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렸을 때부터 물을 좋아했다. 여름방학이면 공주에 있는 시골에 맡겨졌다. 지금은 좁은 구정물이겠지만 그때는 유구천으로 흐르는 꽤나 넓직한 냇가가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동생들을 데리고 냇가로 달려가 수영을 하고 바위에서 뛰어들어 몸을 던져넣고 몸을 말리며 옆 밭에서 할머니가 따온미적지근한 수박을 손으로 뭉텅 집어먹었던 오래된 기억. 이런 기억도 있다. 사춘기를 겪을 무렵 사실은 물에 들어가서 첨벙첨벙 놀고싶은데 내가 이 어린 것들하고 물에 들어가야하는 나이인가.(내 나이 14살쯤) 온통 적셔지고 그럼 멋이 좀 없어지는데. 그러면서 물을 갈망했던 기억.
2.
언젠가 동남아 어딘가의 바다로 호핑투어를 갔을 때 가이드가 장난을 친답시고 내 몸 주변으로 피딩을 했다가 그 주변의 물살이들이 온통 나에게 달려들었다. 편하게 수영하고 싶어서 구명조끼를 벗어두었다가 달려드는 물살이떼에 당황해 패닉을 겪었던 경험. 그 때 쳐다보았던 수백마리의 물고기 눈이 선명해서 한동안 바다에 가서 물살이의 눈을 마주치는 것이 공포였다. 저것이 나에게 달려들면 어떡하지. 그 쪼매난 주둥이로 물어봤자일텐데도, 물살이가 다가올 때면 그 스치는 비늘의 감각들이 상상되며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바다는 포근하지만 무서운 곳이라는 것이 조금 더 지배적인 감각이었다.
3.
이번 미야코 여행의 목표는 매일 바다의 가는 것. 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바다에 매일 가게될 지 몰랐다. 바다에 들어가게 되는 거의 대부분의 순간엔 해가 비췄고 바람이 잦아들었다. 비수기를 빗겨난 덕분에 관광객이 적어 거의 우리 뿐이거나 아주적은 사람만이 있었다. 수온은 꽤 차가웠지만 볕에 나가면 금새 몸을 말릴 수 있는 정도였다. 마지막날의 바다 빼고는 시야가 좋아서 멀리 있는 거북이과 물살이와 산호를 만날 수 있었다. 이번에 특히나 만나고 싶은 것은 산호였다. 형형색색의 커다란 산호의 군락과 그 곳에 함께 살고 있는 이름 모르는 생명들. 프리다이빙을 하러 10m정도의 수심에 들어갔을 때 먼 바닥에 산호가 보였다. 저기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차분히 내 다이빙을 기다렸다. 매년 바다를 보러 다녔지만 살면서 처음 바다를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멀리- 내가 가본적이 없는 곳. 내가 만나본적이 없는 삶. 물살이는 더이상 무섭지 않았고 멀고 보이는 어둠이 조금 더 편안해졌다. 그림자도 무섭지 않았다.
4.
바다를 더 알고 싶고 보고싶다. 첫날 입었던 수영복 모양으로 고스란히 등을 탔다. 그리고 나머지 날들에 입었던 수영복 자국이 얼룩덜룩하게 몸에 남았다. 이마에 헤어밴드를 따라 흰색 주름도 생겼다. 약간 부끄럽지만 내일은 오랜만에 새벽 수영을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