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포의 두번째 책이 나왔다. 일년에 한권정도는 책을 만들고 싶었는데 유야무야 뒷전으로 미뤄져 조금 초조하고 마음의 짐이 늘어가던 차에 어느 날 갑자기 원고가 찾아왔다.
난리법석 프로젝트로 만난 딸기는 강정에 사는 평화바람 식구다. 2012년에 인터넷을 떠돌던 구럼비의 사진을 보고 강정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다. 구럼비 너럭바위, 동그랗게 모인 물 안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의 사진. 그 사진에 마음이 홀려 한동안 강정 투쟁을 관심 있게 지켜봤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오래 잊고 지내다 몇년전 사과나무 식구들과 강정에 처음 머무르게 되었다. 이미 해군기지는 완공되었고, 마을공동체는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는. 그런 소식들만 전해 들어 나는 이 싸움이 다 끝나버린 것이라는 생각을 혼자 해왔다.
그런데 강정에 오니 여전히 매일매일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남아있었다. 그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남아있는지, 이미 져 버렸다고 여겨지는 싸움을 계속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지인지 궁금했다. 운동은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잘 알려지지 않은 채로 계속 싸운다는 건 왜 때문? 왜 이렇게 남아서 누가 반기지도 않는 동네에 살고 있는거지? 카카포 출판사를 만들 때 언젠간 이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그런데 그런 차에 꼭 담고 싶었던 이야기가 뚜벅뚜벅 제 발로 온 것이다! (우리 영업부장 사장님 역시나 훌륭해!)
'돌들의 춤'은 군사기지 반대 운동에 함께 하며 강정에 이렇게 저렇게 흘러들어온 강정 지킴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인간띠를 잇고, 미사를 드리고, 영화를 찍고, 카약을 타고, 춤을 추고, 공간을 내어주고,기록을 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싸우며 강정을 지키는 사람들 11명의 인터뷰가 실렸다. 우리가 만들어서 그런게 아니라,, 이 책은 정말 훌륭한 책이다! 1안을 만들 때 왼쪽 정렬 편집을 하면서 하나씩 읽어보다 뚝뚝 울었다. 이 장면 때문이다.
군 관사 투쟁할 때 그 앞 천막에서 토란 결혼식 잔치가 있던 날이었어요. 한 용역이 우리를 찾아온 거예요. 부인을 데리고와서 꼭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고, 아이가 생겼는데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했어요. 문정현 신부님도 기뻐하면서 안아 주고 모두 축하해줬지요. 예기치 못한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선한 의지로 모이는 인간 연대 속에서 미사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어요.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일을 미사를 통해 군사문화가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핵심적인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한 것이죠.
-<돌들의 춤>, 땅의 평화를 심는 사람 정선녀 인터뷰 중-
사실 이 부분은 (내가 느끼기에)이 책에 가장 드라마틱한 부분이다. 다들 별 것 아닌 이유로 강정으로 흘렀고, 대단히 커다란 의지와 사명감 없이도 그냥 일상적으로 강정을 살아낸다. 그 일상 안에 아름답고 당연한 뭔가를 지키려는 싸움이 습관처럼 베어있다고 느꼈다. 선명하게 말하지 않아도 11명의 지킴이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 운동이 어떤 힘을 갖는지, 어떤 의미지인지 감각하게 된다.
여러 번 들여다봤지만 만들면서도 다시 찬찬히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보통은 꼴도 보기 싫다고요) 구럼비 발파 10주년에 맞춰 책을 냈다. 늘 있는 일이지만 정신없이 출력을 마치고 오전에 갓 구워진 따끈한 책을 50권 챙겨서 강정으로 배달까지! 그동안 만들어온 종이 인쇄물 중에 가장 물성이 좋고 만듦새가 맘에 든다. 사실 그래서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본의 아니게 더 잘될 것 같은 느낌.
뭣보다 좋은 것은 제목에 몫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 '강정지킴이 활동기록집' 뭐 이런 이름을 달고 왔는데 그건 말도 안 되고.. 강정을 떠올릴 때 가장 커다랗게 다가오는 이미지가 '돌'이었으니 '돌들의 섬'을 제안했다가, 이 싸움에 어울리는 '춤'이라는 단어를 만나 '돌들의 춤'이 되었다. 부르는 어감이나 발음은 썩 어색하지만 그래도 뭔가 익숙하면서도 기억에 남는 이름이다. 그리고 책을 읽다보면 얼마나 어울리는 제목인지 알게 된다.
책이 요렇게 짠! 하고 나왔을 때 인터넷 서점에도 나오고 보도자료도 뿌리고 마케팅도 하고...이런 타이밍을 잘 맞추었어야 했으나 아직 출판 일은 익숙하지 않고 일의 포화로 그렇지 못해서 미안하고 아숩다. 조만간 뿅 하고 공개되었을 때 책을 많이많이 사시라! 책의 판매금은 강정지킴이들의 새 공간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첫 책은 두근거리며 쪼곰 아쉽고 두 번째 책은 재밌고 세 번째 책은 더 욕심이 날 것 같다. 그게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년에 한번은 이런 적당한 고생스러움과 성취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