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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산공원 Mar 03. 2023

가장 나다운 지금 제 삶이 선명하다고 느껴져요

<부여안다, 부여제철소> 김한솔 대표

‘부여안다’를 발음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KNOW의 뜻이라면 부드럽게 [안ː다]로, HUG라면 [안ː따]로 발음한다. 이 이름은 부여라는 지역을 알아가고, 이곳에 찾아온 청년들을 따듯하게 품어보겠다는 마음이다. 청년공동체 부여안다는 부여 규암마을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이들이 지향하는 바는 모두가 나답게 사는 일상을 지지하는 것. 그렇기에 새로운 시선과 다양한 방법으로 마을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지역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실험한다. 제 손으로 아지트를 꾸미고, 직접 요리하는 레스토랑에서 손님을 맞는다. 마을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잡지를 출판하고, 지역 주민과 뮤지컬도 연출해 올린다. 이들이 펼쳐 보이는 삶의 모습은 지역살이를 고민하는 청년에게 귀감이 된다. 부여안다의 대표인 김한솔 씨를 만났다. 대도시에서 살고 일하던 한솔씨가 연고도 없는 이 작은 시골 마을을 자기 삶의 터전으로 정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부여에 와서 활동을 시작하신 지 2년 정도 되셨죠? 부여에서 일하고 살게 되기까지 과정이 궁금해요. 

부여에 온 지는 3년 차예요. 서울에서는 사회적기업에서 일을 했었어요. 지금 하는 일이랑 비슷했어요. 연고 없이 서울에 올라온 청년들을 위해 셰어하우스를 만들어서 서로에게 울타리가 되어줄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일을 했었죠. 그때 전국에서 지역성을 띠고 일하는 팀들이랑 연결이 많이 되었어요. 코로나로 잠깐 일이 붕 뜬 시기가 있었는데 때마침 부여에서 활동하고 있던 지역 플레이어로부터 제안받았어요. 1년 정도 시골살이하면서 일해보지 않겠느냐고요. 여기가 규암마을이거든요. 나루터가 있어서 옛날에는 번성했던 동네지만, 지금은 중심지가 읍으로 이동하면서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 버린, 멈춰버린 도시가 되었어요. 최근 규암마을 안에 버려진 공간을 서점, 숙소, 카페 등으로 바꾸는 작업을 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매력적인 지역이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시골살이는 도시인들에게는 언제나 로망이잖아요. 그래서 일단 부여로 왔어요.



제안받은 일은 어떠셨나요?

사실 그 일은 잘 안 맞아서 6개월 만에 그만뒀어요. 그렇지만 부여에서 사는 삶은 너무 만족스럽고 재미있었거든요. 그래서 여기서 살면서 내 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큰일을 벌이면 부담이 되니까 실험부터 해본 거죠. 동네에 레스토랑이 하나 있었어요. 사장님이 몸이 안 좋으셔서 잠깐 쉬고 있는 공간이었거든요. 사장님께 이 공간 6개월만 빌려주시면 여기서 제가 팝업 레스토랑을 해보겠다고 제안했어요. 요리에 관심도 있었고 어렸을 때의 꿈이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2021년 6월 처음 시작한 게 부여제철소예요. 다행히 자리를 잘 잡았고 큰돈은 아니었지만, 먹고 살 수는 있겠다는 판단이 들어서 계속하게 되었죠. 그렇게 제 일을 처음 만들게 되었어요.



부여제철소라는 이름이 특이해요. 어떤 레스토랑인가요?

부여에서 나는 제철 재료로 만드는 퓨전요리를 콘셉트로 하고 있어요. 부여스러운 것들을 접목해서 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리로 구상해 봤어요. 부여가 농업 분야 매출이 1조가 넘을 정도로 커요. 인구의 절반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나는 품종도 다양하거든요. 그런데 지역 안에서 이 농산물들이 소비되거나 활용되지는 않더라고요. 제주도 가면 감귤초콜릿도 있고 귤로 만든 상품이 많잖아요. 그런 것처럼 사람들이 부여에서 나는 것들을 가장 신선하고 재미있게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부여제철소 대표 메뉴는 아란치니인데요. 부여의 취나물을 넣어서 저는 ‘아란취니’라고 이름 붙였어요. 지역 분들이 많이 찾아주세요. 청년이 와서 이런 일들을 한다고 하니 언론이랑 연결해주시기도 하고 지역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분들이나 군 의원님이 오셔서 응원해주신 적도 있었어요. 재미있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최근 규암마을 안에 버려진 공간을 서점, 숙소, 카페 등으로 바꾸는 작업을 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매력적인 지역이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시골살이는 도시인들에게는 언제나 로망이잖아요. 

그래서 일단 부여로 왔어요. "



부여제철소로 시작한 한솔님의 일이 부여안다가 되기까지는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기왕 여기서 살 거 친구들을 불러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어요. 시골살이에 관심 있던 친구들 두 명을 서울에서 불렀어요. 세 명이서 생활을 함께하게 되었고 동네 친구 하나 더 껴서 넷이서 빼빼거리고 같이 돌아다녔어요. 그러다가 여기서 같이 사는 거 너무 재미있으니까 우리의 시간을 기록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로컬 잡지의 형태로 만들어보자는 결론이 났고 때마침 괜찮은 공모 사업이 하나 떠서 거기 지원해보기로 했어요. 공모사업 지원할 때 팀명을 제출하라고 해서 지은 이름이 부여안다예요.



잡지를 살펴보니 부여제철소를 비롯한 게스트하우스, 책방, 문화공간의 이야기를 담은 글들이 흥미로웠어요. 부여의 풍경과 등 굽은 할머니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들, 직접 손 글씨로 쓴 편지들이 그대로 담겨 있어 정겹기도 하고요.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신선한 프로젝트로 여겨주시고 나름 많은 조명을 받았어요. 그저 우리의 삶을 기록하고자 했을 뿐인데 재미있게 생각해주시고 오히려 고맙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도 있어서 이 지역과 우리의 궁합이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렇게 시작한 부여안다는 지금 어떤가요?

누구의 친구, 그 친구의 친구가 붙는 식으로 한두 명씩 늘어나서 지금은 20여 명 되는 긴밀한 공동체가 되었죠. 부여에 정착해 살아가는 친구들의 삶을 보고 자기도 여기에 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토박이인 사람들은 이미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지만, 일이라든지 각자의 이유로 청년이 된 이후에 부여로 유입된 친구들은 심심하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흘러들어왔지만 순식간에 되게 끈끈하게 연결되는, 그런 것들이 있어요. 아무것도 없는 시골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부여가 좋고 우리가 여기서 살아가려면 재미있는 일이 더 많이 일어났으면 했어요. 모여서 밥도 먹고 여행도 같이 가고 공간도 만들고 ‘부여비트’라는 뮤지컬 프로젝트도 했고요. 2022년에는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된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었습니다. 부여에 온 것도, 부여제철소와 부여안다를 만든 것도 계획적이었던 건 아니에요. 모든 게 다 그저 흐름이자 우연이었던 것 같아요.



"아무것도 없는 시골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부여가 좋고 우리가 여기서 살아가려면 재미있는 일이 더 많이 일어났으면 했어요. "



어떠세요? 공동체는 재밌으신가요?

부여 생활의 큰 힘이죠. 무슨 일이 있으면 늘 서로 응원해 주는 든든한 아군이에요. 제가 신메뉴를 만들어서 시식회를 열었는데 “와서 피드백도 주고 사진도 찍어서 인스타에 좀 올려주라.” 하면 우르르 와서 같이 밥 먹고 인스타에 홍보도 해주고 의견도 주고요. 이런 친구들이 있다는 건 타지 생활하며 큰 힘이 되죠.



원주민의 텃세 같은 건 없나요?

텃세가 없을 수 없죠. 오해받을 때 제일 속상해요. 지원 사업 받으려고 온 애들이다, 같은 말들이요. 우리가 어떤 패거리가 돼서 부여를 들쑤시고 다니는 것처럼 표현될 때가 있어요. 시간이 필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모두가 하나가 돼야 할 필요는 없으니 서로 존중하며 공존하는 게 목표예요. 시간이 지나면 진정성을 알아주시지 않을까요.



또 힘드실 때는 어떤 때인가요?

사람들이 모이다 보면 갈등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제가 대표이기 때문에 가끔은 좀 무겁다고 느껴질 때도 있어요. 뭔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흐지부지되는 프로젝트도 있고. 그럴 때 저는 대표니까 흐지부지 끝내버릴 수 없는 입장이잖아요. 어쨌든 끌고 가야 하고 마무리를 지어야 하니까. 즐겁자고 시작한 거였는데, 왜 이렇게 돼버렸지 싶을 때도 있죠. 그래도 저는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제 삶이 가장 선명하다고 느껴져요. 업적이나 제가 버는 돈의 액수나 이런 걸 다 떠나서 그냥 제일 나답게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저는 좋아요.



"저는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제 삶이 가장 선명하다고 느껴져요. 

업적이나 제가 버는 돈의 액수나 이런 걸 다 떠나서 

그냥 제일 나답게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저는 좋아요."



말씀해주신 내용 중에 뮤지컬 프로젝트였던 ‘부여비트’가 인상 깊었어요. 어떻게 뮤지컬을 할 생각을 하셨어요?

제가 대학생 때 댄스 동아리를 했어요. (웃음) 지금 부여에 같이 와서 살고 있는 친구가 댄동(댄스 동아리)하면서 만난 친구예요. 부여에서도 계속 춤추고 있고 그래서 뮤지컬도 해볼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예요. 잘하지는 못해도요. 사람들이 자신을 규정하는 타이틀을 다 벗어던지고 새로운 목적으로 모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게 춤과 노래니까 그걸 활용해보자고 생각했죠. 그렇게 만나면 뭐, 아무것도 필요 없잖아요. 내가 나이가 몇 살이고 무슨 직업을 가졌든 간에요. 14세부터 72세까지 다양한 부여 사람 30명이 모여서 4개월간 뮤지컬을 만들었어요. 각자의 틀을 깨고, 시민이 서로 교류하며 함께 마음을 모으는 작업이라고 저희는 생각했어요.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는데, 국립부여박물관 대극장에서 열린 뮤지컬에 700명의 관객이 모였어요. 뿌듯했어요.



이름값이 엄청나네요. 댄스동아리를 하신 것도 너무 재미있는 이력이에요. 우연이라고 하셨지만,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언제부터 이런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대학생 때가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된 중요한 순간이었어요. 제가 정치전공을 했어요.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 제게 큰 영향을 줬어요. 공부하면서 시민 외교에 관심이 커졌어요. 정치적인 이유나 외교의 틀을 깨고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것. 서로 친구가 되고 한 사람의 세계를 알아가면서 혐오와 편견이 없어지는 경험들이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그때 탐방을 많이 다녔는데 나가사키에 간 적이 있어요. 핵폭탄이 투하됐던 지역이잖아요. 이런 뼈아픈 기억을 가진 공동체가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는지, 그리고 이들이 평화를 소망하면서 어떤 활동을 펼쳐가는지 그런 걸 봤던 게 인상에 남아요. 새로운 시각이 생기고 시야가 넓어졌죠.



한솔님이 가장 특별하게 생각하는 공간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부여제철소와 소행성이죠. 소행성은 더 특별해요. 공간이 주는 힘은 모이게 하는 힘인 것 같거든요. 소행성이 생기면서 부여안다가 더 단단해졌어요. 같이 모이고 이야기하고 밥 먹으면서 식구가 되는 공간이니까요. 부여가 궁금한 누군가, 새로운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오고 소행성에서 머무르면서 또 부여에 합류하게 되는, 그런 시작이 되는 공간이에요. 저에게 너무 특별하고 만들기 잘했다는 생각을 해요. 제 부여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소행성일 것 같아요. 이름도 소행성이라고 지은 이유가 세상의 속도와 시선에서 자유로운 우리만의 행성을 만들어보자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이 인터뷰를 읽으실 분들에게 소행성을 꼭 소개해드리고 싶네요.



소행성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어땠나요?

저랑 친구들이 같이 살던 셰어하우스가 있었어요. 방이 하나 비어서 친구들이 매번 와서 자고 가고 그랬어요. 그런데 점점 방문객이 늘다 보니 방 하나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새로운 공간의 필요성을 느꼈어요. 집을 찾아다녔죠. 목표는 월세가 저렴할 것, 용도를 오랫동안 잃어버린 곳일 것, 우리가 마음대로 변형시킬 수 있어야 할 것. 그런데 이 조건 맞는 집을 동네 어른이 구해주신 거예요. 중고나라에서 거래 열심히 해서 비품 모으고 직접 목재 구해다가 자르고 칠하고를 두 달 정도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360만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지금의 소행성을 만들었어요. 그만큼 애정이 있는 공간이죠. 저 방으로 들어가는 아치 벽도 제가 만든 겁니다. 가까이서 보면 조금 이상하지만요. (웃음)



 "제 부여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소행성일 것 같아요. 이름도 소행성이라고 지은 이유가 세상의 속도와 시선에서 자유로운 우리만의 행성을 만들어보자는 뜻이거든요."



사람들이 얼마나 찾아오나요?

2022년 기준으로 새롭게 여길 찾아와준 사람은 150명 정도예요. 누적 숙박 일수는 600일이 넘더라고요. 한달살이 같은 걸 하기도 하니까요. 숙박하지 않고 들른 사람들까지 치면 훨씬 많겠죠.



부여안다가 새겨나갈 올해의 걸음들도 궁금해지네요.

지금까지 해왔던 활동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일들을 해나갈 거예요. 뮤지컬도 작년엔 30명으로 만들었다면, 올해는 60여 명의 시민을 모아볼까 생각 중이에요. 자기를 발견하고 탐구하는 시간이 필요한 청년, 앞으로 살아갈 지역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기 와서 머물고 자기 활동과 삶을 일궈갈 수 있도록 캠프 같은 프로젝트도 기획 중이에요. 숙소 공간도 하나 더 만들 수 있으면 좋겠네요. 거쳐 가기보다는 머물러봐야 이 지역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부여안다와 한솔님의 앞으로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나요?

특별한 계획이 생기지 않는다면 제가 삶의 터전으로 선택한 이 부여에서 계속 살고 싶어요. 제가 나이가 들어서 청년이 아닌 시기가 오게 되면 부여안다라는 공동체는 제가 빠지고 계속 청년들의 것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니면 공동체에 함께하는 세대가 더 넓어져서 제가 선배 그룹으로서 후배 그룹을 계속 서포트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겠죠. 서울에서 일할 때는 주변에 2~30대뿐이었고 어르신들과 소통할 일이 별로 없었는데, 부여에 오니 뭐라도 하나 하려면 이웃인 어르신들과 일단 소통해야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그게 자연스러워요.



한솔 님의 꿈은 뭔가요? 마음속에 품고 계실 소소한 소망들과 원대한 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매일 밤 잠들면서 ‘오늘 하루도 참 충만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잠들고 개운한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할 수 있으면 정말 행복할 거예요. 이런 친밀한 관계가 있는 마을에서 사람과 자연과 동물과 계절에 맞닿은 느낌을 누리면서 사는 게 제 소소한 소망이고요. 원대한 꿈은요. 저는 야망 같은 건 없지만, 지금 부여안다에서 해나가는 일처럼 다양성을 지닌 사람들을 잘 융합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재미있는 일을 꾸리면서 서로 만날 기회가 없던 세대와 세대, 계층과 계층이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중간 조력자의 역할을요. 그럴 때 일과 삶이 일치된 느낌을 많이 받거든요. 그래서 제 삶이 지향하는 바가 세상을 더 이롭게 하는 그런 모습이었으면 좋겠어요.





부여의 매력이 무엇인지 물었다. 한솔씨는 이곳이 가진 역사와 풍요로운 자연환경을 꼽았다. 하지만 부여를 자기 삶의 터전으로 인식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것은 환대라고 말했다. 아낌없이 지지하고, 응원을 받은 이가 자신을 믿고 무럭무럭 성장하며, 그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은 누군가 부여안다를 찾아오면 또다시 그들을 환대하는 일. 이런 긍정적인 순환의 구조를 만들고 찾은 것이 부여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혁신살롱 프로젝트>
충남지역에서 자신만의 일과 활동을 이어나가며, 조금이라도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이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어떤 일들을 하며,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연재합니다.


제작 | 충남사회혁신센터x사과나무

글·정리 | 김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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