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이_3.20

by 소산공원

영혼 없이


1

어딘들

어디에나

어디서도


그런 말들을 조약돌처럼 가지고 노는 하루가 있다


영혼 없이

시를 쓰고 싶은 날


2

내 안의 어린 시인에게 묻는다

-작고 날렵하고 갉아 먹는 것을 떠올려보렴

내가 생각했던 답은 죽음이었지만

어린 시인은 별 고민 없이 다람쥐라고 말한다

어쩜 그리 단순하고 상상력이 없냐고

나는 어린 시인을 꾸짖는다

비 온 뒤의 풀 냄새가 사람의 마음에 어떤 일을 저지르는지

돌 안에서 돌이 짓고 있을 표정을 상상해본 적이 있냐고


-시를 환상 속에 두지 마세요

어린 시인은 단호히 말한다

쓰러진 물컵 속에는 물 외엔 아무것도 없다

슬픔이나 절망 같은 건 더더욱 없다


3

영혼 없이 적은 문장에는 영혼이 없는가

나는 턱을 괴고 창밖을 본다


바퀴 없이 굴러가는 자전거나

심지 없이 타오르는 초처럼

없어도 있는

귀가 아닌 눈으로 들어야 하는


4

창밖은 흐리고

번개와 천둥이 차례로 지나간다

빛으로 오는 마음과 소리로 오는 마음은 제각각이지만

하나의 몸 하나의 날씨라는 듯


어린 시인이 떠나간 자리엔

어린 시인이 남아 있다


다람쥐와 죽음은 왜 다르지 않은지

영혼 없이 시를 쓰려는 계획은 왜 무산될 수밖에 없는지


안희연 -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

오늘은 수면양말을 신고 출근을 했다.

라일락은 잎이 아니라 꽃을 피우려고 했다.

앗, 화분을 내놓고 퇴근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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