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마당이 있던 집에 살았던 적이 있다. 산동네에서 산동네로 이사를 여러번 다니면서 집의 기억이 뒤섞여 있지만 아무튼 어릴 적 살던 집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마당이라 부르기엔 옹색한 작은 밭뙈기와 커다란 조팝나무와 뽀삐의 집이 있었다. 마당에 구덩이를 깊이 파 안에 물을 붓고 그 위에 얇은 신문지를 대고 흙을 덮어 덫을 만들어 뽀삐가 빠지기를 기다리는 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이었다. 누군가 빠지지 않으면 결국 꼭 내 발을 넣어 보곤 했다. 나는 구덩이라거나, 벽장이라거나, 좁고 어둡고 몸에 꼭 맞는 작은 공간에 들어가 있길 좋아했다. 모서리에 등이 닿는 작은 공간에 들어가면 어쩐지 안심이 되고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이십대 초반엔 시에서 운영하는 심리상담소 같은 곳에 가본적이 있다. 가족들이 같이 살던 아파트에 혼자 살던 시절이었는데 젖은 구덩이처럼 늘 우울해 찾아본 곳이었다. TV에서 본 것처럼 나무, 집, 사람을 그리게 하곤 모래가 담긴 상자와 레고나 인형같은 것들을 주고 뭔가를 만들어보라고 했다. 딱히 만들고 싶은 것도 생각나는 것도 없어 살고 싶었던 집을 만들었던 것 같다. 혼자 살만큼 아주 작은 집을 만들었는데 마당이 있고 꽃이 있고 강아지가 있었다. 상담사가 '집을 아주 작게 만드시네요~' 이런 말을 했던 것만 기억이 난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거지..'이런 생각을 하면서 돌아왔다.
지금 사는 집은 혼자 살기에는 꽤 큰 집이다. 이 집을 처음 만났을 때는 별로 큰 감흥이 없었는데 살 수록 좋은 구석이 많다. 가까운 시장, 산책로, 멀리 하늘이 보이는 창문, 라일락 향기가 나는 언덕, 그리고 봄의 베란다. 봄의 베란다는 마당만큼 좋아서 루꼴라와 바질과 토마토, 고추 이런 것들을 심어두고 내내 들락날락 거렸다. 초여름은 또 어떤 보물찾기같은 즐거움이 있을까. 모래상자보다 큰, 딱 이만큼으로도 좋은 좁고 아늑한 나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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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만(구 멋대로)에게 선물받아 쓴 '세단어 짧은 글 릴레이'. 정여울 작가의 <끝까지 쓰는 용기>를 보다가 단어를 생각하고 선물하는 재미있는 일을 제안해주셨다. 요새 뭔가 일기쓰기가 어려웠는데 이렇게 선물받은 단어로 뭔가 적을 수 있으니 좋았다! 짧게 빨리, 마무리해보기. 오늘의 나의 단어를 선물하고 싶다.
#산책 #치아바타 #도망
제 단어 선물 받고 써보실 분?
(다 쓰시면 세 단어 선물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