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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산공원 Mar 02. 2023

오늘의 삶을 충실히, 자급자족의 ‘현재’를 꿈꾸기

‘스트릿 비건 파이터’ 임소영

‘동물도 살고 싶다’라고 쓰인 ‘스트릿 비건 파이터’의 깃발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했다. 9월 24일 기후정의 행진의 날, 휘날리는 여러 깃발 속에 더 눈길이 가는 깃발이었다. 스트릿 비건 파이터는 기후 위기의 최전선에서 동물들과 연대하며 이 위기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들이다. ‘탈육식 탈자본’ ‘채식천국 육식지옥’ 따위의 말이 적힌 피켓과 함께 길 한 가운데에서 자신만만한 포즈를 취하는 스트릿 비건 파이터들의 활동 모습을 인스타그램(@street_vegan_fighter)에서 먼저 만났었다.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지닌 일들에 관심이 많은 임소영 씨는 스트릿 비건 파이터의 활동가이자 한살림 생활협동조합 천안아산의 활동가이기도 하다. 결이 달라 보이는 활동들을 자유자재로 펼쳐내는 그의 에너지가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했다. 소영 씨의 답은 명쾌했다. “안전한 공간, 공감과 용기를 주는 사람들, 적당한 노동시간에서 오는 일과 생활의 균형!” 지금처럼 불공정한 세상에서 동물을 포함해 세상의 모든 이들이 해방되어 자유를 얻기를 꿈꾸는 소영 씨의 이야기는 내내 흥미진진하고 짜릿했다.


‘가장 나다워지는 공간’을 그려달라고 부탁드렸더니 집을 그리셨어요. 지금 살고 있는 곳인가 보죠? 소영 님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타인에게서 자유로워지는 공간이요. 아무 표정도 안 지어도 되는 곳이죠.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져보는 제 공간이에요. 그전에는 제 방이 없었거든요. 처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채워 넣고, 내 사람들도 초대하고, 나서서 환대해주고 그럴 수 있어서 좋아요. 여기, 침대에 누워있는 제 모습을 그려봤어요. 집에서 혼자 있을 때의 저는 대부분 이렇게 침대에 누워있습니다. (웃음) 벽에는 스트릿 비건 파이터의 피켓이 걸려 있고요.


안 그래도 인스타 계정을 보고 스트릿 비건 파이터에 대해서 궁금했어요. 어떤 모임인가요?

왜 기후 활동에서까지 동물권 관련 논의나 고민이 뒷순위로 밀리는지 좀 답답했어요. 그런 고민과 문제의식을 느낀 기후단체 활동가들이 모여서 ‘식탁을 전환하는 기후 활동가들’ 줄여서 ‘식전기’라고 하는 모임을 만들고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어요. 저도 식전기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자연스럽게 스트릿 비건 파이터 활동이 파생됐어요. 처음엔 ‘9.24 기후행진’을 맞아 우리를 알리고 동물의 목소리를 대변하자는 목표로 만들어진 일회성 프로젝트였어요. ‘9.24’가 지난 지금은 앞으로 어떻게 활동해나갈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평소 가장 애정하는 물건이나 소개하고 싶은 물건이 있나요?

 책… 제게 새로운 관점을 일깨워준 책들이요. 첫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책은 독일의 에코페미니스트인 마리아 미즈와 베로니카 벤홀트-톰젠 둘이 함께 쓴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힐러리에게 암소를》이라는 책이에요. 그 책을 보고 나서 처음 비거니즘과 생탲의를 고민하고 지향하게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에코페미니즘까지 관심이 이어졌고, 지금은 자급자족의 삶이라는 꿈도 생겼어요. 솔직히 ‘자급자족이 현실적으로 가능해?’ 이런 의심이 들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 책을 읽고는 자급자족하며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어요. 또 한 권은 ‘현재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에크하르트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라는 책이에요. 거기 나왔던 말 중에 ‘영원한 현재’라는 말이 너무 좋아요. 그동안 뭐랄까 너무 과거나 미래에 사로잡혀 산다는 생각했는데, 그 책을 보면서 ‘현재에 있으려고 노력하자’는 관점을 갖게 되었어요. 여전히 어렵지만 그렇게 계속 생각하려는 거죠.


과거나 미래에 산다는 생각이라니, 어떤 걸까요?

저는 항상 경우의 수를 생각하는 사람이었거든요. A부터 Z까지 계획을 만드는 복잡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다 무너지면서 우울감을 겪었어요. 나중에는 그 계획들이 온전히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쳤고요. 무한 성장을 외치는 자본주의 체제가 그런 식으로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거죠. 미디어가 비추는 삶, 돈을 버는 부자의 삶, 끊임없이 생산하는 삶… 그런 삶이 ‘주류’라고 믿게 되잖아요. 그런 걸 따라가려고 저도 A부터 Z까지 계획을 세웠던 거고, 그게 좌절되는 경험을 한 거죠. 그때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책을 만났어요. 묘한 인연인 게, 지금 이 순간을 살라는 가치와 자급의 삶이 연결되는 거예요. 농사를 직접 지어서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을 마련하는 것, 생명과 직결되는 일들이잖아요. 자본이 만들어낸 모든 것이 사라져도 제가 만들어낸 이 생명과 가치는 사라지지 않아요. 그래서 ‘현재를 소중하게’와 ‘자급자족’의 삶에 더 분명하게 방향성을 두게 되었어요.


언제부터 그런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었나요?

페미니즘 캠프에 참여하게 된 게 시작이었어요. 내가 지금까지 자기혐오했던 많은 일들이 사실 내 탓이 아닌 게 많구나, 이 사회의 구조가 여성들을 이렇게 내몰았구나, 나도 그 구조의 피해자가 될 수 있겠구나, 이런 걸 깨달았죠. 그 캠프에서 ‘페미니즘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때 참가자 중에 비건을 지향하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이 불공정한 구조 속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존재는 누굴까요?”라고 질문을 던지더라고요. 글쎄 누굴까 싶었는데, “동물이죠.”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때 충격을 쾅! 하고 받은 거죠. 이제껏 제가 구조의 피해자라고만 생각했는데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계기였어요. 그때 비거니즘을 지향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비거니즘을 알게 되니 먹거리와 환경 문제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자급자족해야 세상에 덜 가해하고 덜 폐를 끼치며 살겠구나, 하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졌고, 비거니즘 캠프도 참석하게 되었죠.




"비거니즘을 알게 되니 먹거리와 환경 문제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자급자족해야 세상에 덜 가해하고 덜 폐를 끼치며 살겠구나, 

하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졌고, 비거니즘 캠프도 참석하게 되었죠. "



여러 캠프를 많이 다니셨네요. (웃음)

제가 실은 ‘양성과정’ 매니아예요. (웃음) 집에 있는 수료증만 22개예요. 심지어 저 레크레이션 강사 수료증도 있어요. 공정여행가 양성과정도 듣고, 팜스테이너 양성과정도 들었고요. 수어도 배우고 싶어서 오래 다녔어요. 호기심도 많고 하고 싶은 거나 생각나는 건 바로 해야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예전에 엄마랑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수면 내시경을 받는 날이었는데 “엄마, 나 수면 마취했는데 못 일어나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니까 엄마가 그러더라고요. “너는 호기심이 많아서 벌떡 일어날 애야.”라고요. (웃음)


에너지가 대단해 보여요. 양성과정 매니아라고 하셨는데, 대체로 사회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과정을 수료하신 거 같고요. 그런 호기심과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나요?

비거니즘 캠프에 참여했을 때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같은 감수성을 지니고,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서 얻는 에너지가 크더라고요. 안전함을 느끼면 편안해지잖아요. 솔직히 혼자였다면 비거니즘을 시작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정보도 방법도 아무것도 몰랐으니까요. 그 캠프 마지막 날에 누군가 등을 떠서 대전지역 카톡방을 하나 만들었어요. 거기서 비건 관련 정보를 나누다가 지역 범위를 충청으로 더 넓혀서 ‘아삭아삭’이라는 이름으로 오픈카톡방을 또 만들었고요. 정보도 주고받고 번개도 하고 모임도 열고 무엇보다도 좋은 건 서로에게 용기를 주는 곳이에요. 이런 가치 있는 행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요. 요즈음의 삶에서 꽤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모임이에요.


하루의 에너지를 10이라고 하면,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서 하루를 쓸지 궁금해요.

지금 한살림 천안아산에서 조합원 담당 활동가로 일하고 있어요. 한살림을 유기농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라고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생명운동을 하는 단체거든요. 유기농 제품 판매는 그 일환이고요. 생명운동이 근본인 만큼 조합원들을 조직하는 일이 중요해요. 조합원 모임과 활동, 교육과 행사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일 자체가 좋아요. 왜냐면 10시부터 4시까지 근무거든요. (웃음) 4시쯤 끝나면 요즘엔 무에타이를 배우러 가요. 그러고 저녁 먹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죠. 4시에 일이 끝나면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더라고요. 스스로 저녁을 차려 먹는 그런 삶이요. 이전에는 일하는 데에 에너지를 8을 쓰느라 내 생활이 없었다면, (4시에 일이 끝나는) 지금은 일과 생활이 5대 5로 맞춰진 느낌이 들어요. 균형이 맞는 게 만족스럽죠. 제가 좋아하는 이런저런 양성과정들도 무리 없이 들을 수 있고요. 하고 싶은 활동도 할 수 있어요. 진짜, 스트릿 비건 파이터도 그래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6시에 일이 끝나는 회사에 다녔다면 여력이 없어서 못 했을 것 같아요.


한살림에서 일하는 건 어떤가요? 처음에 기후운동에서 동물권이 뒷순위로 밀리는 것에 대해 답답함이 있었다고 이야기했었는데요.

아무래도 지역이다 보니 동물권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같은 감수성을 지닌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죠. 그렇지만 저의 존재가 그들에게 영향을 미칠 거로 생각해요. 한살림에서 일하다 만나는 사람 중에는 저처럼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을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한살림 활동하면서 생태나 비거니즘에 관련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공감해주고, 서로 연결감을 가질 때 희망이 보여요. 한살림도 축산 사업을 하고 있지만, 결국 생명운동이거든요. 사실 한살림 선언이 멋있거든요. 거기 보면 ‘생명을 속이지 않는다, 생명을 더럽히지 않는다.’ 같은 말이 쓰여 있어요. 원래의 방향대로, 진짜 그 철학에 맞게 만들어가고 싶은 그런 마음이에요.


활동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최근에는 스트릿 비건 파이터로 ‘9.24 행진’을 했을 때인 것 같네요. ‘9.24’ 전까지 소셜미디어에 사진과 메시지를 계속 올렸거든요. 솔직히 아무도 모를 줄 알았는데, 저희를 알아보고 찾아와주는 분들이 있었어요. 너무 반갑게 대해주고 함께 행진하는데 뭉클하고 감사하더라고요. 이 활동이 이렇게 전달되고 있구나, 라는 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어요.




"사실 한살림 선언이 멋있거든요. 거기 보면 ‘생명을 속이지 않는다, 생명을 더럽히지 않는다.’ 같은 말이 쓰여 있어요. 원래의 방향대로, 진짜 그 철학에 맞게 만들어가고 싶은 그런 마음이에요."



양성과정 매니아, 한살림 활동가, 스트릿 비건 파이터 같은 다양한 생명운동을 하는 활동가…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소영 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한마디로 자신을 정의해본다면요?

음, ‘자유와 해방을 꿈꾸는 비거니즘 활동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자유로워지고 싶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이 체제가 나를 비롯해 많은 이를 괴롭게 하므로 저만이 아니라 모두가 자유로워지는 그런 세상을 꿈꿔요. 그 안에 비거니즘도 포함되어 있죠. ‘모두가 해방되지 않으면 아무도 해방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꼭 그 말처럼 살고 싶어요.


소영 님은 이 코너에서 ‘혁신가’로 소개될 예정이에요. ‘혁신’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처음에 이 인터뷰 요청을 받았을 때 좀 부담스러웠어요. 그런데 또 바꿔서 생각해보니까,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라고 누군가 생각하게 만든다면 그게 혁신가가 아닐까?’ 싶은 거예요. 제 이야기를 읽으면서 ‘누구나 혁신가가 될 수 있는 거구나’ 하고 생각할 테니까요.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습니다. (웃음)


아까 이야기한 꿈, 현재에 충실한 자급자족의 삶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제 고향이 부여거든요. 언젠가는 꼭 부여로 돌아가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어요. 제가 상상하는 어떤 게 있거든요. 먼저 부여에 작은 독립서점을 하나 열어요. 동네 책방이죠. 거기서 가끔 팝업으로 비건 식당 같은 것도 하고요. 부여에는 아직 비건 식당이 없거든요. 그리고 서점 공간 한편에 작은 텃밭이 있어요. 거기서 나는 농작물로 자급자족하고요. 그런 공간을 마련해놓고 이웃들과 물물교환도 하고 채식 강연 같은 것도 열고 다양한 문화도 나누는 그런 활동을 하고 싶어요.


만일 어느 날 신이 세상의 단 한 가지의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제안한다면, 소영 님은 어떤 소원을 말하고 싶은가요?

근데, 저는 진짜 궁금하긴 해요. 동물해방이 된 세상의 모습이요. 지금 사회구조의 가장 아래에 있는 동물들이 해방되면 정말 말 그대로 모두가 해방된 상태일 테니까요. 그런 세상의 모습이 너무 궁금해요. 저는 요즘 교회를 안 나가긴 하지만, 모태신앙이거든요. 성경에 에덴동산이 나오잖아요. 성경에서 표현하는 에덴동산의 모습일까 싶기도 해요. 서로 죽일까 하는 걱정도 없고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 그냥 여기에 있는 모든 게 어우러져 있는…, 불안하지 않고 매일 마음이 충만한, 그런 평온한 상태, 그런 세상. 거기서 모두가 현재를 사는 거예요. 제가 죽을 때까지 그런 세상이 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가깝게 왔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기도하고 싶어요.





나의 존재 자체가 드러나는 것만으로 어쩌면 조금이나마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전할 수 있다는 소영 씨의 말이 마음에 남았다. 자기가 속한 자리에서 작은 실천을 하는 자기 모습을 내보이는 일이 혁신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니. 혁신이라는 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소영 씨와 이야기하면서 한 번 더 확신할 수 있었다. 소영 씨가 지닌 유쾌하고 다정한 에너지가 나의 마음을 밝혀주었다. 나도 오늘부터 무엇이든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자유와 해방을 누리는 그 세상에 한 발짝 가까워질 수 있도록.



<혁신살롱 프로젝트>
충남지역에서 자신만의 일과 활동을 이어나가며, 조금이라도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이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어떤 일들을 하며,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연재합니다.


제작 | 충남사회혁신센터x사과나무

글·정리 | 김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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