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주차_호두와글
by. 탱
1. 설렘 반 걱정 반으로 했던 첫 출근
너무 어색하고 정신도 없었지만 느낌이 좋다. 3일 동안 듣는 교육이 얼른 끝나서 일하고 싶다. 노는 것도 지겨워....
2. 온양과 아산을 왔다 갔다 하며 3일간의 교육이 끝났다. 나보다 3주 먼저 들어오신 선생님과 같이 과제물을 하다 보니 입사동기 느낌도 나고 너무 좋은 것 같다. 여태껏 일을 하며 OJT라는 것을 처음 겪어본 나로서는 조금 어색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경험이었다. 직원들이 직접 회사에 대해 알려주고 가르쳐 주는 입장이 되면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조금 더 늘어나지 않을까? 여태 만난 분들은 전부 다 표정이 좋았는데...
3. 벚꽃이 만개했다. 회사 근처에 벚꽃이 만개한다는 건 너무 축복받은 것 같다. 봄을 흠씬 느끼며 자리로 찾아가서 앉으니 이제 진짜 회사 일원이 된 거 같은데 과제물이...... 급한 거 서둘러서 끝내 놓고 나니 그래도 생산적인 일을 한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난 아무래도 일을 해야 하나보다 zz
4. 토요일 오전 주민자치 회의가 끝나고 엄마한테 전화를 받았다.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말씀하시길 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골목에서 어떤 차가 나와서 엄마 차를 박았다고. 덜컹하는 심장을 부여잡고 급하게 운전을 해서 간 현장은 보험사 직원들과 경찰과 상대 운전자 등이 뒤섞여 정신이 없었다. 많이 놀라셨을 엄마의 상태를 먼저 확인했는데 당장은 괜찮다고 하셨다. 상대 운전자는 연신 미안하다고 하며 이야기했고 다행히도 상대방이 과실 100%라고 인정했고 치료비 렌트비 등 전액 보험 처리하기로 했다.
차는 이미 오른쪽이 심하게 긁혀서 문을 교체해야 할 정도였고 사람이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놀랐는지 자꾸 열이 난다는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나니 긴장이 풀리니 더 아프시다고 하셨다. 맘 같아선 병원에 입원시키고 오고 싶었으나 극구 싫다고 하셔서 일단 한수 접었다.(편하게 있는 게 좋을 테니까) 집에 모셔다 그러고 나서도 계속 걱정이 되어 전화를 했더니 역시나 아프시다고....(입원시키고 왔어야 해) 우선 병원에서는 아프면 바로 오라고 했으니 심해지시면 바로 모시고 가야겠다.
토요일 이것저것 계획했던 것들이 전부 틀어졌지만, 그래도 크게 다시시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하루였다.
by. 경주
영화를 적던 것을 또 그냥 일기로 바꾸기로 했다.
어느새 의무감으로 영화를 찾고 어떤 대사가 좋았지 다시 보고
영화를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아 그냥 편하게 이번 주의 느꼈던 감정들을
글로 그럴듯하게 적어보자 생각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은 중간지원조직인데
사실 이 직업을 설명하기 어려워서 그냥 기업지원? 하는 일이라고 퉁치거나
이것저것 해요라는 누가 들으면 수상해 보이는 말로 웃어넘기고는 했다.
아무튼 중간지원조직은 정부에서 해야 할 일들을 민간 해서 대신 위탁받아서 일하는 것이고
그 일은 마을기업을 지원하는 일들이다.
그럼 또 마을기업은 뭐냐?라고 궁금하겠죠? 마을기업 지역의 자원을 활용한 수익사업을 통해 공동의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소득 및 일자리를 창출하여 지역공동체 이익을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설립-운영하는 마을단위의 기업이라고 보통 정의한다.
(혹시 관심이 있다면 연락 주세요^^)
뭐 그런 일들을 하는데 그중에서 또 나는 마을기업들의 판로를 담당하고 있다.
여러 사업이 있지만 이번 주는 오프라인 판매전 행사를 공공기관에서 진행했다.
올해 3년 차 진행했고 기존에 주차장 쪽(바깥쪽)에서 처음으로 옮겨보았다.
2년 동안 같은 장소에서 진행했기에 또 새로운 장소에 대한 불안감들이 있었지만, 기관 담당자의 주장과 협력 관계에서의 상생(?)을 통해 행사장소를 변경했다.
그렇게 행사 당일이 되었다.
뭐 일단 행사는 망했다.
'망했다'라는 말을 선택하는 각자의 기준은 아주 다양하겠지만 결국은 매출이 안 나왔다.
물론 가을보다 안 나올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한 것도 맞았다.
그 후 곱씹어보니 변수는 참 많았다.
- 항상 가을에 진행했기에 상반기 진행은 처음이었고 그렇기에 가을의 경험으로 상품을 구성했던 변수
- 장소가 변경되어 사람들이 우리 마켓을 못 찾는 변수
- 근처 장소에서 마켓이 별도로 열린 변수
- 전기 공급의 문제 등등
이렇게 많은 변수가 있음에도 참여자들은 일단 장소변경이 가장 크게 다가왔기에
나는 기업과 공공기관 사이에서 장소변경 당위성과 다음 행사(5월)의 개선점들과
차별점 설명하고 이 모든 오늘의 현상들을 이해시켜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고
(사실 이해를 꼭 안 시켜도 되었지만, 이것 또한 내 욕심이었을 거다)
그 순간들에서 에너지를 아주 다 써버린 한 주였다.
가끔은 E였으면 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뭔가 사람들을 만나는 에너지를 총량을
제8금융권 사채까지 써서 빌려 다 소진한 경우들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사람과 사람 또는 기업과 기업 또는 정부와 기업 그 사이에서 나름의 고군분투를 하고 있지만
참 어렵다는 생각들을 하곤 한다.
중간에서 줄타기를 아슬아슬하게 하며 넘어지기도 하지만 아직은 그럴 때마다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이 있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이것 또한 복을 받은걸 지도.
하기 싫은 일을 안 하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조금이라도 하는 게 아직은 더 행복하고 좋아서 이 일을 하는 것 같다.
매주 아마 이런 고군분투기를 적지 않을까?
by. 시내
금요일에 S.W.C 모임이 있었다. S.W.C는 걷자고 모여서 걷기보다는 먹고 마시는 모임이다. 그러던 중 이번 주에 가장 잘한 일에 대해서 얘기했다. 누군가는 화를 내지 않은 것, 누군가는 복싱을 시작한 것, 누군가는 거절의 말을 한 것, 누군가는 일하면서 했던 노력들에 대해 얘기했다. 정작 질문을 던진 나는 그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꼭 질문 앞에서는 답이 생각 안 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이번 주에 드디어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두 번째 이모티콘을 제안했다!
세 차례 정도 스케치를 다시 했는데, 그럼에도 아주 마음에 들진 않는다. 아마도 거절당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일단 내 손을 떠나보냈다는데 조금 홀가분해졌다. 거절당한다면 다시 수정해서 제안할 테다. 그리고 새로운 시안도 작업해둬야지.
by. 임카
출퇴근길 논밭두렁에서 연기가 폴폴 난다.
아침 일찍 삽교쯤 지나는 길엔 머릿수건 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밭에 매달려 있고, 올해는 서해 봄 꽃게가 대풍이라는 기사를 봤다.
지난주에 아버지가 장고항에서 실치회를 잔뜩 사다 남매들을 모아 잔치를 벌였다. 봄이다!
봄이 오니까 괜히 나도 농사꾼 마냥 바빠진다.
충남지역 강제동원 노동자 상 설립 추진위원회가 출범했다. 충남에서 이름이 확인된 사람만 9,823명. 이름도 없이 사라진 사람은 얼마나 되려나.
걱정했는데 브리핑실에 기자들도 북적였고, 출범식 자리도 꽉 찼다.
아,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국제노동기구(ILO) 강제노동 철폐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단다.
그날 저녁엔 문정현 신부님과 봄바람 순례단이 오고, 페미니스트 박소선이 발언을 한다길래 쫓아 나갔다가 야우리 앞에서 다 같이 빙글빙글 돌면서 노래를 불렀다.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정부는 FTA보다 더 센 메가 FTA인 CPTPP에 가입하고 싶어 한단다. 다들 문을 열고 장벽을 낮추고 세계가 이웃인 것처럼 자유롭게 오고 간다는데, 왜 농민들이 디딘 땅은 자꾸만 좁아지지. 근데 농민회는 요즘 누가 남아서 싸우려나
"오늘의 세월호는 어디지?" 금요일 낮, 시내와 다음 주 세월호 천안 기억 주간 행사를 준비하면서. 그 꼴을 겪고도 도처에 세월호가 널려있다.
JTBC에서 이준석과 전장연 활동가가 장애인 이동권을 놓고 토론을 한단다. 내가 지금 뭘 본건가.
금요일 저녁부터는 다음 주에 나갈 지속 가능한 공익활동지수 어쩌고에 보낼 발표자료 때문에 끙끙댔다. 그냥 공익활동 지속가능지수가 아니라 활동가들이 일하는 모습 속에서 지속가능을 묻는 연구라 조금은 반가웠다. 조직문화/활동 만족도/재충전/건강/활동가 정체성... 이 지표들에 점수를 매기고 또 가중치를 준다. 그렇게 산출된 2021년 공익활동가 지속가능성 지수는 64점. 생각보다 높아서 놀랐다. 하긴 나도 지속하고 있구나.
지속가능이라는 말,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그런데 나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말하려니 잘 모르겠다. 우리가 즐겨 얘기하는 산은, 강은, 바다는, 지구는 자기가 어떤 방식으로 지속 가능하기를 바랄까? 이렇게 된 이상 멸망으로 간다 하고 있진 않을까?
농사꾼 마냥 바쁘게 뛰어다니는데 내가 뭘 심고 있긴 하는 건가.
얼마 후 문득 피어난 새싹 하나, 그러다 가을엔 열매 하나쯤은 볼 수 있으려나.
"꽃이 필 것이라는, 열매가 맺힐 것이라는 기대 없이 어떻게 나는 계속 씨앗을 뿌릴 수 있을까"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by. 산
이상하다. 좋아하는 봄이 왔는데. 마음이 폴짝폴짝 뛰지 않는다. 그냥 봄도 아니고, 4월이다. 어둡고 휑한 긴 겨울을 견딘 나무가 연둣빛의 새순을 올릴 때, 찬바람인 것 같기도 하고 더운 바람인 것 같기도 한 아리송한 바람이 불 때. 조금만 볕 바깥에 있어도 금세 쌀쌀해질 때. 그러니까 이제야 정말 봄인데, 이 계절이 왜 설레지 않을까. 어제는 문득 '아 이제 또 긴 여름의 시작이네'라는 생각을 해버렸다.
조르바가 사라진 지 84일이 되었다. 매일 조르바를 생각하지만 매일 조르바 때문에 슬픈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매일 숫자를 세진 않는다. 84일도 방금 네이버에서 디데이 계산기를 켜고야 알게 되었다. 어디선가 고양이의 49제를 지내준 것을 보고 나도 그랬어야 했나 생각하다가, 조르바는 이 생애에서 잘못한 게 없으니까 의미가 없겠구나 생각하고 맘을 접으며. 봄이 왔으니 조르바 나무를 얼른 심어줘야지 생각하면서도, 선뜻 나무를 고르지 못하면서. 84일이 되었다. 되게 오래된 것도 같으면서, 애개 겨우가 동시에 나오는 시간이다.
책장 한 칸에 조르바의 사진과 유골함을 두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들여다보지 않게 된다. 우연히 쳐다보면 '나쁜 년...'이라고 혼자 말한다. 조르바는 진짜 나쁜 년이다. 가끔, 아니 매일 생각한다. "이상하다 조르바가 왜 없지?" 왜 조르바가 없을까. 왜 조르바가 없지?
지난주 금요일 오랜만에 해가 떠있을 때 퇴근을 했다. 노을이 질락 말락 한 시간의 하늘이 너무 예쁘고, 벚꽃이 조금씩 피어나는 길이 너무 좋아서 크게 음악을 들으며 돌아왔는데 집 근처 골목에 다 와서는, 아 집에 조르바만 있으면 딱 좋겠네라고 나도 모르게 말하곤 엉엉 눈물이 나왔다. 이 봄에 조르바만 있으면 딱 좋을 텐데. 너랑 나랑 같이, 이 구린 집 시멘트 옥상 위에서도 폴짝폴짝거리면서 함께 봄을 맞을 텐데.
조르바는 84일 동안 단 한 번도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진짜 나쁜 년. 조르바의 동영상은 왜 인지 못 보겠고, 대신 조르바 목소리를 듣는다. 자다가 문득 '조르바 목소리르 잊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면 조르바 목소리가 녹음된 어플을 켠다. "같이 쉬어요", "안녕!", "느긋이 있을래요.", "내 사랑, 내 목소리가 들리세요?", "우리 같이 쉬어요", "편하게 해 주세요.", "난 지금 행복해요" 조르바는 지금 정말 행복하려나. 지금이 있기는 한가.
이 마음은 대체 뭘까.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은 대체 뭘까.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후회나 미련은 아주 부분적인 느낌이다. 그건 아무래도 소용없는 일이니까. 앞 날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도 아니다. 조르바가 없어도 난 씩씩할 수 있으니까. 앞으로 사랑할 것들이 무수히 많으니까. 그런데, 그러니까. 이 마음은 슬픔 자체다. 의미 없이. 그냥 슬퍼야 하는 것도 사람의 일이구나.
노인들의 마음엔 여러 개의 무덤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 게 노인을,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땐 무덤이 고개 같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구멍이 숭덩숭덩 파인 자리들을 생각한다. 그 구덩이에 자주, 종종 빠지게 되는 게 죽음을 경험하는 일일까.
정말 부끄러운 말이지만, 어제야 비로소 '금요일에 돌아오렴'을 읽었다. 책장 가장 아랫칸에서 먼지를 호호 털어 꺼냈다. 몇 년 동안 용기가 나지 않았던 책이었는데 올 해는 뭐랄까.. 내게 자격이 주어진 것만 같았다. 이 말은 정말 이상하다. 슬플 자격이라. 공감할 자격이라. 이상한 말이긴 한데 이 말은 사실이다. 이제야 비로소 그 슬픔의 바깥에 있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유가족이라고 말할 때, 없음을 말할 때, 빈자리를 말할 때. 비로소 나는 그 자리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전의 내가 슬픔을 모르는 사람인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제는 구덩이를 감당할 수 있은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봄을 느낄 새도 없이 폴짝 구덩이에 빠지게 되는 것은 이제 어쩔 수 없는 일인가보다. 아직 슬플 것이 너무 많아서. 그건 사람의 일이라서. 그렇지만 슬픔과 동시에 아마도 동시에 내일도 봄이 오겠지. 봄은 봄의 일을 하는거라서.
세월이 가면 슬픔은 사그라든다고?’ 아니었다. 슬픔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슬픔은 사라지는 단어가 아니다. 슬픔은 오겠다는 기별도 없이 제멋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수시로 온다. 눈을 감아도 온다. 슬픔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눈꺼풀은 없다. 슬픔은 거친 밤을 기진맥진 통과하게 만든다. 슬픔은 자신을 진지하게 대하라 요구하는 손님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 슬픔이야말로 딸에게서 엄마가 받은 유산인걸.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면 슬픔도 눈물처럼 어디론가는 흘러가야 한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