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공간_03.28

by 소산공원


1.

사과나무 라일락은 반쯤 피었다. 오랜만에 개운한 월요일 청소를 했다. 청소라고 해봤자 바닥에 굴러다니는 먼지를 쓰는 일이다. 생각을 해보니 사과나무에선 한번도 먼지들을 빨아드린 적이 없단 생각이 든다. 모든 가구들을 밖으로 꺼내 햇볕에 말리고, 오래된 묵은 먼지들을 탈탈 털고 물을 끼얹어서 씻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5월이면 사과나무 공간이 생긴지 10년째. 묵은 먼지도 10년. 라일락 나무도 10년.


생각해보니 사과나무를 처음 시작했던 것도 공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함께 일하기로 얘기하고 편집디자인이 뭔지도 모르면서도 청년커뮤니티.. 뭐 이런걸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어렴풋이 한 것 같다. 그리곤 커뮤니티에는 주방이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던 카페의 인테리어는 이렇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말했는데 던지는대로 반영해준 것이 사과나무 공간이 되었다. 덕분에 텃밭에서 수확한 배추를 절여 김장을 하고, 만두를 만들고, 친구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영화제를 열고, 워터파크 여름휴가(최악의 실수..)를 보내는. 상상할 수 있는한 재미난 일들을 마구 꾸렸었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먼지가 굴러다니는 공간을 보면 잘 돌보고 가꾸는 일을 잘 해내지 못했다는 미안함 같은 게 언제나 있다. 또 동시에 일을 하기도 벅찬데 사무실까지 돌볼 여유가 어딨어 하면서, 애써 외면하는 마음. 어떻게 해야 이 두가지 균형을 잘 지키면서 일할 수 있는가. 새로 맞이하는 올해의 숙제다.


2.

라일락만큼 원성천에도 꽃이 다 피었다. 거의 매일 산책을 하면서 3일만에 꽃이 피는 것을 목격했다. 여느때보다 빠르다. 이 동네를 좋아하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사랑하는 정컾에 영업 종료 공지가 올라왔다.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요렇게 작은 공간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이렇게 슬픈 일인가. 내가 어떤 공간을 떠나올 땐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이 갑자기 크게 다가왔다. 공간 하나가 사라진다는 건, 사람 하나를 잃는 것만큼 큰일이구나. 오래 깊이 대화를 나눈 적도 없지만 이렇게 큰 아쉬움이라니. 사랑하는 공간들이(을) 떠날 때 좋은 마중을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동네 산책을 하면 주로 오래된 동네를 걷는다. 내가 매료되었던, 사라질락말락하던 동네들은 잠깐 관심을 돌린 사이 어느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거나 선명한 철거의 옷을 입었다. 허송세월 주변 동네는 내년 쯤에 재개발에 들어간다고 한다. 눈여겨보니 미쳐 보지 못했던 동네들이 곳곳에 투성이다. 취향을 담은 건축 소재와 정원에 심은 나무들, 삐져나오는 소음들로 개성을 드러내던 동네들은 곧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겨우 아파트가 될 것이다. 동네 카페 하나가 사라지는 것도 이렇게 마음 아픈데, 이 커다란 마을이 사라지는데 아무도 배웅하지 않는다.


4.

어쩌면 배웅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없어 이렇게 동네들이 쓸쓸하게 사라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쓸쓸하게. 텃밭과 낡은 고물을 담장 삼아. 화풀이와 욕지꺼리와 휘청거리는 소음들을 개성 삼아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가나. 가난할 틈도 없는 도시는 무엇으로 사나.


5.

사진은 지금은 아파트가 생겨버린 동네의 2018년의 원성동 어느 동네. 이 짧은 산책의 기록이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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