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차
호두와트 친구들의 2022년 기록 프로젝트 '호두와글' 은 매주 각자의 이야기와 일상을 기록하여 글로 남깁니다. 주로 지역 살이, 일과 일상, 작업, 몸과 돌봄, 좋아하는 일들을 적어갈 예정입니다.
by.산
갑자기 그녀가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어. 내가 갑자기라고 말하는 건 그녀가 30년 넘게 휘파람을 불지 않았기 때문이지. 짜릿한 일이었어. 난 처음엔 집에 모르는 사람이 들어왔나 했어. (....)
이윽고 내가 말했어. 당신이야? 당신이 휘파람 부는 거야? 응, 그녀가 대답했어. 나 아주 옛날에는 휘파람을 불었지. 지금 보니 아직 불 수 있었어. 그녀는 휘파람의 리듬에 맞추어 집 안을 돌아다녔어.
나는 그녀를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했어. 팔꿈치며 발목이며. 기분이며 욕망이며. 고통이며 장난기며. 분노까지도. 헌신까지도.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기 시작하긴 한 걸까? 내가 30년간 함께 살아온 이 사람은 누굴까?
이 맑고 알 수 없고 사랑스러운, 휘파람 부는 사람은?
책상 위는 역시나 지난주와 별반 다르지 않다. 노트북을 기준으로 책상의 오른편엔 여전히 몇 권의 책이 쌓여있다. 메리 올리버의 「휘파람 부는 사람」을 읽다가 가슴이 쿵쿵 울려서 몇 번이고 엽서에, 노트에, 일기장에 옮긴다. 박연준의 말처럼 “시는 언제나 소리가 되고 싶어 하는 장르”라서 조용히 입으로 뱉으면서 옮겨 적는다. 마음에 휘파람이 돌아다니는 기분이다.
언제든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30년 만에 휘파람을 찾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다. 갑자기 입으로 휘파람을 부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임을 감각할 수 있게 하다니. 그런데 갑자기 조금 부러워진다. 즐거운 사람으로 변해버리는 것은 조금은 쉬운 일이 아닐까? 늘 휘파람 불던 사람이 휘파람을 불지 않는다고 해서 변화를 알아채진 않을 테니까. 그럼 휘파람 부는 사람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신중하고 차분하고 사람일까? 누군가 나를 보며 "휘파람 부는 사람"을 쓰게 된다면 어떤 장면에서 시작하게 될까? 낯선 나는 어디에서 출발할까? 아마 그 반대쪽 일 것만 같다.
'휘파람'이라는 멋진 비유를 찾긴 어렵지만 아무튼 내가 오랫동안 갈망해온 가장 낯선 내 모습은 '성실'이었다. 태생적으로도 약간 변덕이 잦았고, 제대로 배워오지 않았고, 학창 시절에도 별로 필요하다고 느낀 적이 없어서 내 몫이 아닌 재능으로 치부했었다. 그러다 일의 세계를 만나 '성실'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는데........ 다행히도 좋은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에 필요한 성실을 배우고 나름의 애를 쓰고 지내고 있다. 하지만 휘파람을 불지 않는 것으로 변화를 알아채긴 어려운 거니 여하튼 약간의 어긋난 일에도 돌아오는 평가와 격려들이 하찮을 때 쉽게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그러던 중 작년에 본 사주(feat. 연꽃)에서 내가 어떤 습관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새로운 습관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성실'자체가 아니라 성실함에 가까워지는 습관을 가지면 되는 거였다. 그리고 내년(올해)에는 대운이 달라지는 해라 아마 여러 가지 변화가 생길 수도 있는데 그에 맞는 몇 가지 좋은 습관들을 추천해주셨다.
그중 한 가지는 일기 쓰기였는데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로는 꽤나 꾸준히 일기를 쓰고 있다. 요새는 특별한 약속이 있지 않은 날은 책상에 앉아 몇 시간이고 일기를 쓴다. 초등학교 때도 제대로 일기를 써본 적이 없어, 처음에는 뭔가 어색했다. "오늘은 뭘 했고 뭘 먹었다. 어디를 걸었다" 대충 이렇게 쓰다가, 요즘은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서~"로 시작해서 하루에 일어났던 일을 모조리 뚱땅뚱땅 쓴다. 그러다 보면 "있잖아 있잖아", "참 그리고", "참참참" 이러면서 일기장에 수도 없이 말을 건다. 혼자서 주거니 받거니 한다. 그러다 보면 떠들고 싶었던 말들이 술술 풀려나간다.
이렇게 일기를 쓰다 보면 마음의 균형감이 생긴다. 낮에 일을 하며 생겼던 미운 마음. 낯선 마음. 애쓰고 무리했던 마음들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안심이 될 만한 시간들을 쌓는다. 혹여나 격려와 평가들이 하찮아도 쌓인 일기를 돌아본다. 내 하루는 성실히 쌓여가고 있어 차곡차곡.
그래서 일기 쓰는 나를 보면 누군가가 이런 시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
누구지? 이 알 수 없고 차분하고 성실한, 일기 쓰는 사람은?
언젠가는 전해져야 할 이야기
by. 임카
얼마 전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았다.
나이가 들수록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할 일들이 하나둘씩 생기는데, 이번엔 십자인대가 잘 있는지 보는 날이었다. 이식한 십자인대는 아주 잘 붙었고 재활도 잘 되었다며, 몇 달 있다 핀을 빼자고 했다.
작년에 땅따먹기(....)를 하다 끊어진 십자인대 때문에 처음으로 수술을 하고 장기입원이라는 걸 해봤다.
입원 며칠 전부터 남의 블로그를 염탐하며 입원기를 읽고 다이어리에 필요한 준비물 리스트를 적어두고, 다이소에 갔다가 이마트에 갔다가 배낭을 쌌다가 캐리어를 쌌다가 하며 만반의 준비를 다 마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쳐 못 챙긴 게 있었다.
"누가 데려다줘? 같이 갈 사람 있어?"
"나 혼자 입원해봤잖아. 정말 외로운 일이야. 내가 내일 데리러 갈게"
난생처음 해보는 입원 수속은 특별할 게 없는데도 왜 이렇게 긴장되는지 그리 길지도 않았던 대기시간에도 초조함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어색하게 들어간 병실에서 환자복을 갈아입는 동안 소산이는 매점에 내려가 군것질거리와 간호사 선생님이 말한 찜질팩을 사 왔다.
하려면 충분히 혼자 할 수도 있는, 하지만 한없이 막막하고 고독했을 시간.
얼떨떨하고 낯설던 시간이 지나가고, 소산은 기념이 될 만한(?) 사진 몇 장을 찍어주고 떠났다.
돌이켜보면, 어쩌면 혼자 지나야 했을 순간들에 자주 산이가 곁에 있었다.
이것저것 생각하느라, 왠지 수줍어서,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어 주저하던 때에 선선히 곁에 서준 덕에 많은 일들을 해냈었다. 혼자 괴로워하던 밤, 늦도록 주절주절 토로하는 말들을 끝없이 들어준 덕분에 혼자서 새까맣게 타버리지 않았었다.
나는 어땠지?
잘 모르겠다. 함께 해내는 많은 일들에 묻혀, 정작 그 고마운 친구의 낯빛을 살피지 못했던 적이 많다.
by. 시내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과나무에서 퇴근하면서 결심하는 것은 대체로 비슷하다. '얼른 집에 가서 저녁 챙겨 먹고 잠깐 산책이라도 하고, 책상 앞에 앉아야지.' 하지만 가끔은 산책을 빼먹고 가끔은 책상 앞에 앉는 일을 빼먹는다. 어떤 효용감이나 성취감을 맛보지 못하고 침대로 들어갈 때는 세상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나는 내가 그림 그리는 사람이길 바라는데, 사실 나는 그림을 늘상 그리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일 때문에 가끔, 어쩌다 생각나면 찔끔. 그림을 전공했으나 그림을 진정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늘 버려지지 않는 미련은 있었다. 그런 생각에 골똘했던 작년, 재활하는 심정으로 인체 책을 사다가 묵묵히 따라 그렸다. 매일 좌절했지만, 좌절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내일 조금 더 좋아질 거야' 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까지 다독이는걸 잘 못했던 것 같다. 생각만큼 안 그려지면 '안 해!'하고 뒤돌아버렸던 순간이 더 많았다. 매일 실망스러운 나를 다독이며 그려나가기 시작하자 다시 그림이 조금씩 좋아졌다.
인체책을 한번 훑고 나서는 그냥 혼자서 크로키를 시작했다. 매일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선언해놓고 매일 하지 못할 나를 상상하며 조용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같이 매일 크로키를 하게 됐다. 크로키를 하는 게 나를 책상 앞에 앉게 했다. 조금씩 그림이 일상이 되고, 습관이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크로키만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작업들이 진전이 없었다.
작년엔 꼭 그린다던 시무룩한걸의 후속 이모티콘을 올해는 진짜로 꼭 그릴 거다. 벌써 3번째 스케치를 다시 했다. 상반기 중엔 꼭 제안을 넣을 테다. 두서가 없지만, 가장 가까운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by.빈
열심히 키운 액종으로 효모를 만들고 몇 번의 빵을 구웠다.
확실히 구울 수록 모양도 예쁘고 기공도 잘 나와서 만족스러웠다.
퇴근하고 나서부터 빵을 완성하고 나면 12시였다.
그럼에도 확실한 결과물(빵빵빵)에서 오는 성취감이 컸기 때문에 잠이 부족해도 재밌었다.
무엇보다 내 사랑 서우가 내가 만든 빵을 먹어주다니 너무 행복했다.
지금 쓰는 오븐은 가정용이고 레인지 겸용이기 때문에 높은 온도가 필요한 빵을 굽기에는 조금 불편하다.
그리고 너무 작아서 한 번에 많이 구울 수가 없어 큰 손인 나에겐 조금 답답허다.
크고 스팀 기능 있고 250도까지 올라가는 컨벡션 오븐 사고 싶어. 이걸 쓰면 사게 될지도 몰라.
그래서 요새 당근에 오븐으로 알림을 설정해두고 보기만 하고 있다. 언젠간 사야지!
효모를 만들고 빵을 굽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정확한 재료들의 계량이다.
구움 과자는 어릴 때부터 많이 구웠다. 그래서 베이킹을 할 때 레시피대로 하지 않고
비슷한 성질끼리 대체 재료도 사용해보고 양도 줄여보고 나름 과학적으로 고민해서
수정해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대부분 높은 성공률을 보인다.
제빵도 그럴 거라고 자신이 있었다.
효모가 너무 묽은 것 같아 우리밀을 더 추가했는데 죽어버렸어. 자만이었다.
by. 탱
마지막 주
직장을 그만두기 정확히 일주일 전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할까?
나는 또 끝에 다다라서야 이런 생각을 한다.
물론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 도 처음은 아니지만. 마냥 두렵기만 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수많은 일들을 하며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언제인가부터는 내가 너무 우유부단하고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한 소위 말하는 ‘쉽게 질려’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착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엄청 의식했었고, 그 와중에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이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법을 찾아봐야겠다.
같은 회사의 일 못하는 어린 직원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말해 주는 게 나을까? 그럼 꼰대로 보지 않을까? 결국에 내 선택은 역시나 착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고 내면 깊숙이 있던 응원의 말들을 꺼내 이야기한다, 그 사람은 고맙다며 또 나에게 무언갈 갔다 준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 진심으로 저 사람이 잘되길 바라 주지 못해서...
이상하게 일을 그만두기 일주일 정도 전에는 어느 회사든 일을 많이 안 줬던 걸로 기억하는데
여긴 이상하게 그만두기 일주일 전부터 야근을 엄청 한다. 아.. 하기 싫다....
무사히 일주일을 넘기고, 이제 월요일만 출근하면 일단은 마무리가 된다. 인력을 더 뽑는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지원을 하긴 할 테지만, 그래도 며칠은 놀겠지..... 가슴이 답답하고 기분이 썩 좋은 느낌은 아니다. 뭔가 마무리가 잘 되지 않은 느낌이랄까? 천안을 이제는 벗어나야 하나 싶기도 한 밤인 것 같다. 복잡하고 잠도 오지 않는 밤이다.
by. 경주박
사실 사회적 경제에 들어온 이야기, 지역에서 했던 문화기획 이야기,
창업 기를 적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기억이 안 난다.
큰 사건들은 기억나는데 세세한 이야기들은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서 뭔가 재미있게 더 못 적을 것 같아 뭔가 주제를 가지고 적어야
1년 동안 꾸준히 적을 수 있을 것 같아 영화라는 주제로 적어봐야겠다.
나란 사람은 정말 기억하는 거에 큰 관심도 없고 잊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영화는 집중력이 부족한 나에게 그 시간만큼은 오롯이 몰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체 기도 하고 대리 경험의 방법이기도 하면서 위로를 해주는 친구였다.
그중 처음으로 추천해 볼 영화는 데몰리션이다.
리뷰처럼 적을 수 없으니 4가지 정도로 정리해서 적어봐야겠다.
1. 요약 내용
- 한 부부가 운전을 하던 중 사고로 인해 부인만 사망하게 된다. 부인의 사망 이후 부인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고백하거나 보이는 것(냉장고, 문, 컴퓨터 등)들을 분해하거나 부인이 죽었던 병원의 자판기 고장에 상담사에게 여러 편지를 쓴다던가 일반적으로 상실을 겪은 사람의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 대해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다 자판기 회사 고객상담사 캐런을 알게 되고 서로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고 위로하면서 데이비스가 스스로를 알아가고 분해하고 파괴하면서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2. 좋아하는 대사
- 비 올 땐 날 못 보겠지만 밝을 땐 날 생각해(아내가 햇빛가리개에 끼워놓은 포스트잇)
- 뭔가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에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야 해. 자넬 강하게 할 그것(장인어른이 데이비스에게 한 말)
- 전에 못 보던 것들이 갑자기 눈에 띄기 시작해요. 보였지만 무심하게 본 거겠죠
3. 추천 유형
- 인생의 모든 일들이 내 맘대로 되지 않아 슬플 때
- 그 어떤 무언가에 대해 상실을 겪었을 때
- 스스로가 고장 난 사람처럼 느껴질 때
4. 한 줄 평
'분해하고 파괴해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