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날은 슬픈 날대로, 기쁜 날은 기쁜 날대로

호두와글 10주차

by 소산공원

일요일다운 일요일

by.산


오랜만에 일요일다운 일요일을 보냈다.

전 날 햇빛에 절은 몸에 생맥주를 벌컥벌컥 마셔대서 잔뜩 취해버렸었는데, 아침에 숙취도 없이 깔끔하게 눈이 떠졌다. 해야하는 일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으니 오랫만에 집안일이 하고 싶었다. 너저분해진 주방을 정리하고 일주일동안 쌓아둔 빨래를 돌렸다. 이제는 입지 못할 니트들을 정리하고 얇지 않은 반팔들을 꺼내 차례대로 세탁기를 돌렸다. 고양이들 화장실을 정리하고 밥을 주고 화분을 옮겨 흠뻑 물을 주었는데도 오전이었다. 웅이가 사온 국밥으로 해장을 하고나니 다시 눕고 싶어졌다. '얼른 누워 곰이 되자'고 웅이를 끌어들여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파친코를 보면서 꾸벅꾸벅 졸았다.

졸고 일어나니 1시. 거실 창문 밖에 있는 스티로폼 화분에 어디서 날아온 냉이꽃이 막 자라고 있는 것이 신경쓰였다. 봄이 되었으니 뭐라도 심자는 생각에 가볍게 입고 시장까지 걸어갔다. 주말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장이 조금 더 크게 열렸다. 고수와 양상추 모종을 조금 사고, 가지, 토마토, 마늘을 샀다. 새로운 화분을 사는 건 조금 무서웠지만 채소마스터가 될 때 필요할 것 같아 로즈마리 화분도 하나 샀다. 커피를 한 잔 사서 강변을 따라 터덜터덜 걸어왔다. 장을 본 재룔 얼른 가서 샐러드를 해먹어야지. 그런데 세상이 언제 이렇게 연두색이 되었담.

지난 주에 서울에 갔다가 큰 맘 먹고 두껍고 큰 요리책을 샀다. 요리 레시피를 검색하면 된다는 생각에 요리책은 어쩐지 잘 사게 되지 않았는데 막상 사고 나니 무지 설렜다. 요리책을 산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긴하지만 무엇보다 천천히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손이 빠르기도 하고 성격이 급해서 여러가지를 빠르게 뚝딱뚝딱 하는 편이지만 그래서인지 자주 하게 되는 요리는 소스를 잔뜩 넣고 재료를 때려넣어 볶거나 끓이거나 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늘 섬세한 맛을 내는데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채소마스터라니. 천천히 정성스럽게 해야만 가능한 일이 아닌가.

장을 봐온 토마토와 가지, 고수로 '마라 토마토 무침'과 '구운 가지 샐러드'를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별로 섬세하게 맛있지 않았다. 두가지 요리를 동시에 하니까 머릿 속에 요리의 순서들이 빠르게 굴러가고, 그러면 뭔가 천천히 하기가 어려울 것 같고.. 그렇다고 한가지를 해놓고 다른 한가지를 하자니 식을 것 같고..(샐러드는 식어도 되는데) 이래저래 생각들을 많이 하다보니까 손이 저절로 빨라지고 마음이 급해지고... 오이를 절이는 동안에 가지에 밀가루를 묻히자, 아니 얼른 마늘을 편 썰어서 오일을 만들까? 를 머릿 속에서 쉴 새 없이 생각하다가 결국엔 화자오 오일을 조금 태웠고, 가지 샐러드 소스가 느끼해졌다. 책에서 시키는대로 다 했는데 마스터의 길은 멀고 험한 일이었다.

조금 느끼하고 애매하게 마라맛이 나는 토마토 무침과 샐러드를 먹고 웅이네 농장 근처에 카페에 갔다. 웅이가 일하는 걸 기다리는 동안 잠깐 호철이 선물해준 고양이와 채소스프를 읽었다. 매끼니 고기를 찾던 사람의 채식생활을 기록한 에세이인데 낄낄대며 읽었다. 나도 작년에 잠깐 누군가를 따라서 자연식물식을 며칠 먹고 인스타에 올린 적이 있는데 자주 만나지 않는 사람들은 내가 베지테리언인줄 아는 경우가 꽤 있었다. 고기를 먹어도 되냐고 물어봐주기도 했고, 적극적으로 고기를 먹자고 말하기도 민망스러웠다. 그래도 이렇게 자꾸 선언을 해야 고기에서 멀어지겠구나 싶었다.

책에는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채소들의 최상의 맛을 끌어올리는 여러가지 팁을 말해주었는데, 나에게도 채소마스터가 아니어도 일상을 그럭저럭 괜찮은 날들로 만들어주는 몇 가지 팁이 있다. 산책, 시장가기, 요리하기, 좋아하는 책읽기. 그리고 할 수 있는 만큼 세상에 해롭지 않은 일 하기. 일단은 채소마스터를 궁리하는 좋은 일요일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해보아야겠다.



'마이크로 비거니즘' 이라는 용어가 있다. 할 수 있는 만큼 가능한 범주에서 비거니즘을 실천한다는 의미다. 집에서는 고기를 먹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에 고기 국물은 먹고, 집에서는 생선을 먹지 않지만 밖에서는 생선을 먹는게 무슨 비건이냐고 누군가는 나의 식생활을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게 나의 마이크로 비거니즘. 세상에 스트레스 받을 거리는 넘치니까 식생활로 너무 자신을 옭아매지 않기로 했다. 비웃어라. 그러거나 말거나 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살 테니.

<고양이와 채소수프, 이보람, 왼쪽 주머니> 중



슬픈 날은 슬픈 날대로, 기쁜 날은 기쁜 날대로

by.임카


아침부터 사무실이 술렁이는 날이었다. 다들 휴대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상황을 확인했고 가끔 누군가 새로 올라오는 뉴스 소식을 전했던 것도 같다. 그때 난 동네 선배의 선거캠프에 대놓고 뛰어든 것도 아닌, 그렇다고 아닌 것도 아닌 상태로, 스리슬쩍 발 담그게 된 것에 골이 난 채로, 그런데 도움은 되고 싶은 아리송한 마음인 채로 사무실 한구석에 앉아있었다. 2014년 4월 16일. 모 당의 천안시장 후보 경선이 진행 중이었다.

집에서 나설 즈음부터 아침속보로 저 아래 어딘가에서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걱정스럽지만 무감한 채로 출근을 했고, 경선 진행상황에 초집중인 사무실 속에서 역시나 무감한 채로 메일함을 열고, 포털에 들어가 뉴스를 봤다. 배가 많이 기울었다. 선장이 구조됐다. 탈출과 구조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전원 구조됐다고 했다.


오후 내내 술렁이는 사무실에서 바다위로 헬기가 떠다니는 뉴스만 봤다. 아직 고등학생인 막둥이 남동생이 기숙사에 있었다. 안되는데... 안되는데.. 하면서 속절없이 모니터만 보고, 순한 내 동생 얼굴만 떠올라서 계속 손이 떨렸다.


경선결과 언제 나왔지. 아무튼 우리 후보는 떨어졌다. 다 같이 서해에 갔다. 제철음식 좋아하는 선배는 쭈꾸미 샤브샤브를 먹고 진탕 취해서 바닷가에 드러누워 노래도 부르고 소리도 질렀다. 우냐...... 그 꼴이 너무 웃긴데, 누구도 마음껏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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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416 행사를 준비하거나 진행하면서, 사람들에게 그날의 기억들을 공유해달라는 주문은 많이 했으면서 정작 나는 오늘이 처음. 이렇게나 생생한 기억이구나.


2주기 때는 북콘서트를 준비하다가 마음이 아파서 한 달을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울기만 했다. 끙끙 앓고 난 후로는 한동안 조금 비켜나 있었다. 그러다 5,6주기 쯤 해서는 민망했다. 괜히 화도 나고. 매일 기억만 외치는 것 같아서 면구스러웠다.


올해는 봄볕 쬐는 원성천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많이 슬프거나 아프지도 않고 민망하지도 않은 기분으로 웃고 노래도 따라 불렀다.


“슬픈 날은 슬픈 날대로 기쁜 날은 기쁜 날대로” 기가 막히는 네이밍이다. 사과나무 천재 만재





슬프고도 기쁜

by.시내


고등학교 3학년때 담임선생님은 국사 선생님이었다. 매번 수업시간마다 칠판에 단기 몇년, 몇월 며칠 이라고 적고. 그날 역사상 의미 있었던 날들을 알려주셨다. 여러 날들이 있었고 필기도 몇번 했던 것 같은데 대부분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선생님이 4월 19일을 적으면서 너희가 대학에 가서, 사람들이 그날이 어떤날인지 기억하지 못한다면 너희가 잠시 4.19 혁명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었다. 그 말을 듣고도 나는 속으로 ‘절대로 먼저 말하진 못할거야’ 하고 소심하게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다닐때는 5.18민주화운동과 4.19혁명에 대해 강조해서 배웠고, 매해 5월 18일엔 담양에서부터 망월동 묘역까지 걸어갔다. 4.19혁명 기념일엔 학교 뒤에 있던 산을 올랐던 것 같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런식으로 기억하는 법을 배웠었네.


하지만 살다보니 기억해야 하는 일들은 계속 늘어났다. 4.16도 그런 날이 되었다. 그날이 되면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려고는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 세월호참사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진 않았다. 나는 사과나무에 오고나서야 겨우 4.16을 기억하는 사람이 되었다.


18년도 세월호참사 4주기때 명재쌤이 4.16때 거리에 걸어둘 현수막에 들어갈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다. 처음엔 도대체 뭘 그려야 할지, 내가 그려도 되는지 막막했다. 5주기에도 6주기에도 그렸던 것 같다. 그 현수막이 시내에 걸렸을때, 내 작업을 보고 특별한 반응을 보인적이 별로 없던 엄마가 현수막이 걸린 곳을 일부러 지나갔다고 했다.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며 드디어 내가 아주 작은 역할을 할 수 있게 된거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서서 먼저 ‘하자’고 말하는 사람이 되진 못했다. 이번 4.16행사를 준비하는 주간은 다른 업무들도 조금 바쁜 한 주였다. 그김에 엄마에게 투덜 거렸다. 해야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고. 뭐도 해야되고 뭐도 해야되고, 4.16행사 준비도 해야된다고. 그랬더니 엄마가 한마디 했다. 그런거 할 수 있는게 다행이고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맞다.


나는 가능하면 일이 되어버리는 일들을 요리조리 피해다니려고 한다. 은근슬쩍 모른척도 한다. 그런데 다행이도 주변에서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가만뒀으면 내 생각에만 골똘한 인간이 되어있을건데 주변 사람들 덕분에 잘 묻어간다. 그게 정말로 다행스럽다. 슬픈 날이지만 그안에 기쁨도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IyWigoyR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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