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버이날 행사를 치르기 전에 공주에 방문. 비오는 공산성을 산책했다. 아무도 없는 비오는 성곽을 걸었다. 강 멀리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멋졌다. 덩그러니 아카시아 나무와 냉이꽃에 맺힌 빗방울이 멋졌다. 엄마아부지랑 이모부 밥을 사주겠다고 하고 좋아하는 식당을 찾은 거였는데 아부지 때문에 기분을 망치지 않으려고 애를 먹었다.
2.
좋아하는 여러 정원들이 있지만 봄에 가장 재미있는 공간은 엄마의 텃밭이다. 정확히 말하면 텃밭은 아니고, 산과 밭의 언저리에 싶은 이름이 낯선 야생초들의 밭이다. 그늘지고 습하고 추운 곳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정글같이 자라고 있다. 내가 보기엔 일년 내내 뜯어먹어도 다 못 먹을 것 같은 작물들이 자라는데 엄마는 자꾸만 부족한 것만 보이는지 뭐를 새로 심고, 늘리고 할 생각뿐이다. 아무리 내가 있는 것들을 먼저 잘 가꾸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얼마 전부터 유구 로컬푸드에 납품을 하기 시작했으니 이제 좀 더 많은 실험의 밭이 열리겠지. 내년 봄부턴 나도 좀 적극적으로 엄마의 봄밭 작물들을 알려야겠다.
3.
오랜만에 할머니를 보고왔다. 엄마랑 이모는 할머니를 미워하지 않기로 다시 맘을 먹었나보다. 별수없이 나도 그러기로 했다. 할머니는 뭐랄까. 진짜 할미꽃처럼 흐늘흐늘하게 더 늙어버렸다. 원래 늙었는데 더 늙을 수가 있구나 싶을 정도로. 나를 또 빤히 보더니 '정헌엄마냐?(이모)'하신다. 내 이름도 기억을 못하면서 내가 애기를 안 낳는건 어찌 그리 잘 기억하는지, 너는 왜 애기를 안 낳느냐 묻는다. 자기가 낳은 애기 얼굴도 못 알아보면서. 자주 가지 않은 우리 엄마를 보곤 '누구세요'라고 했다고. 나도 이렇게 엄마를 자주 찾지 않으면 엄마도 언젠간 나를 잊을까.
4.
공주에서 바로 온민박으로 건너가 짧은 산책. 가로수일 때는 이팝이 별로 예쁘다는 생각을 못해봤는데 온민박 정원에 비를 맞은 이팝이 무지무지 아름다웠다. 공조팝나무는 클래식한 웨딩드레스 장식처럼 촌스러운 것이 사랑스러워서 동행한 친구와 너를 어찌하면 좋으니, 너를 어찌하면 좋으니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너와집 옆에는 떨어진 아까시 꽃잎을 주워안고 돌아왔다.
5.
BIYN에서 주최하는 공공즈 행사(?)에 다녀왔다. 다른 것보단 윤석열 취임1주기를 앞두고 열린 행사라는 말에 혹하여서. 아니 겨우 1년밖에 안되었다니. 절망적이었지만 이제는 무기력을 덜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살피고, 돌보고, 서로가 서로의 공간이 되어주는 일. 그런 일들을 다시 뽀시락뽀시락 만들어보아야지.
6.
기억에 남는 말은 혜림님의 '제가 이 시대의 증언자에요.'라는 말이다. 도서관이 사라지고, 큰 불이 번지고, 물에 잠긴 지하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이런 재난친화적 시대에서. 고마운 것이 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보고 말하고 증언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그리고 이제 다르게 움직여보겠다고 조금 더 앞에서 증언하겠다고 한 그 말에 용기를 얻었다. 조금 더 많이 말하고, 모이고, 빈 곳을 잘 살펴보아야지. 서로의 목격자가 되어주어야지.
7.
오늘 행사에서는 공확행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잘 정돈된 도시의 공원맞큼 확실한 공적이고 확실한 행복이 또 있을까. 행사가 끝나고 홍제천을 따라 돌아왔는데 이 동네가 단숨에 좋아졌다. 산책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넉넉하니 좋았다. 오늘의 공확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