저희 팀에 들어오기도 했고요. 어떤 참가자는 스무 살이었고 도시행정과 지역에 관심이 많은 친구였는데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대학교 졸업만 했어도 바로 청양으로 이주했을 텐데 아쉽다고요. 졸업할 때까지 잘 크고 있겠다고요. 그 이야기를 듣는 데 마음이 묵직해지더라고요. 앞으로도 다양한 청년들이 이곳에 왔다 갈 텐데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 언제든지 우리 지역을 찾았을 때 어쩌다로컬이 그들을 품어줄 수 있는 울타리가 되고 싶어요. 저희를 거쳐 간 누구든 언젠가는 다시 저희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성장하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세상의 단 하나의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냐는 질문을 던졌다. 하나의 키워드, 대단한 사회문제 하나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그들은 답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스텝을 밟는 게 제일 중요해요.” 팀이 되어 함께 기획해나가는 일이, 청년들에게 꿈을 이룰 수 있는 작은 틈을 주는 것이, 누구에게든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되어주고 싶다는 바람을 이야기하는 어쩌다로컬이 디딜 한 발, 한 발이 기대된다.
<혁신살롱 프로젝트>
충남지역에서 자신만의 일과 활동을 이어나가며, 조금이라도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이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어떤 일들을 하며,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연재합니다.
제작 | 충남사회혁신센터x사과나무
글·정리 | 김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