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더위나 추위같은 감각은 닥칠 땐 너무 선명하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멀어지면 금새 잊어버린다. 한 두달은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올해도 역시 때맞춰 에어컨을 사놓지 못했다. 올해는 유독 끔찍하고 심각하다. 집 안에 있으면 한 시간에 세번은 샤워를 한다. 집안일은 한꺼번에 몰아한다. 청소기라도 돌리면 축구장을 뛰어다닌 사람처럼 온 몸이 땀으로 젖어있다. 찬물로 오래오래 샤워를 한다. 그럼에도 금방 살갗에 끈적하게 습기가 묻어난다. 머리만 묶어도 땀이나고 선풍기를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기기만 해도 땀이 난다. 어깨끈이 찌찌까지 늘어난 나시와 최고로 얇은 반바지를 입는다. 다른 옷을 입느니 차라리 벗고 있는 것이 낫다. 더우니 온 집안의 창문을 활짝 활짝 열어놓았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헐거운 채로 있다.
우리 동네엔 꽁꽁 싸맨 창문이 별로 없다. 다들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고 있다는거다. 해가 지면 차라리 안보다 밖이 더 시원하다. 집 앞 골목으로 나가보면 이미 사람이 많다. 부채를 들고, 강아지를 들고, 간식거리를 들고 차라리 시원한 바깥에서 몸을 식혀 보낸다. 저녁엔 선풍기 두 대에 기대서 잔다. 옅게 잠을 자고 자다가도 일어나서 샤워를 하기도 한다.
평일 낮은 출근을 하니 다행인데 주말이 문제다. 토요일에는 토마토랑 사과랑 볶음밥 도시락을 싸서 도서관 휴게실에서 먹었다. 일요일에도 도서관에 와서 낮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다시 도서관에 왔다. 도서관엔 책도 있고 에어컨도 있고 전자렌지도 있고 정수기도 있다. 우리 집에 없는 것이 도서관엔 다 있다. 더위가 완전히 사그라드는 밤까지. 나가라는 알람이 들릴 때까지 도서관에 있는다. 할수만 있다면 몰래 잠도 자고 싶다. 영락없는 도숙자 신세.
그렇지만 매년 반복되던 더위일기는 올해가 마지막일거다. 어느 저녁에 도저히 못참겠다! 하면서 저녁을 먹고 동네 가전샵에 가서 벽걸이 에어컨을 사버렸다. 에어컨 설치 기사님을 오매불망 기다린다. 에어컨 (설치 기사님) 모시려고 계단도 치워두고 벌집도 제거했다. 마침내 내일 아침. 끈적한 더위 일기가 마무리되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