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책읽는 친구들이랑 계엄과 대선을 준비하며 '더 나은 민주주의'란 주제로 강의 기획을 했다. 하승우 샘을 오랜만에 초대했고 이런 저런 얘가를 듣던 와중에 법과 제도에 기대는 것이 민주주의인가 하는 물움표 앞에서 마음에 오래 묵은 짐이 떠올라 길어올린 생각..
우리집은 천안에서 보기 드문 산동네에 있다. 겨울이면 차를 언덕 아래 두고 걸어 올라가야하는 꼭대기에 집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 이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 때 쯤, 급하게 만들어졌을 법한 동네. 갈색 벽돌의 연립주택들이 가까이 붙어있고, 중간 중간 규칙없고 난데없는 집들이 미로처럼 모여있다. 이 동네엔 가난한 사람들이 산다.
살고 있는 건물, 해가 전혀 들지 않는 반지하를 걸친 1층엔 아저씨가 홀로 산다. 한동안 아저씨는 집을 오래 비웠고 겨울이 되자 돌아왔다. 그가 돌아왔는데, 그 집 보일러 도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어둔 밤에도 불이 켜지지 않았다. 아저씨가 다시 어디론가 가버린건가 싶었지만, 아침이면 종종 골목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올 겨울의 가장 추운 날. 우리집 말고는 아무도 보일러를 켜지 않아 결국 건물 전체가 동파된 날. 나는 혹여 아저씨가 고독사를 하게 될까 걱정이 됐다.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집 안에서 얼어죽은 사람이 나의 아랫집 사람이 될까 무서워졌다. 아저씨네 집 문을 두드릴까. 왜 보일러를 켜지 않는지 물어볼까.
하다가 인터넷으로 시청 홈페이지를 검색했다. 혹여나 기름값이 없어 난방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 있을까 찾다가 '파란우체통'이라는 걸 찾았다. 주변의 어려운 이웃이 있을 때 간편하게 신고할 수 있도록 채팅창을 운영하고 있었다. 주소를 밝히고 한번 찾아주길 요청했다. 내가 보낸 채팅은 3일만에 읽혔다. 이후에 그들이 어떤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 잘 만나고 돌아갔는지는 확인하진 않았다. 여전히 그 집 불은 켜지지 않고, 보일러는 돌아가지 않는다.
나는 왜 그 집 문을 두드리지 않았나. 오늘 강의를 들으면서 그 생각을 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약자를 보호할만한 충분한 정책들이 있다. 그래서 동시에, 그들을 만나지 않고 그들을 보호할 수 있다. 사람은 만들어 내놓은 정책 뒤에 숨을 수 있다. 이게 뭐지? 그러니까 이런 걸 하고 싶어서, 만나고 싶지 않아서, 만나는 것이 두려워서 법과 제도와 정책이 필요한건가? 이게 목표이자 결과인거면, 이렇게 살고 싶은 것이 맞나? 이런 생각..
그래서..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야할까. 어떻게 말을 걸어야할까. 내가 이 동네를 계속 말하는 건 왜일까. 왜 이들의 가난이 궁금할까. 그 문을 두드리면 뭐가 열릴까. 그게 나의 숙제가 될까. 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