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와글 7주차
by.탱
3월 20일 코로나 확진이 되었다. 그간 걸릴까봐 노심초사 하며 몸을 사릴때는 안걸리더니 조금 돌아다녔다고 바로 걸리는 나란 사람은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야 겠다고 생각 했다.
처음 2일은 정말 정신이 없을 정도로 아팠다. 코로나 걸렸다고 하니 많은 분들이 전화를 주셨는데 그래도 인생을 헛살진 않았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엔 코로나 걸리고 7일 동안 자가 격리라 7일은 어떻게든 버티겠지 했는데, 막상 3일 지나고 몸이 좀 괜찮아지니 너무 지루하기 그지없는 나날이 되었다.
설거지는 하루에 3번 한다는 것, 아침 저녁으로 방을 쓸고 닦는 것 외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해도 전무였고,(그나마 읽던 책은 내용이 너무 어려워 중간에 끊기를 반복..)
식욕도 떨어져 먹는 즐거움 또한 멀리 사라졌으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렇게 자가격리를 하는 와중에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할 수밖에 없었다가 맞는 듯??)
최근 힘을 쏟는 일이 있었고 많이 노력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 일을 하지 않아서인지 들어가는 in put만큼 out put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을 고민하다가 격리가 헤제되는 날 같이 그만 둬 버렸다.
조금 더 노력을 해보는게 낫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은 미련없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애초에 가능성이 없다면 포기해 버린 지금이 나았을지... 적어도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한 과정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보여줬다면 아마도 조금 더 붙잡고 있을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는 뭔가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by.경주박
제이크 질렌할을 좋아했던 나는 그의 영화를 전부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영화를 알게 되었고 이 영화는 이별했을 때의 감정을
사랑하는 여자와 딸에게 일어나는 충격적인 소설로 비유해서 그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게 해줬다.
이보다 더 사람의 감정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있을까?
아마 내가 본 영화 중에는 없을 것 같다.
감독 : 톰포트
출연 : 에이미 아담스, 제이크 질렌할, 마이클 섀넌 등
1. 요약 내용
어느 날, 소설가를 꿈꾸던 헤어진 연인 '에드워드'로부터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제목의 소설을 받게 되고 그의 이야기 속 슬프고 폭력적인 사연의 주인공이 되어있는 '수잔'은 잊었던 과거의 기억으로 혼란과 충격에 빠지게 된다.
2. 좋아하는 대사
수잔 엄마 : 지금 좋아하는 어떤 면이 몇 년 지나면 싫어질 거야, 넌 아마 인정하지 않겠지만 우린 생각 이상으로 많이 닮았어
수잔 : 그렇지 않아요, 우린 전혀 달라요
수잔 엄마 : 그러니? 기다려보렴 우린 모두 자기 엄마처럼 변하게 돼
수잔 : 왜 그렇게 글을 쓰려고 하는 거야?
에드워드 : 모든 게 살아있도록 하는 거야, 결국 죽게 될 것들을 보호하는 거지. 글로 남겨놓으면 영원할 테니까
수잔 : 우리가 이상 속에 이상 속에 살았다면 완벽한 커플이었겠지, 하지만 여긴 현실이고 좀 더 체계적인 삶이 필요해
확실한 미래를 만들어야 해. 나도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에드워드 : 넌 할 수 있어
수잔 : 난 못 해, 나도 네가 생각했던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냉소적이고 현실주의자라고
에드워드 : 겁먹었을 뿐이야
수잔 : 겁먹는 게 아니야 행복하지 않을 뿐, 난 정말 행복하지 않아 넌 정말 멋진 사람이야... 세심하고 로맨틱하고..
에드워드 : 약해 빠졌지
수잔 :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냐
-
에드워드 : 날 사랑해?
수잔 : 지금 그건 중요하지 않아
에드워드 : 중요하다고 누굴 사랑한다면 노력해, 그냥 포기하지 마, 조심해야 해 영원히 놓칠 수 있으니까
3. 엔딩
에드워드는 수잔과 식사 약속을 잡았고 수잔은 식당에 왔지만 끝내 에드워드는 식당에 오지 않았다.
4. 한 줄 평
'이보다 더 우회적이고 감각적인 복수가 있을까'
by.산
다민이가 코로나에 걸렸다. 동생과 나는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살갑지는 않은, 평범보다 조금은 더 무관심한 관계다. 한 달에 한 번 연락을 할까 말까하는데 오랜만의 소식이 코로나라니.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걸 역시나 증명해왔다. 그래도 누나도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격리에 필요한 이런저런 생필품들을 챙겨 갖다 주기로 했다.
동생은 대학을 가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아버지는 대학에 부정적이었다. '꼭 해야 할 일이 아니면 어중떠중한 대학에 가느니 차라리 안 가는 것이 낫다' 가 우리집의 지론이었다. 그 어중떠중한 대학의 기준은 숭실대였는데 어릴 적 살던 동네가 숭실대 옆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당시에 (대학을 못 간)아버지는 항상 숭실대생들을 먹꼬대학생이라면서 조롱했다. 그런 조롱과 멸시의 태도는 아버지 일생 전체에서 요상하게 망가진 채로 드러났다. 아무튼 지방 고등학생으로선 숭실대도 감지덕지인 참인데도, 하여간 동생은 그런 연유로 대학에 가지 않았다. 딱 어중떠중한 성적에다가 딱히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군대에 갔다. 전역한 이후로 이런저런 알바를 전전하다 나의 건너건너 지인을 통해 배관설비 일을 배웠다. 숭실대학생은 먹꼬대학생이지만 노가다를 하는 사람은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는 중요한 노동인력이라고 가르치는 아부지의 입김이 또 은근하게 작용했다. 이 후로 배관설비 노동자로 7년을 살았다. 그쯤부터는 나도 어려운 20대를 통과하느라 성인이 되어버린 동생의 삶을 자주 들여다보지 않았다.
동생과 연락을 할 때는 가끔 급하게 돈이 필요하거나, 물건을 빌리거나 하는 실용적인 이유였다. 아주 가끔 여자 친구와 헤어지거나, 일하는 것이 너무 힘든 날 연락을 해왔는데 그럴 땐 항상 사는 게 너무 재미없다고 했다. 어느 날은 여자친구와 싸운 얘기를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술을 마시고 양치를 하다 치약을 집어던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너무 깜짝 놀랐다. 세상에 내 동생도 폭력을 가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나는 “너 이 새끼 그러면 절대 안돼”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응응 다신 안 그래 누나”를 믿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동생은 작년에 그 일을 그만뒀다. 일이 너무 힘들기도 하고, 사람을 무시한다는 이유였다. 대충 들어보니, 어떻게 그 재미없고 괴로운 7년을 버텨왔을까 싶었다. 캠핑도 가고 매일 같이 술을 먹으며 친하게 지내던 사이이었는데 결국엔 퇴직금조차 받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나만 분노에 찬 나머지 신고를 해야지 가만히 있냐며 노발대발했지만, 그 사람들은 ‘다’그렇다고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중에 또 어떻게 만날지 모른다며. 이리도 멍청한 게 내 동생인 것이 한탄스럽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리고 동생은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 공인중개사 자격증 공부를 했다. 공부가 너무 쉽다며, 체질인 것 같다고 말하던 동생은 몇 개월 공부를 하고 자격증에 합격했다. 동생의 인생을 잘 모르지만, 아마 몇 안 되는 성취 중에 하나일 것이다. 자격증을 합격하고 얼마 후에 돈을 잠깐 모아야 한다면서 일용직 공사현장으로 들어갔다. 예전에 배관일을 했을 때보다 훨씬 쉽고 인정을 받는다고 했다. 동생은 몇 개월동안 그 곳에서 일하고 있다.
출근 전에 간단히 장을 보고 동생이 찍어준 주소를 찾아갔다. 아산에 살고 있는줄 알고 있었는데... 평택에 살고 있었다. 네비를 찍고 낯선 길을 가고 있는데 크레인 수십 개가 하늘을 가득 메운 풍경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가끔 그 주변을 지날 때마다 무섭고 징그럽다고 생각한 곳이었다. 동생의 집이 가까워질수록 주변은 더 낯설어졌다. 길가에는 천막으로 된 함바집이 이어졌다. 스쿨버스 크기 정도의 노란색, 하늘색 버스들에 ‘oo한정식’, ‘oo식당’이라고 써져있었다. 근처 노동자들을 한 번에 태워서 식당으로 이동하는 차량인 듯했다. 길에 있는 모두가 안전모와 형광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 승용차보다 공사차량이 훨씬 많았고. 가까운 출퇴근을 위한 자전거, 오토바이, 전동킥보드들의 주차장에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살면서.... 그런 풍경들을 처음 보았다.
동생의 집은 그 현장에서 조금 벗어난, 딱 자전거로 이동하기 좋은 거리정도에 있었다. 신도시에 어디에나 있는 상가-원룸 건물이 줄지어 들어있는 동네였다. 삼성이 들어온 이후에 더 많이 들어올 노동자들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었다. 이에 맞춰서 술집과 싸구려 프렌차이즈 밥집들이 골목마다 가득 차 있었다. 약을 사려고 잠깐 약국에 들렀는데 진열된 것은 온통 파스와 간장약이었다. 그 흔한 비타민도 밖에 나와 있지 않았다. 약국에서 나와 동생네 집으로 향하는 길에 가장 많이 본 것은 부동산이었다. 이 도시의 필수품은 정말.. 건물밖에 없다는 듯이. 코너 마다 하나씩 부동산이 있었다.
동생은 공인중개사가 노동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유일한 세계라고.. 아마 생각했을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을 뽑았다고 했는데, 이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아마도 내가 믿는 세계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다민의 세계는, 자신의 모든 식사가 삼성으로부터 나온다고 믿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기본소득이니, 노동권리니 하는 것들은... 부동산을 지켜주지 않을 테니까. 다른 종교로 가득 찬 세상에 도착해버린 것 같았다.
동생과 내가 달라진 순간은 어디였을까.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이 둥둥 뜬 허공 같았다.
피아노학원 다녀요
by. 임카
선생님한테 얘기해서 연속 두 곡을 재즈곡으로 진도를 나갔다. 뻔뻔하고 능글거리는 것도 연습으로 가능하다면, 대놓고 그런 곡들만 쳐서 뻔뻔함과 능글거림을 몸에 익혀보아야지 하고.
얼마 전에 우리 단체 총회가 끝났다. 일을 한 지 10년 정도 되었으니, 그동안 치룬 총회도 열 개 쯤은 되려나. 2, 3월에 시민단체 상근자들을 만나면 서로 할 말이 총회밖에 없다. 언제 하는지, 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로 시작해서 힘들어 죽겠다, 그러게 얼굴이 안 되어 보인다, 하루 빨리 해치우고 잠깐이라도 푹 쉬자로 끝나는 대화. 적당히 맞장구를 치지만 사실 총회가 별스럽지 않아진지는 오래됐다. 유독 운이 좋아 편한 단체들만 거쳐 온 건지, 내가 일을 대충 하는 건지. 아무튼, 올해는 어느 해 보다도 느긋하고 평온한 총회의 날을 보냈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처음 동네에서 일을 시작 했을 때, 이 바닥에 흔치 않게 제 발로 찾아온 ‘청년’ 중 한명이었던 나는 별거 아닌 일에도 온갖 칭찬을 들어야했다. 젊은이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버무려진 칭찬들. 아이디어가 너무 좋다, 통통 튄다, 반짝반짝 빛난다 같은. 좋았다. 좋았는데, 굳이 내가 갖고 있지 않은 모습으로 칭찬을 받으려니 머쓱하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했다.
막막함은 오랫동안 따라다녔다. 나는 계속해서, 그리고 여전히 아이디어가 넘치고 통통 튀고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무엇이든 꾸준하게 잘 해 낼 자신은 있었다. 다행히 이런저런 것들이 잘 맞아서, 손 내밀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부침 없이 경력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대여섯번의 총회를 치루고, 몇 개의 지원 사업을 말아먹기도 하고 꾸역꾸역 처리하기도 하고, 가끔은 원치 않는 일을 맡아 괴로워하기도 하면서, 종종거리는 일 없이 느긋하게 총회를 준비할 수 있게 되는 동안 막막함은 점점 뚜렷한 형체가 되어갔다.
“너 요즘은 예전 같지가 않네”, “너도 좀 치고 나가봐”, “더 잘 할 수 있는데 아까워서 그러지”
꾸준하게 쌓아올리고 있는 것들이 하찮게 느껴질 때, 나에게는 없어서 함께하는 것이 더 소중하고 고마운 친구의 장점을 들고 와 굳이 비교할 때, 괴로웠다.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 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며
두 곡의 재즈를 끝내고 다시 쇼팽으로 돌아갔다. 뻔뻔과 능글은 개뿔. 자유로운 악보 속에서 리듬을 잡지 못해 허우적거리고 파닥대다 끝났다.
새로 시작한 곡은 쇼팽의 'Etude Op.25 No.11‘ 에뛰드는 연습곡이라는 뜻이다. 그야말로 유려하게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도록 단련하기 위한 곡. 오른손은 계속해서 몰아쳐야 하니 손가락도 빨라야 하고, 긴긴 시간을 버틸 지구력도 있어야 하고, 특별히 튀는 음 없이 쭉- 이어치면서 옥타브들을 넘나들어야 하니 유연하게, 또 그러면서 왼손은 묵직하게 전체적인 음악을 끌고 가야 한다. 보통은 처음 악보를 볼 때 어설프게라도 완곡을 연주해보라고 하는데, 이번엔 여섯마디씩 끊어 치고 있다. 힘들고 지루하겠지만 이 곡을 다 치고 나면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고. 구차하지 않을 수 있다고.
뻔뻔과 능글. 어쩌면 나는 타고나지 못 한건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막막하거나 괴롭지는 않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런 이야기들로 막막하거나 괴로워지지는 않는다. 내가 굳이 통통 튀거나 빛나거나, 치고나갈 필요가 없는 것도 안다. 뭐 더 이상 그런 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나는 그냥, 묵묵히 몸에 익힌 여유로운 분주함이 관성이 되지 않게 작은 변주들을 계속해 나가야지.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 이여
김수영 / 봄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