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와글 4주차
라떼를 마시기 시작했다.
카페에 다닌 이후로 적어도 10년 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에서 벗어나지 않았는데, 최근 맛있는 라떼를 한 번 먹은 이후론 계속 생각이 났다. 오늘도 카페에서 고민을 하다가 오래 있을 참으로 라떼와 아메리카노를 둘 다 시키고 말았다.
나는 의외로(?)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한 번 좋아하게 되면 좋음을 느꼈던 순간을 반복하고 싶다. 새로운 좋음을 발견하는 설레임도 못지않게 못지만, 좋아지기까지의 숙고를 귀찮아한다. 엊그제는 진안으로 워크숍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하루 더 여행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익숙한 지명이 나올 때마다 차를 세워 그 근처에 숙소를 검색했다. 완주를 지나올 땐 '완주 숙소', 부여를 지날 땐 '부여 숙소', 등등 온갖 여행 어플을 검색하다... 결국 그냥 집에 오게 되었다. 시도를 해서 실패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혼자 여행을 하게 될 때는 익숙한 것을 선택하고 싶어 진달까. 시도와 실패는 혼자 겪기엔 가혹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혼자 있을 때는 가급적 익숙한 여행지, 익숙한 숙소, 익숙한 카페에 간다. 익숙한 메뉴를 고르고, 익숙한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 간 곳에 또 가고, 본 것을 또 본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지루하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선택지가 좁으면 살기 편하다. 하지만 남들과 있을 때는 남들이 좋아하는 것, 남들이 추천한 것, 남들과 시도하는 일을 좋아한다. 거기에서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 때문에 나에게 유리하기 위해 함께 있을 때 좀 더 넓은 태도를 갖게 된다. 실패를 나누며 선택지를 늘릴 수가 있으니까. 그중에 내가 무엇을 결정할지는 혼자 하게 되는 거니까. 그건 나만의 일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오래 생각하게 되는 건 결국 '남'이다. '나'의 결정을 좌우하는 '남'은 누구일까. 누구의 말을 듣고, 누구와 함께 실패를 겪을까. 나는 '남'들과 어떻게, 어디에서 만나게 될까. 내가 어쩌면 좁은 지역에서 작은 활동들을 계속해나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나와 닮은 남, 내가 닮을 남을 찾기 위해서. 점점 더 편협한 세계를 넓히기 위해서다.
결국은 어제의 새로운 여행은 실패하고 오늘 또 익숙한 카페에 갔다. 내가 요새 작업실처럼 쓰는 동네 카페다. 익숙하게 앉는 자리, 익숙한 풍경과 소품들. 어렵사리 넓어진 메뉴인 라떼가 역시나 맛있다. 익숙한 이슬아의 책을 발견해 읽으니 이런 문장이 있다.
이: 그런데 선택지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느끼며, 저는 이상하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김: 네, 저도요.
이: 왜냐하면 모든 게 너무 과잉 되어 있으니까요.
김: 이 시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데, 무엇을 안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시대인 것 같아요. 너무나 많은 가능성들이 있으니까요.
<깨끗한 존경, 김한민과의 인터뷰/이슬아/헤엄출판사>
2022년에는 나는 무엇을 안 할 수 있을까. 무엇을 안하는 남들을 만나게 될까.
조금 더 선택지가 좁은 사람이고 싶다.
by. 시내
다시 30일 크로키가 시작됐다. 매번 나름의 목표를 정해두고 하는데, 이번에는 어떤 목표를 갖고 해야할지 아직 모르겠다. 습관적으로 그냥 그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늘상 그냥 그린다면 무엇이 나아지는지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무엇이 정확히 어떻게 나아지고 싶은지 생각하며 그리는 편이 좋다. 첫날은 호기롭게 자동차를 그렸는데, 둘째 날 그린 자동차는 어떻게든 그렸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업로드하지 않았다. 셋째 날인 오늘은 뭘 그릴까. 무슨 생각으로 그리지.
by. 임카
2000.
세상의 모든 무게가 나와 피아노가 있는 작은 방을 향하던 지독히도 고독했던 공간.
방만큼의 산소를 다 마시고 나면 늘 숨이 막혔었다.
아침에 좀 더 자고 싶은데, 오늘은 정말 치기 싫은데, god 육아일기 할 시간인데.......
참 신기하지. 얼마 전 칭찬을 받았던 곡인데, 몇 시간을 앉아 연습을 했는데도 더 나아지기는커녕 자꾸만 손이 꼬이고 만다. 숨이 막히는데 별 수 있나. 그만둬야지!
물론, 그 후로 한동안은 자기가 꿈을 잃은 것처럼 구는 엄마의 세상 실망스럽고 슬픈 표정을 견뎌야 했다. 어느 날은 베란다 창밖을 보니, 내가 죽지도 않았는데 내 장례를 치르고 있길래 창문을 열고 엉엉 울면서 소리를 지르다 깨어났다. 숨 막히는 시절이었다.
아니 슬럼프에 빠질 수도 있고, 친구들이랑 더 놀고 싶을 수도 있고, 티브이를 보고 싶을 수도 있고 선생님이 속상하게 했을 수도 있고, 게다가 다른 꿈이 생겼다고 해도 하나 이상할 게 없는 거 아닌가?
뭐 한창 그럴 나이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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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까닭 없이 떨리는 손과 가쁜 호흡을 진정시키면서 한 음이라도 빠트릴까 봐 또박또박 누른다.
늘 무서운 선생님들만 만나와서 그런가 피아노 선생님 앞에선 왜 자꾸 주눅이 들지..
"너~~무 잘했어요"
"선생님! 완~벽해요!!"
"진~~짜 잘하시는 거예요"
요즘 이 작은 방이 아니면 어디서 또 이런 과한 반응과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 레슨 받는 45분 동안 계속되는 칭찬과 큰 리액션에 아직도 적응이 안 됐다.
그런데 손가락이 자꾸만 춤을 추네.
하긴 뭐, 한창 칭찬받고 싶은 나이 아닌가.
by. 태영
다시 직장을 구하며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과연 나는 새로 시작할 준비가 되었나였다.
무얼 하고 싶은지, 또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보다는 당장 돈을 벌 수 있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퇴사를 하고 쉬면서, 마냥 즐거웠다. 돈도 나오는데 놀 수 있다니!! 가장 큰 걱정이었던 ‘돈’ 문제가 해결되니 좋았다. 그래서 난 퇴사를 하며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휴식하고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참 쉽게도 했던 것 같다. 타이밍 좋게 코로나가 터지고, 센터가 어려워졌다. 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퇴사를 선택했다. 몸이 안 좋아지며 내가 느끼던 힘듦을 양분 삼아 자라온 퇴사라는 아이는 거침없이 나를 퇴사의 길로 인도했다. 쉬면서 영상 제작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히려 직장 다닐 때보다 벌이가 좋았다. 안일했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쉬려고 마음먹었으나 쉬지도 못하고 또 돈을 따라가는 인생이라니...
기간이 길어질수록 또 돈이 줄어들수록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또 다른 고통의 시작... 6개월간 너무 좋았지...
후배의 추천으로 대학교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그땐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자 노력했고. 결국은 하고 싶은 것을 찾은 것 같다.
짧은 기간 동안 3번의 퇴사를 하고 다시 직장을 구하는 이 시간이 나에겐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냥 출근하고 퇴근하고, 내일 같은 일상만 보내던 나에게 나를 돌아볼 시간을 준 게 아닐까?
퇴사하고 5일이 지나갔지만, 이젠 두렵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았으니 이제 직접 움직일 때야!!!’라고. 그리고, 연애하고 싶다 ㅋㅋㅋㅋㅋㅋ
by.빈
애지중지 밥 주고 키우던 발효종이 죽어버렸다.
사실 때 되면 밥 주고 잘 섞어서 냉장고에 넣으면 되는데 말이다.
어쩌다 죽어버렸을까. 발효종 살리기, 발효종 리프레시를 엄청 검색했다.
3번을 시도했는데 다 실패했다.
아까운 우리밀도 낭비하고 결국 첫 발효종을 버렸다.
버리는 순간 흥미가 좀 떨어졌다.
일주일에 2번씩은 꾸준하게 빵을 구웠고 오븐도 사려고 검색 중이었다.
완벽한 빵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주긴 좀 그래서 대부분의 빵들은 우리 집 냉동실에 가둬버리는데
먹는 속도가 못 따라가니 냉동실이 빵으로 가득 차가고 있었다.
몇 달 동안 최애 관심사였는데 실패하자마자 흥미가 좀 떨어지는 걸 보고
내 자신에게도 조금 실망스러웠다.
꾸준히 하는 걸 잘 못하는 사람인데 이번엔 오래가나 싶었다.
옛날의 나 같으면 '난 왜 이것밖에 못하지'라는 생각에 사로 잡혔을 거다.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맞추지 못하면 실망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좌절감?을 자주 맛보곤 했는데 그게 나를 깎아 먹는 건 줄 몰랐다.
호두 여성 동지들을 만나고 배운 것 중 가장 큰 게 '~~ 해도 괜찮다'는 거다.
세상의 기준과 나의 기준을 빡빡하게 세우고 그거에 맞춰 살려다 보니 사는 게 쉽지가 않았다.
예민하고 걱정이 많은 사람이 되었지.
산이 언니는 나를 걱정이 팔자인 사람이라고 했고
다솜이는 '나의 미친 걱정'이라는 책도 선물해주었다.
오 다음에 내 걱정 얘기도 써봐야겠다.
30여 년 동안 그렇게 살아온 기질과 성질이 있어 쉽지는 않지만
요새는 '그럴 수도 있지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을 많이 하려고 한다.
조금은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정신 승리에 좋은 거 같다.
완벽할 필요도 없고 실망할 필요도 없고.
발효종도 다시 만들면 된다.
by. 경주박
나의 두 번째 인생 영화는 토니 타키타니다.
이 영화는 하루키의 단편소설집 '렉싱턴의 유령'의 토니 타키타니를 영화로 제작했다.
1. 요약 내용
일찍이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재즈 연주자로 항상 집을 비워 외로움을 계속 느꼈지만 혼자 있는 것이 더 편했고 외로움이라는 강정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미성숙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자기의 삶이 완전하다고 느껴졌지만 그녀 또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쇼핑에 집착을 하고 있었다.
토니는 너무 사치가 심하다고 이야기하였고 아내는 이를 받아들이고 옷을 반품하고 돌아오다가 반품한 그 옷이 생각나 다시 옷집에 가려서 사고가 나서 사망한다.
토니는 이 상실을 견디지 못하고 아내가 산 많은 옷들을 입을 수 있는즉, 아내와 사이즈가 같은 사람을 비서로 채용공고를 내고 그녀를 고용하지만 외로움, 고독함, 상실감은 채워지지 않는다. 또 그렇게 토니는 외로운 채로 살아간다.
- 토니 타키타니의 유년 시절부터 성인이 되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고 결혼하게 되고
이후 사고로 그녀를 상실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의 토니가 느끼는 고독함, 외로움에 대해 아주 정적이고 무심하게 이야기한다
2. 좋아하는 대사
- 몸은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진짜 필요 없지, 이렇게나 많은 옷(아내가 옷방에 쌓인 옷들을 보며 하는 말)
- 토니 타키타니는 이번에야말로 정말 외톨이가 되었다.(아버지의 유품인 레코드마저 처분해 버린 후에)
- 그는 아가씨를 만나 그런 마음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이 얼마만큼 외롭고, 얼마만큼 많은 것을 잃어왔는지를
- 아내가 없는 것에 익숙해질 때까지 당신이 그 옷을 입고 곁에 있어주면 아내가 없다는 것을 실감할 것 같아요.
3. 추천 유형
- 외로울 때
- 혼자 있고 싶을 때
- 지친 하루에 일어날 힘도 없어 소파에 누웠을 때
4. 한 줄 평
'이 영화를 좋아한다면 당신은 고독 페티시'
그리고 하루키랑 이렇게 닮은 배우를 섭외한 건 신의 한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