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을 약간 홀린듯 보내고 주말 내내 티빙에 나온 <샤먼 : 귀신전>을 봤다. 단지 무섭고 쫀쫀하고 네이트판처럼 자극적인 이야기가 보고 싶었는데 예상보다 잘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무당이나 무속신앙에 대해서 이렇게 솔직하게 나 까발린 작품을 처음 본 것 같다. 무당도, 무당을 찾는 사람들도 배우가 아닌 실제하는 인물들이다. 포르노적인 다큐일까 해서 의심하며 보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무엇보다 등장한 캐릭터들이 좋았다.
여기엔 계속 약한 사람이 등장한다. 귀신을 보는 사람, 연인을 죽이고 싶은 사람, 꿈이 많았지만 결국 무당이 된 사람, 부모에게 버려진 사람, 친족 성폭행을 당한 사람, 자살 시도를 하는 사람. 무당은 상처받은 사람을 돌보는 역할을 한다. 무당에 제일 필요한 건 타인의 아픔을 감지하는 감각이다. 목소리만 들어도 아이고 가여운 것 하며 눈물을 쏟을 수 있는 사람이 무당이다. 꽁꽁 숨기고 있던 악함을 빠르게 낚아채는 사람도 무당이다. 너 쟤를 무시하면서 종처럼 부리고 싶었지? 가끔 화가나서 죽이고 싶었지?
기독교와 달리 무속신앙에선 선악을 선명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원래 나빴지만 좋아질 수 있는 사람, 좋은 사람이지만 나쁜 기운에 물든 사람, 애쓰지만 운이 없는 사람, 악하게 태어났지만 선한 기운이 지켜주는 사람. 다채로운 경계의 세상에 무당이 있다. 삶과 죽음이 엉켜있는 세상에서 조용히 지켜보다 필요할 때 강력하고 선명하게 등장한다. 넓고 혼잡한 세계에 들어서 마치 원래 경계가 있었던 것처럼 가르고 모시면서 인간을 지킨다. 그게 무당의 역할이다. 버려진, 욕망하는, 실패한, 지배하는, 외로운 사람들을 땅 위에 편안하게 안착시켜주는 존재의 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꼴보기 싫었던 건 무당이 사용하는 용어, 관념들이 너무나 가부장적이고 유교적이었던 거다. 하늘의 세계의 속한 것은 대부분 여성, 할매. 보다 높이 신격화된 것은 할배, 장군들. 꼭 죽은 아이의 귀신은 여성에게만 달라붙는 것, 결혼을 못하고 아이를 낳지 못해 한을 품었다는 말, 여자가 죽은 곳에 가지 말라는 말 등등. 이 종교는 결국 남성중심의 부귀를 위해 명맥을 유지해왔는가?
흥미로운 건 마지막 에피소드다. 어렸을 때 해외로 입양되고 자라면서 트렌스젠더가 되어 아프리카 샤먼인 '상고마'가 된 김혜진의 에피소드. 중간중간 그가 상고마로서 무속행위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얼굴과 몸은 전형적인 남성의 외형을 띄면서 브래치어를 한 모습이 스치듯 나온다. 합의굿을 할 땐 까무잡잡하고 강인한 남성의 얼굴에 여리고 하얀 소복을 입고 등장한다.(중간에 어떤 남자 무당도 치마 한복을 입고 있다) 그 모습이 좀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는데, 그게 다큐가 보여주고 싶은 이 종교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무속신앙은 가부장의 언어 안에서 자랐지만 경계에 있는 사람들, 낯선 이들, 괴물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세련되고 좋은 말로 경계 밖 존재들을 혐오하고 고치려하지 않는다. 인간을 넘어서, 괴물이 되면서, 투박하게 인간을 지킨다. 어떤 것이 이 세계에 더 필요한 믿음일까. 어떤 것이 세상을 더 좋게 만들까.
호기롭게 말하지만 사실 무서워서 놓친 장면이 많다.........잠에서 깰 때마다 발 아래, 방구석에 뭔가가 보일까봐 발꼬락을 이불 안에 숨겼다. 경계 밖의 세상을 보기엔 나는 지금 너무 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