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이
1
어딘들
어디에나
어디서도
그런 말들을 조약돌처럼 가지고 노는 하루가 있다
영혼 없이
시를 쓰고 싶은 날
2
내 안의 어린 시인에게 묻는다
-작고 날렵하고 갉아 먹는 것을 떠올려보렴
내가 생각했던 답은 죽음이었지만
어린 시인은 별 고민 없이 다람쥐라고 말한다
어쩜 그리 단순하고 상상력이 없냐고
나는 어린 시인을 꾸짖는다
비 온 뒤의 풀 냄새가 사람의 마음에 어떤 일을 저지르는지
돌 안에서 돌이 짓고 있을 표정을 상상해본 적이 있냐고
-시를 환상 속에 두지 마세요
어린 시인은 단호히 말한다
쓰러진 물컵 속에는 물 외엔 아무것도 없다
슬픔이나 절망 같은 건 더더욱 없다
3
영혼 없이 적은 문장에는 영혼이 없는가
나는 턱을 괴고 창밖을 본다
바퀴 없이 굴러가는 자전거나
심지 없이 타오르는 초처럼
없어도 있는
귀가 아닌 눈으로 들어야 하는
4
창밖은 흐리고
번개와 천둥이 차례로 지나간다
빛으로 오는 마음과 소리로 오는 마음은 제각각이지만
하나의 몸 하나의 날씨라는 듯
어린 시인이 떠나간 자리엔
어린 시인이 남아 있다
다람쥐와 죽음은 왜 다르지 않은지
영혼 없이 시를 쓰려는 계획은 왜 무산될 수밖에 없는지
안희연 -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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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수면양말을 신고 출근을 했다.
라일락은 잎이 아니라 꽃을 피우려고 했다.
앗, 화분을 내놓고 퇴근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