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경주_3.30-4.1

by 소산공원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 기다리다 못해 조금 더 남쪽으로, 조금 더 꽃이 핀 곳으로 봄맞이 여행을 간다. 벌써 3년 째 사과나무 식구들과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다. 첫 시작했던 재작년은 남해와 여수, 순천. 작년은 진도, 해남, 구례. 올해는 동쪽으로 경주, 포항을 다녀왔다. 재작년 봄 여행을 시작으로 여행과 나다니는 것에 시간과 애정을 쏟고 있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공간. 사람들. 습도. 온도. 조명. 음악과 술과 음식. 이런 쿵짝쿵짝쿵짜작 쿵짝의 박자들로 이루어내는 구체적이고 사랑스러운 순간들.

용주샘과 함께하는 여행엔 며칠의 체력을 응축해서 써야한다. A코스와 B코스 사이에 있는 숱한 A-1, A-2, A-3...그만큼의 데이터와 코스가 있는 것도 대단한데 그걸 실제로 해버리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저녁이면 체력이 너덜하게 방전되지만 A-B 사이에 있는 그 무엇이 어떨까 궁금해 놓치지 않고 싶어진다.


이번 경주 여행의 테마는 '밤의 경주'였다. 듣도보도못하고 외우지도 못하는 경주의 밤을 더듬고 다녔다. 다리가 끊겨 길도 사라진 장항리 석탑에서 맥주를 마시고, 낯선 능과 탑을 돌아다녔다. 절인 몸으로 맥주를 마시고 새벽에 남산에 올라 용장골 탑을 보았다. 무서운 밤의 산을 오르기 시작해 탑에 도착할 때쯤 완전히 날이 밝아졌다. 울렁울렁 멀게 겹쳐진 산과 탑. 막상 도착했을 때는 좋다는 느낌이 전부였는데 지금 다시 사진을 찾으며 기억을 더듬으니 조금 눈물이 찔끔나도록 좋다. 여행을 해야 만날 수 있는 새벽 공기가 남아있는 느낌이랄까. 그런 순간의 감각들이 몸과 숨에 쌓여서. 조금 더 좋은 나를 만든다. 그거면 되지 않나.


또 좋았던 순간들.. 감은사지 앞에서 가혜랑 시내랑 새천년체조 연습한거랑, 감포 등대 아래로 내려가 바다를 보면서 농사만큼 중요한 수렵과 채집(낚시)의 기술을 운운한 것. 속초 어딘가 바다가 물반고기반이라는 은영에게 거짓말 하지말라며 농담을 놓은 것이랑, 대릉원 다음에 간 노서리 벤치에서 한가하게 앉아있던 것. 그리고 내 마음 속 절탑백 차트 1위 자리를 입구부터 탈환해버린 골굴사의 모든 순간, 기림사의 정원, 목요일날 봤던 생생한 벚꽃이 분분하게 떨어지던 토요일의 도시. 밤의 탑 아래서 마시던 맥주와 발에 밟혀 진하게 올라오던 쑥 향기. 그리고 그 탑의 낮의 모습을 아직 모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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