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계절_3.17-19

by 소산공원

산책이 계절이 왔도다! 늦잠을 푸욱푸욱 자고 일어나 밀린 빨래와 설거지를 했다. 오전 11시 정도가 되면 해가 좋아지는걸 아는지 니나랑 호옹이는 창가로.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기를 돌렸다. 이사를 오면서 당근으로 여러가지 살림을 마련했는데, 그 와중에 청소기는 새 것으로 질러버렸다. 장판을 들어올리는 엄청난 흡입력! 청소기를 돌릴 때마다 이불 위 고양이 털과 먼지들이 사라지는 즐거움이 엄청나다. 오래 쓰고 나중에 누군가에게 꼭 물려주어야지.



걸어서 중앙시장에 가 만삼천원이나 하는 평양냉면을 먹고 원성천을 따라 산림조합에 가서 눈에 아른거리던 화분을 사왔다. 새 화분을 들이지 않겠다는 다짐같은 걸 매년하긴 하지만... 별로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대신 해와 바람이 좋은 이 집에서 오래오래 함께해야지. 전에 한번 고무나무 당근을 하러 누군가의 집에 들러 삼십분 넘게 그 집 베란다에서 화분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저 소철은 우리 00회사 과장인 우리 아들 태어났을 때 식재한 것, 저 화분은 oo년이 된 것..'. 청소기를 물려줄 때가 오면 나도 누군가를 붙들고 그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아라리오 화분은 볕이 좋은 어느 3월에 평양냉면을 먹고 동네를 산책하며 사온 것....



산림조합에서 산 화분을 들고 정컾에서 아아메를 마시고, 시장에서 장을 보고 집에 오는 길에 자그마치 3번이나 내 손에 든 화분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나를 붙잡아 멈춰세우고는 이 식물의 이름이 이것인가, 저것인가 토론을 하는 벤치의 할머니들, 가만히 봉지를 들춰 잎사귀를 만져보고는 얼마인지 묻고 '그렇지 이렇게 희귀한 화분은 그정도하지'하던 할머니, 다짜고짜 '이게 이름이 뭐래유'하던 단도직입 할머니까지... 동네에서 할머니 친구 사귀고 싶으면 화분들고 다니면 되는구나...갑자기 또 원성천에서 화분과 씨앗들의 마켓을 하면 재미나겠다,.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다.



저녁이 되면 전만큼은 아니지만 꽤 쌀쌀해 방문을 다 닫고 침대에 앉아서 이런저런 일들을 한다. 어제 오늘은 드라마를 보면서 뜨개질... 초록색 실을 사서 이상한 것들을 잔뜩 뜨고 있다. 뭔가 이끼와 요상 식물의 세계를 만들고 싶은 욕구랄까.. 아직 열리지도 않은 화분과 씨앗들의 마켓에 팔면 좋겠다는 생각도 또 하게되고.. 아무튼 잔뜩 만들어버린 이상한 코스터를 보고 있으면 자꾸 웃음이 난다. 그럼 됐지 뭐...



지난 금요일엔 킹스오브컨비니언스의 공연을 다녀왔다. 사는동안 얼렌드오여를 실제로 보게 되다니.. 기타연주를 실제로 들을 수 있다니.. 신기하단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사실 공연이라는 건 무진장 애쓰지 않으면 가까이에서 볼 수도 없고, 누군가의 뒷통수를 더 많이 보게 되는 것이라서 많이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더 좋은 순간들이 많았다. 조명을 끄고 눈을 감고 가만히 기타소리를 듣는 순간. 앨범에서 들어보지 못했던 마구 라이브 연주를 듣는 그런 순간들. 좋아하는 몇몇 가수들의 공연을 한번쯤은 찾아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을테니까. 적절한 시기라는건 누구도 가늠할 수 없을테니까. 그러니 그 시기를 맞추기 위해서 시간을 많이 남겨두는 사람이고 싶다. 이 짧은 시절들을 어찌하면 적절하게 잘 모으고 기록할 수 있는지.. 그런 궁리들을 많이 하게 된다. 그치만 궁리보단, 밤마다 졸린 눈으로 투닥투닥하는 그 습관들을 계속 해내야지.



요새 마침내 사과나무의 일이 조금 잦아들었고, 이례적인 잔고를 찍었다. 종종거리지 않도록 중심과 뿌리를 잘 돌보아야겠다. 담주엔 꼭 뒤늦은 봄맞이 대청소도 할거야...! 내일 출근하면 라일락이 잎을 틔웠을 것 같다. 이게 또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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