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별안간 주방 공사(?)를 했다.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공구 비슷한 것들을 들었으니 공사라고 불러도 되지 않나 생각하면서 사전에 '공사'를 검색해본다. 공사의 '공'자는 '장인, 기교, 솜씨'를 뜻한다고 하는데 어쩌다 건축이나 토목을 다루는 일의 주된 명사로 쓰이게 된걸까. 기교를 부리는 일, 솜씨를 내는 일은 얼마든지 있는데. 이제 디자인의 일, 요리의 일, 살림의 일을 할 때 '나 공사 중이야'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1. 아무튼 주방 공사.
이 집의 특징 중에 하나는 마치 생크림 케이크 장식같은 화려한 천장 조명이 무척 어둡다는 것. 주방이 특히 어두워서 얼마 전 간접 조명을 달았는데 그동안 거슬렸던 낡고 더러운 주방이 훤히 보였다. 안되겠다 싶어 신나게 도구 쇼핑을 하고. 금요일 밤부터 작업시작. 곰팡이 낀 실리콘을 벗기고 타일 사이 더러운 줄눈을 메우고 칠이 벗겨진 주방 창문에 페인트 칠을 했다. 실리콘을 다루어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새로운 즐거움과 어려움이 있었다. 타일과 실리콘 사이에 밀착하여 얉게 떠낼(?) 때의 쾌감.. 벗기는 과정에서 부러지지 않는 유연한 칼의 놀라운 발견...실리콘을 쏠 땐 적절하고 일정한 양으로 분배해야한다는 것.. 한 큐에 쓸어내리고 다신 만지작 거리지 않는 것... 그치만 다시 만지지 않는 것은 불가능해서 만졌다가 녹이고 끈적끈적한 손을 닦아내고 또 쏘고 만지고... 이러면서 이틀동안 무지무지 재미있었다는 얘기다. 타일 줄눈은 인스타 광고에 혹해서 산 마카로 메웠는데 처음에는 양이 충분하지 않아 역시 또 속았다.. 라는 생각을 하다가. 마구 흔들어쓰니 충분한 양이 나와 쓸만했다.아무튼 칠이 벗겨진 창문 페인트도 칠하고 나니 밝고 환한 새 주방이 되었다. 햐
2. 베란다 농공사
봄이 오면, 매년 농사를 시도한지 10년쯤은 된 것 같다. 한번도 제대로 성공(?)해본 적이 없으니 이쯤되면 그만둘 법도 한데, 봄이 되면 병이 난 것처럼 뭔가 심고 싶어진다. 그래도 한해 한해 좋은 결과물을 얻어 가고 있으니 올해는 반드시, 뭔가 더 좋아질 것이다..! 얼마 전 문성동을 산책하다가 딱 찾던 크기의 화분들이 버려져있는 것을 발견. 주인이 있는건가 싶어 며칠 두고보다가 몰래 몇 개를 훔쳤다. 별 일이 안 생기면 조금 더 챙겨올 예정이다. 거기다 공룡에서 채집한 바질을 파종했다. 약 30개 정도를 심은 것 같은데 다 크면 어쩌지.... 큰일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루꼴라 씨앗을 샀는데 그건 3000개가 들었다. 진짜 큰일이다. 진짜 조곰만 심어야지.....
3. 살림공
집안일 하는 것이 좋다. 일이 많을 때 가끔 내팽겨치곤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집안일도 못하면서 일을 해야한다는 것이 괴로운 걸 보면, 일하는 것보단 집안일을 하는 것이 조금 더 즐거운가보다. 그렇다고 해서 정리정돈을 잘하거나 요리나 청소를 잘하거나.. 그런건 아니고 다만 수시로 움직인다. 먹고 치우고, 어지르고 치우고, 요리하고 치우고 빨고, 널고... 그야말로 공사다망의 그 자체. 집에 있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이니 주말에 쉬고 싶으면 도리어 밖으로 나가게 된다.
아무튼 어수선하게 집안일을 해오다보니 나름의 패턴과 이름 붙이기가 생겼다. 예전에 한 친구가 이부자리를 정돈할 때 꼭 이불 라벨이 왼편의 아랫쪽으로 오도록 정리를 하는 것을 보고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이제는 그렇게 집안일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다는 것을 안다. 냉장고에 반찬을 나를 땐 꼭 수평으로 들어 옮기기, 식품 보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밀봉.. 토마토꼭지는 아래로 향하게 보관... 온수는 저온으로 해도 충분.. 이런저런 집안일의 팁을 발견하는 것이 요새의 즐거움이랄까. 배우는 방법을 하나 더 배우는 느낌.
4. 기록공
작년 말엔 100일동안 뭔가를 적어야한다는 것에 시달려 열심히 일기를 썼다면 올해는 하루하루 습관을 적는 중이다. 하긴 하는데, 거의 안함의 기록이라서 이게 무슨 의미인가.. 하는 게 3달째. 오늘 또다른 기록 방식을 시도. 대체로 나의 기록은 책, 대화, 산책, 인스타 중에 불현듯 번쩍 벌어지는 일일 때가 많고 휴대폰 메모장이나, 카카오톡 나에게 보내기로 저장을 해두는데 산발적일 때가 많아서 좀 쌓이는 방식으로 만들어두었다. 이 글을 쓰다보니 또 친구들의 기록방식이 궁금해서 각자의 기록을 주제로 모임을 하루 가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또 어디다 기록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