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덥고 습해서 잠이 잘 오지 않는다. 거실창에는 대나무 발을, 침대 이부자리에는 대나무 자리를 깔았다. 일본사람들이 왜 이렇게 온방에 다다미를 깔았는지 이해할 것 같다.
여름 저녁엔 되도록 가스불을 켜지 않기로 했다. 끓여먹던 보리차도 냉침해 먹고, 저녁은 과일이나 포장해온 떡볶이를 먹는다. 선물받은 오이지를 얼른 먹어야하는데, 밥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퇴근하고도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요새 집 근처에 단골이 될만한 카페가 생겼다. 이 카페엔 오렌지롱브랙이라는 특이한 메뉴가 있는데, 딱 오렌지주스에 커피를 섞은 맛이다. 별 특별한 건 없는데, 이상하게 저녁이 되면 계속 그게 먹고 싶다. 새큼하고 쓴 오렌지쥬스 커피. 이리저리 마감시간까지 버티다가 집에 들어간다.
요새 해질녁의 하늘은 요란해서 꼭 산책을 나간다. 맑거나 흐리거나 번쩍번쩍. 쪼리를 신고 우산을 들고 나가 불어난 강물을 구경한다. 평소에 가던데보다 조금 더 멀리 가본다.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걷고 돌아온다.
밤엔 형광등도 덥게 느껴져서 온 방에 불을 끈다. 스탠드 조명으로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면서 논다. 몸이 더워질까봐 맥주나 하이볼 쬐꼼. 많이 마시지도 않고. CD플레이어가 생기고, 호철이 CD들을 챙겨왔다. 골라 듣는 재미가 쏠쏠. 음악에 물성이 생기는 건 참 재밌는 일이구나 하며. 잘 잠들 수 있는 상태까지, 실컷 에너지를 쓰다가 잠드는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