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혁신살롱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산공원 Mar 02. 2023

두 귀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

당진시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부위원장 김광순

‘빛보다도 먼저 길 잃는 사람에게 닿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연민을 느끼는 마음도 아니고 눈물을 흘리는 눈도 아닙니다. 그저 들어주기만 하는 귀입니다. … 듣기에는 간단한 것 같지만 어렵습니다.’ 소설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에서는 위로의 방법으로 ‘그저 들어주는 귀’를 언급한다. 어떤 감정도 앞세우지 않고 누군가의 말을 가만히 듣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함부로 상대를 재단하지 않으려는,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태도이다. 충청남도 당진시에 사는 김광순 씨는 그렇게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위로해야 하는 순간만이 아닌 모든 순간에 그렇게 귀를 기울인다. 그는 자신의 판단 기준을 내려둔 채 상담가로서, 장애 전문학교의 교사로서, 당진시의 시민 모니터링단으로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 듣기가 끝나면, 김광순 씨는 그의 입장이 되어 대화를 이어간다. 이것을 반복하며, 김광순 씨는 변화를 만들었다. 내담자와는 신뢰를 쌓았고, 학생들과는 친구가 되었고, 지역에는 행정적 발전을 이뤄냈다. 그는 도대체 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것일까. 그런 그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2022년 12월, 당진에서 김광순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김광순 님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특정 공간이 있지 않을까 하는데, 어디인가요?

저다울 수 있는 특정 공간은.... 음, 굳이 표현하자면 ‘사이’예요. 사람과 사람 사이요. 제가 사람을 많이 만나거든요. 제가 하는 활동을 설명하자면, 우선 본업은 상담사이고, 최근에 의미 있는 활동으로는 장애특수학교에서 성통합상담사로 성교육강의를 하고 있고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 부위원장을 맡아서 시민모니터링 활동도 하고 있어요. 이 일들을 하면서 누군가와 대화해야 할 때, 그 순간에 펼쳐지는 세상이 좋아요.


그렇다면 김광순 님 다운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역할을 뒤로하고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만나는 거예요. 역할을 앞에 세우면, 일을 처리하는 데에만 집중하게 되고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저의 역할 또는 판단기준을 내려놓고 만나려고 해요.


가장 최근의 사람 대 사람으로서 대화가 잘 된 순간은 무엇이었나요?

장애특수학교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저는 집단 상담의 형식을 빌려 다 같이 이야기하는 방식의 수업을 하고 있어요. 그렇게 수업 중에 학생들과 대화하다가, 그들이 불편하다는 것을 잊어요. 보통 수업 전에 선생님들께서 학생들의 특성을 알려주시는데, 제가 그런 특성들을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이었어요. 교사와 장애 학생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거죠.



"역할을 앞에 세우면, 일을 처리하는 데에만 집중하게 되고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저의 역할 또는 판단기준을 내려놓고 만나려고 해요."



말씀하신 교육 현장에서,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대화를 위해 노력했던 소통 방법이 있나요?

학생들을 판단하지 않고 저의 가치 기준으로 만나지 않으려고 해요.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저에게 감정을 거칠게 표현한다면, 그 행동을 비난하거나 설명하기보다는 저를 진솔하게 드러내려 해요. “선생님 깜짝 놀랐어. 가슴이 콩닥콩닥해. 좀 살살해주세요.” 이렇게 반응해요. 제가 그들을 평가하지 않고 진솔하게 이야기하면 학생들이 뭔가 다르게 표현하기 시작하며, 더 집중해 주는 것 같아요. 선생님들도 ‘학생들이 이렇게 집중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할 만큼 적극적으로요.


수업과 소통 방식을 보니 상담사의 특성이 김광순 님의 활동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아서 상담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상담가가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서른에 당진에 와서 부모를 대상으로 아이와 잘 지내는 기술, 부모교육을 했어요. 그런데 어떤 분이 “저는 조용한 게 좋은데, 우리 딸이 말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 미치겠어요”라고 하시는 거예요. 정말 놀랐어요. ‘부모 교육에서 방법이나 기술이 아닐 수 있겠다.’ ‘기술이 다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한 거였어요. 당시에 그분의 고민을 해결할 부분은 기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 상담을 배워 기존의 방법이 아닌 다르게 도움을 주는 교육 강의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해 상담을 배웠는데, 제게 잘 맞더라고요. 그래서 상담사가 됐어요.


그렇다면 상담사 활동이 지역 활동으로는 어떻게 이어진 거예요?

상담 초반엔 지도교수님과 함께 당진 이외의 지역에서 활동하고 다녔어요. 그렇게 타지역을 넘나들며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성장을 돕다 보니, 문득 지역에서도 도움을 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때 마침 시청에 아는 분이 ‘시민참여단을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셔서 바로 참여했죠. 상담한 덕에, 사업의 종류나 주제가 무엇이 됐든 사업과 관련된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제대로 전해줄 수가 있더라고요. 그렇게 시민참여단 일이 주업이 될 정도로 열심히 했네요.




지역에서는 주로 무슨 일을 하셨나요?

약 4년 정도 시민참여단으로서 당진시의 많은 사업을 모니터링 했어요. 사업과 관련된 시민들의 의견들을 묻고 제가 그분들을 대표해서 지자체에 의견을 전달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지금은 모니터링도 하고 장애인과 관련된 사업들을 구체화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실질적인 도움을 줄 만한 것들, 예를 들어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등을 고민하고 있어요. 최근엔 갈 곳이 많지 않은 성인 장애인분들과 함께 지낼 방법을 찾는 중이에요.


하고 계신 지역 활동의 범위가 바뀐 이유가 있나요?

저의 개인적인 경제적인 상황 때문이에요. 제게 힘이 10이 있으면 7을 경제적인 보상이 없는 지역 일에 쏟고 나머지 3으로 경제활동을 했어요. 꽤 오랫동안 이렇게 지내다 보니, 이젠 생계 고려를 해야겠더라고요. 또 중요한 것은 저 외의 다른 분들도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하는 시민참여단을 해봐야 한다 생각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지역 활동 범위를 바꾸어 다르게 활동하게 된 거예요.




"지금은 모니터링도 하고 장애인과 관련된 사업들을 구체화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실질적인 도움을 줄 만한 것들, 예를 들어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등을 고민하고 있어요."



그런데 활동 범위를 바꾸더라도 에너지엔 한계가 있잖아요. 끊임없이 계속 지역에서 활동하기란 쉽지 않을 텐데, 동력이 무엇인가요?

사람을 만날 때 판단을 좀 내려놓고 만나려 노력하니 이뤄지는 게 있었어요. 상대가 저를 믿고 기꺼이 이야기해 주고, 저도 기꺼이 들어주는 그런 경험이요. 경이롭죠. 또 각자의 이야기가 모두 다 달라서, 그들과 대화하면 같이 성장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막 희열도 느껴져요. 이것 때문에 계속 사람들을 만나고 지역 활동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또 제가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신할 수도 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고요. 어떤 부분에서는 실제로 변화가 되는 것도 보이니까, 더 신나게 활동할 수 있는 거고요.


지역 활동에 개인적인 뿌듯함 외에 다른 게 있나요? 이런 점이 특히 좋다든지 같은 거요.

지역 활동을 통해서 얻는 건 개인적인 이득이 아니잖아요. 이게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개인적인 이득이면 얘기하기 부끄러울 수 있잖아요. 주변 시선도 제가 중요해서. 그런데 지역 활동은 공공을 위한 거니까, 내가 참여하고 일궈낸 것들 그리고 그것의 장점에 대해서 마음 놓고 얘기할 수 있는 거죠. 내가 참여하는 게 의미 있다고 느껴지면 거침없이 얘기할 수 있는 것, 그래서 “같이 참여하자"라고 미친 듯이 추천할 수 있는 것. 이게 지역 활동의 매력이에요.


김광순 님이 갖고 계신 각 직업의 특성들이 다른 활동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김광순 님을 특정 직업인으로 한정 지어 소개하는 게 어려울 것 같은데, 다른 사람에게 본인을 어떤 사람이라고 소개하시나요?

저는 저를 ‘귀가 얇은 사람’이라고 소개해요. 다른 사람 이야기를 쉽게 잘 믿거든요. 한때는 이런 제가 줏대 없어 보여, 스스로를 비난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 얇은 귀가 자랑스러워요. 이런 귀 덕분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그들을 믿어줄 수 있잖아요. 그렇게 나도 타인도 모두를 중요하게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음, 생각해 보니 우리가 모두 몸담은 곳이라, 지역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있어요.


주변의 모든 것이 다 중요하다고 하셨지만, 최근에 특히 더 집중했던 활동이 있을까요?

있죠. 최근에 집중했던 건 ‘충남사회혁신센터의 보통의 혁신가’ 사업이었어요. 시민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직접 캠페인을 벌여 변화를 위해 시도해 보는 것인데요. 이 사업이 정말 멋있어 보여서 ‘조력자’로서 함께했죠. 보통 사람들은 불편하거나 어려운 것들은 행정적으로 요청을 한 뒤, 알아서 바뀌길 기다리잖아요.


보통은 지자체의 일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렇죠. 그렇지만 ‘우리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가 해본다’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경험은 엄청나게 중요하거든요. 사실 그 과정에서 주말마다 시간을 내고, 이견을 조율하고, 없는 시간 쪼개서 기획해야 하니 정말 힘이 들었는데요. 그래도 의미가 있으니까 모두가 끝까지 함께 했고, 끝나고 보니 이 참여 과정 자체가 혁신이라고 느껴졌어요.


그러면 상담가로서는 가장 최근에 집중했던 일은 무엇인가요?

박사 과정 중이라, 학업에 집중하고 있어요. 사실 박사 과정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지역 활동하다가 연구해 보고 싶은 게 생겨서 그만! 하하하. 연구 주제는 소논문으로 ‘단체나 모임 내 갈등에 대해 연구해 보고 싶어요. 여러 지역을 다니며, 지역 단체를 내부에서 분열이 생기는 경우를 많이 접했는데요. 지역에서 공동체는 중요한데, 그들이 계속 해산되니까 안타까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서 연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한 가지 일을 통해 자기 계발도 하시고 지역에도 기여하시는 거네요! 정말 실패 없이 그리고 재미있게 활동하시는 것 같아서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혹시 애썼지만 잘 안된 것 있나요?

잘 안된 건 솔직히 없어요. 힘든 점은 있지만요. 지역 활동할 때 가장 힘든 건 ‘물질적인 이득 없이 내 시간을 기꺼이 써야 하는 것’이에요. 제 경우를 예로 들자면, 지금은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하루에 3 정도만 지역 활동을 하기로 했으나, 가끔 어쩔 수 없이 3 이상을 지역 활동에 써야 할 때가 있잖아요. 4와 5만큼 시간을 써야 하는 경우. 그럴 때가 쉽지 않아요.


역시 어려움은 있었군요. 그걸 극복해가며 지금껏 활동해오신 이력을 들어보니 누구보다 도전적이고 혁신적이세요. 혹시 자신도 혁신가라고 생각하시나요?

아직은 부끄럽지만, 앞으로 찐 혁신가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다른 것들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신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요. 보통은 불편한 것을 피해 가라고 하잖아요. 저는 불편한 것도 기쁘게 만나려고 노력해요. 다시 말하면 문제를 문제로 안 보려고 애쓰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 저도 그가 더 궁금해지고, 그도 생각을 더 얘기해 줄 수 있거든요. 그러면 서로 만나는 것 같아요.



"저는 불편한 것도 기쁘게 만나려고 노력해요. 다시 말하면 문제를 문제로 안 보려고 애쓰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 저도 그가 더 궁금해지고, 그도 생각을 더 얘기해 줄 수 있거든요. 그러면 서로 만나는 것 같아요.  "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나, 계획하고 있는 것들이 있나요?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요. 시민이 목소리를 내는 것과 그걸 전달하는 것 모두 여전히 중요해요. 그렇지만 한계가 존재해요. 그들의 모든 말이 정책에 반영이 되거나 사업적으로 연계되긴 힘들죠. 된다고 해도, 사업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요. 그래서 언젠가는 돈을 많이 벌어서, 시민을 돕는 사업을 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서 성인 장애인과 더불어 살기 위해,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직접 만드는 거죠. 보통 장애인들은 활동으로만 만나게 되는데, 그런 것 없이 차 한 잔 마시면서 어울릴 수 있는 장소가 있으면 해요. 전문가들도 자리에 함께해서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고요.


머지않아 곧 하실 것 같아요!

학생들에게 종종 이렇게 얘기해요. “선생님은 5년 뒤에 상담사이면서 사업가가 될 수도 있어.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 그리고 우리가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될지 몰라 우리 만나게 되면 잘해보자” 이렇게 하하하.


원하는 대로 다 이루실 것 같아서 궁금해진 게 있는데요. 이루고 싶지만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소원을 신이 들어준다고 하면, 뭐라고 하실 건가요?

50대, 60대, 70대가 되어도 만남과 대화를 경이롭게 여기는 제 마음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혹시나 제가 잘 나가면 못돼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하하하! 뭔가 힘 좀 써보고 싶고, 욕심이 생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럴 때 누군가를 경이롭게 만나려는 태도를 지킬 수 있다면, 제가 저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마 이것만 지킨다면, 모든 일들이 의미 있는 방향으로 따라올 것 같아요.



혁신이란 무엇인가? 누군가 이 질문을 내게 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김광순 씨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의 교육 강사, 상담가, 지역 활동가, 장애인성통합상담사, 미래의 사업가로 이어지는 일대기를 들려주겠다. 또 그는 사람을 많이 만나며 커리어를 이어가는데, 상대와 대화할 때마다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그것으로 변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겠다. 그래서 혁신은 세상을 크게 바꿔보겠단 일념으로 치열하게 계획해야 하는 게 아니라고, 그저 그처럼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다 보면 이뤄낼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김광순 씨와 즐겁게 나눈 대화를 상상하며 혁신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 듣는 내내 감탄했던 그의 행보는 결국 그가 얇은 귀를 가졌기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사람이 자신을 ‘얇은 귀를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귀는 더 이상 걱정거리나 놀림거리가 아닌 누구나 한 번쯤은 갖고 싶은 그런 것이 되지 않을까. 일단 나는 그 얇은 귀를 갖고 싶다.




<혁신살롱 프로젝트>
충남지역에서 자신만의 일과 활동을 이어나가며, 조금이라도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이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어떤 일들을 하며,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연재합니다.


제작 | 충남사회혁신센터x사과나무

글·정리 | 성지연

매거진의 이전글 청년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내는 작은 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