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대하소설을 쓸, 이동호
홍성 홍동의 작은 동네 길에서 이동호 씨를 만났다. 작업복을 정리하고 인사를 건넨 그는 마당의 텃밭의 농작물들을 하나씩 소개하며 근처 집으로 안내했다. 그의 작은 집 문을 열자 뱅쇼 냄새가 가득했다. 따뜻한 바닥에 앉아 그가 따라주는 뱅쇼를 마시며 인사를 나눴다. 복층의 집을 소개받고 있을 때 문 앞에 벗어둔 신발을 강아지가 물어간다. 사람들이 찾아오면 늘 저런다고 털털하게 말하며 다시 가져오진 않는다는 농담과 뱉는다. 꽤 재미있기로 소문난 그와 오랜 대화를 나눴다.
홍동에는 언제 오셨나요?
이 집은 작년 겨울부터 살기 시작했어요. 길 건너편 평촌 목장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목장 소유의 땅을 빌려 살고 있어요.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집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서울은 너무 비싸서 문제고, 여기는 비싸기도 비싸지만 있는 집도 너무 낡은 집들이었어요. 시골에 와서 좀 자유롭게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해보면서 살려고 왔는데 계속 이 집, 저 집 떠도는 생활을 하다 보니까 잃어버리는 것들도 많고 쌓이지 않는 느낌들이 들더라고요.
시골에도 역시 주거 문제가 있군요.
제가 홍성에서 8년 정도 살았는데 이사를 여섯 번 정도 다녔어요. 지금은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는 있지만 그동안 삶의 질이 너무 떨어졌었어요. 부엌에서 밥 먹을 때에만 온기가 돌고 죽지 않을 정도로만 보일러를 돌리고 바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을 잤어요. 이불 속에서 책을 좀 보고 메모하는 정도밖에 할 수가 없었어요. 겨울에는 생활이라고 하는 게 일하고 돌아와서 바로 잠드는 정도밖에 안 됐으니 사람답게 사는 것 같지 않았어요. 그래서 좀 쾌적한 삶을 위해서는 괜찮은 집을 구하거나 집을 지어야 했는데 괜찮은 집을 구하는 건 쉽지 않아요. 짓는 것도 큰돈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러다 결국 집을 직접 지으신 건가요?
목장 형님이 예전에 쓰던 트레일러가 목장 앞에 세워져 있었는데 그 트레일러를 가져와서 위에다 집을 지었어요. 지금도 트랙터에 연결하면 집 통째로 이동할 수 있어요. 이동식 집이죠. 이렇게 집 짓는 방법을 알고 있던 건 아니었어요. 제천에 ‘작은집건축학교’라고 있는데 거기서 동네 형이 가서 일주일 동안 집을 집는 법을 배워왔어요. 다녀오곤 우리에게 작은 집을 짓자고 부추겼죠. 하지만 이런 실험적인 집을 짓고 살아보기 위해선 지을 돈도 있고, 작은 집에 진짜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어야 했는데 제가 그 조건에 걸려들었어요. 꿰임에 넘어가 저도 작은집학교에 다녀왔는데, 말 그대로 홀려버렸죠. 집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타올랐었어요. 그렇게 작년(2021년) 3월에 집을 짓기 시작했어요. 초반에는 속도가 잘 났어요. 2주 동안 같이 외형 작업을 완성했어요. 그런데 집 내부 마감은 혼자 해야 했어요. 같이 지은 친구들은 본업이 있었거든요. 집의 뼈대는 같이 만들었는데 전기랑 보일러를 깔아서 집의 피를 돌게 하고 장판을 깔고 옷을 입히는 건 혼자 해야 했어요. 혼자 공부하며 주말에 짓다 보니 6개월이 걸렸어요.(웃음)
어렵게 지어진 집이네요.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저에게는 집과 마당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앞 마당에서 보내고 있어요. 원래 처음 시작은 작은 텃밭이었는데 기능이 점점 늘어가고 있어요. 텃밭 생활이 재밌다보니 밭 가까운 곳에 살고 싶어 집을 지었고요, 텃밭에 풀이 많이 나니 염소를 키우게 되었고, 잔반을 처리해줄 가축이 필요해 닭을 들였고요. 최근엔 꿀벌을 들여왔어요. 텃밭은 저희가 먹기에 너무 많은 것들이 나와서 꽃을 많이 심게 됐어요. 꽃이 많아지면서 정원이 되어가니까 그럴 바에는 벌을 키울까 하고 이웃집에 가서 벌통 세 개를 얻어왔어요. 꿀벌이 사라지는 시대에 꿀벌을 지켜주고 싶기도 했어요. 벌통을 관찰하는 일은 정말 흥미로운데요. 아직은 몇 년 더 배워야 해요.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 마당에서 보내요. 요새는 농사보다는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있어요. 데크를 만들고 지붕을 고치고 책장이 필요하면 책장을 만드는 작업도 마당에서 하고 있어요. 내가 사는 땅을 알아가고 돌보는 재미를 처음 느껴보는 것 같아요. 깊은 만족감이 있어요. 홍성에 내려와서 빌린 땅으로 농사를 지어보기도 했는데 이렇게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생기는 건 다른 차원의 일 같아요. 예전에 아버지가 하던 주말농장에 가서 고구마를 캐는 일을 했는데 그때 너무 재미없어서 싫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스스로 나가서 밤늦게까지 풀을 베고 뭘 심고 하는 것들이 즐거워서 지금은 놀이처럼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골 생활은 잘 맞으시나요?
여기 홍동에는 의료 생협도 있어요. 그래도 이런 공동체적인 협동의 힘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동네에서 사는 즐거움이 또 있는 것 같아요. 제 개인으로서의 즐거움과 마을 차원에서 같이 더 좋은 일을 도모해 볼 수 있는 곳에 살 수 있다는 게 행운 같아요. 좋은 농부들도 있고, 좋은 일을 통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것과 별개로 돈이 안 되더라도 이 동네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들을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습니다. 예전에는 대단한 사람이 되어서 이름을 알리고 싶었는데,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소중한 건 내가 살아가는 곳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것이구나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사는 땅을 알아가고 돌보는 재미를 처음 느껴보는 것 같아요. 깊은 만족감이 있어요."
이미 유명하시지 않은가요?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하셨잖아요.
우연히 인터넷에 연재하던 글이 묶여서 출판하게 되었던 거예요. 쌀 직거래를 하는 동네 형의 카페였는데, 유기농부로써 생태적인 축산에 대한 이야기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거든요. 대안 축산에 대한 글을 연재했는데, 글을 시작할 당시에는 저도 축산업에 반감을 품었거든요. 하지만 저도 축산업에 계속 종사하다 보니까 어느 정도 구조를 알게 되더라고요. 축산업이 구조적으로 폭력적이고 모순적인 부분이 있지만 그 구조의 제일 밑에 있는 종사자들도 열악한 노동환경과 심리적으로 피폐해지는 상황을 감내하고 있어요. 인간은 개를 보거나 염소를 볼 때 어떤 생명에 대한 감각을 느끼게 되어있는데요. 축산업은 축사 안에 수백, 수천 마리의 동물을 몰아 놓음으로써 생명의 감각을 구조적으로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요. 모든 것을 그저 돈으로 환원될 물체로 인식하게 만드는 과정이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분명히 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피해자인 거죠. 글을 쓰다 보니, 이건 단순히 개인과 개인이 싸워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태 축산에 대한 생각과 돼지 세 마리를 키우고 잡으면서 느낀 이야기들을 글로 옮겼는데 우연히 공모전에 당선되어 책으로 나오게 되었어요. 축산업 문제나 기후 위기에 대한 논의는 채식과 육식으로만 단순하게 나누어지는데요. 농촌에서 보기에는 또 다른 제3의 선택이 있지 않느냐는 얘기를 열심히 글로 썼죠.
요즘은 어떤 글을 쓰고 계신가요?
제가 살고 있는 모습, 살고 싶은 모습을 계속 글로 정리하고 쓰고 싶어요. ‘난 이런 이유로 돼지를 키웠어요.’, ‘이런 것을 말하고 싶어서 작은 집에 살고 있어요’라고요. 그런데 돼지 이야기가 책이 되는 것을 보고 주변 친구들이 이 집을 지은 것도 책 쓰려고 짓는 거 아니냐? 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책을 위해 이런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고 의심받고 있어요. 저의 순수성을 증명하기 위해 마을 이웃들의 이야기를 글로 남겨보고 싶어요. 제가 일하는 목장의 할머니께 책을 선물해 드렸는데 “돼지 세 마리 키운걸로 책 한 권 쓰면 나는 대하소설 썼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맞는 말이더라고요. 왜냐하면 여기서 돼지를 키운 것도 나 혼자 잘나서 했던 게 아니고 이곳에서 오랫동안 목장과 소규모 유가공을 미련하게 해온 사람들이 있었고, 소농으로써 농촌을 계속 지켜오는 분들이 있어서 이런 결과물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우선 평촌 목장 사람들 인터뷰를 하고 있어요. 주류 사회에서 보면 바보같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요. 다음에는 마을에서 함께 활동하는 다른 친구 이야기를 써봐야겠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타인이라는 지옥’에서 ‘타인이라는 복지’가 가능한 곳이 농촌이라 믿어요.
지금 작은 집 생활은 일종의 실험이라고 생각해요. 많이 소유하지 않아도 되고 작아도 괜찮은 삶의 방식이요."
혹시 일이 하기 싫어질 때는 없었나요?
마을 단체에서 일을 했던 적이 있어요. 여러 개 주민 단체들의 연결을 도모하는 중간조직 기관에서 일을 했어요. 재미는 있었지만 생활비 수준의 적은 월급으로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가 없는 거예요. 그때로써는 땅을 사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월급으로는 땅을 산다거나 집을 지을 수 있는 수준이 안되죠 당연히. 게다가 겉에서 보기보다 마을의 공동체 의식이 높지 않다는 것에 실망했어요. 협동조합의 마을이라면 공동체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뒷받침은 해줄 거라 믿었거든요. 나만 바보가 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만두었어요. 그래도 저는 ‘타인이라는 지옥’에서 ‘타인이라는 복지’가 가능한 곳이 농촌이라 믿어요. 지금 작은 집 생활은 일종의 실험이라고 생각해요. 많이 소유하지 않아도 되고 작아도 괜찮은 삶의 방식이요. 남은 것은 공동체와 나누며 살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 집이 정말 작긴 작지만요.
지금 가지고 있는 고민이 있으신가요?
가장 가까이로는 꿀벌들이 봄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늦게까지 따듯했던 겨울이 꿀벌들에겐 치명적이거든요. 기후변화가 우리에게 닥친 정말 심각한 위기 같아요. 저는 농촌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기후 위기를 해결할 방법이라고 믿어요. 그래서 농촌을 대안적인 삶의 터전으로 만들고 싶어요.
저희 마을은 젊은 친구들이나 또래 친구들이 많이 오고 있어요. 이 친구들이 꿈을 제대로 펼쳐도 보기 전에 제대로 된 집이 없어서 떠난다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 같아요. 이웃이기도 하면서 동료인 친구들, 여기서 자신을 만들어가는 젊은 친구들이 정착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요. 떠나는 친구들이 더 큰 곳에서 배워보고 싶다고 얘기도 해요. 뭔가 화려한, 뭔가 대단한 것들이 어딘가에 있다, 그런 걸 찾아서 서울로 가거나 외국으로 가게 되는 것 같은데요. SNS 같은 자기 증명의 굴레가 지금을 살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저는 인터넷이 발달 된 시대에 배움 자체는 어디서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딛고 사는 땅, 손이 닿는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도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을까요?
이름나지 않고 사는 방식을 배우고 싶어요. 거창한 일을 하지 않아도 내가 위치한 작은 관계망에 사는 일이요. 어디에든 멈춰 서서 당장 천년의 세월이 필요한 일, 그곳을 알아가는 일을 하라고 했던 웬델 베리의 말처럼, 바보처럼 꾸준하게 살아가는 것이 세상을 바꿀 거로 생각해요. 저는 이런 의미를 서로 나누고 존중하고 싶은 차원에서 이웃들의 이야기들을 기록하며 살고 싶어요.
트레일러 위의 집을 나오며 이동호 씨는 무얼 하는 사람일까 생각했다. 농부일까, 축산업자일까, 건축가일까, 아니면 작가일까. 수단과 목적이 무엇이든 상관은 없다. 이야기를 기록하고 남기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는 삶에서 경험하는 순간들을 남기고 전하는 사람이다. 작은 텃밭의 벌통에서부터 돼지와 마을 사람들까지, 사는 이야기를 삶에서 녹여내는 사람이다.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이야기를 짓는 사람. 그의 이야기들은 그를 닮아 따듯한 위트가 녹아있다. 앞으로 그의 삶을 통과할 이야기들을 기다려본다.
<혁신살롱 프로젝트>
충남지역에서 자신만의 일과 활동을 이어나가며, 조금이라도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이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어떤 일들을 하며,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연재합니다.
제작 | 충남사회혁신센터x사과나무
글·정리 | 이성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