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산
쉴 수 있을 때 으라차차 쉬어버려야 하기에, 시내랑 부지런히 점심을 챙겨 먹고 두 시에 사무실에서 나왔다. 같이 서점에 들러 책을 사고 집으로 가는 길에 햇빛이 따가웠다. 갑자기 수영장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주말에 여름옷을 정리하다 수영복을 꺼내놓은 것이 생각이 나, 집에 잠깐 들러 옷을 챙기고 동네 수영장으로 갔다.(동네 범위가 너그러운 편)
마침 거리두기가 끝나서 예약을 하지 않아도 자유수영을 할 수 있는 마침맞은 날이었다. 4시의 수영장은 정말이지... 딱 알맞았다. 자유수영 레일에 사람도 나 포함 3명. 어떻게 움직여도 닿거나 치이지 않을 수 있었다. 이렇게 수영장에 온 게 얼마만인가.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수영장에 가고 싶은데 수영모자가 없어서 플로핏햇을 쓰고 수구를 했던 꿈을 꾼 이후로도 단 한 번도 가지 못했다. 몸에 닿는 물이 생각보다 차가웠고 쾌적했고 일렁일렁. 너무 오랜만에 하는 거라 까먹지는 않았을까.
처음 수영을 배운 건 초등학교 2학년? 3학년 때이다. 친구들은 잘 믿지 않지만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한강에서 수영을 하곤 했다. 계속 노량진 근처에 살았으니 아마 용산 다리 밑 어딘가 고수부지였겠고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동생하고 같이 타고 모래밭이 있는 강가에 갔다. 아버지는 겨드랑이에 나와 내 동생을 끼고 헤엄을 쳤고 내가 물에서 곧 잘 놀자 학교에서 하는 저렴한 수영교실에 등록을 해준 것이다.
오래된 학교라 운동장 옆에 큰 수영장이 있었다.(그렇지만 저학년 때의 기억이라 지금 보면 작을 수도..) 지금 떠올려도 쨍한 파란색 페인트가 벗겨진 듯 발라져 있었고 언제나 낙엽이나 페인트 찌꺼기가 둥둥 떠다니는 지저분한 수영장이었다. 학교 끝나고 방과 후 시간에 수영을 배웠는데, 선생님도 함께 했던 친구들도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어쨌든 물을 파란색 수영장 물을 가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운동 신경이 좋은 터라 학교에서 수영대회가 열리면 배영과 자유형으로 상도 타곤 했는데, 접영을 채 배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어 아쉬웠다. 그래서 여전히 수영은 완벽하게 마스터하진 못했지만, 어쩐지 자신 있는 운동으로 남아있다.
어쨌든 바다수영 말고 정말 오랜만에 수영장에서 하는 수영이었다. 자유형을 하는데 왼쪽 어깨가 부드럽게 넘어가지 않아 신경이 쓰였다. 어깨를 신경 쓰기 시작하면 호흡이 뭔가 어색해졌다.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갑자기 숨을 쉬는 게 무척 어려워진다. 몸이 기울진 않았나? 발이 너무 가라앉아있나? 물 안에서 이렇게 숨을 참고 있는 것이 맞나? 누가 보면 그냥 손을 휘젓는 것처럼 보이는 거 아냐? 응? 누가 본다고 나를?
내 레일에는 고작 두 명의 사람이 더 있었다. 한 명은 60대 정도로 추정하는 여성분으로 내가 온 순간부터 쉴 새 없이 20분째 자유형과 배영을 번갈아가면서 하고 있다. 나도 왜인지 덩달아 몇 번 스퍼트를 맞추다가 포기해버렸다. 한 명은 내 또래 정도 되는 여성으로 한 번 출발할 때마다 온갖 심호흡을 하고 전장에 나가는 것처럼 레일을 나선다. 그리고 정말 무기를 젓는 것처럼 팔을 꼿꼿하게 휘두른다. 그리고 겨우 레일 끝에 도착해서는 몇 백 미터를 뛴 사람처럼 얼굴이 빨개져서는 있다. 일렁일렁. 이 순간에 나는 어떤 수영을 할까.
문득 카모메 식당에서 홀로 수영하는 주인공이 떠올랐다. 스을렁 스을렁 느리게 느리게 가보자. 수영대회 수상자 출신이라 천천히 하는 수영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말이야. '느으리게'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팔과 다리를 움직였다. 호흡에 신경 쓰일 때 호흡이 아닌 발가락을 생각하면서. 팔이 어색할 땐 물속에 떠 나니는 코딱지를 생각하면서. 내 몸의 바깥을 생각하면서 느리게. 사과나무를 나올 때쯤 시내가 틀었던, 성철이가 불렀던 노래를 머릿속에서 부르면서.
아아 기적이 일어나서 금방 마법처럼 행복이 찾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이따금은 지름길로 가고파 그건 안 될까
고생은 싫어 그렇지만 음 어쩔 수 없지 뭐
by. 탱
꽃은 어느새 떨어지고, 새싹이 파릇하게 올라온다. 어느덧 완연한 봄을 지나 이제 여름을 향해 가나보다. 계절은 새로운 시작하는 여러 사람들을 응원 하지만 어느새 봄을 훌쩍 지나 여름과 가을 즈음에 있는 나에겐 이제 시작이라는 단어는 조금 어색한 단어일지도 모른다.
지난주 0416 기억 마켓을 진행하며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벌써와 이제라는 단어의 차이가 많이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물론 말하는 사람의 억양이나 표정이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겠지만 말이다. 그냥 단지 ‘잊지 말아 주세요.’, ‘기억해 주세요.’인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얼마 전 잘 보지 않는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나는 어려서 기억도 안나는 사망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고등학생 아이들이 죽었고, 가게 사장은 영업정지인데도 장사를 하겠다고 창문을 다 막아놓고 장사를 하다가 실내에서 불이 났고, 주은이 막아놓은 창문 때문에 아이들은 대피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한다. 불법영업을 할 수 있도록 눈감아준 공무원과 영업 정지인데도 장사를 한 주인에게 잘못이 있음에도 단순히 아이들이 술을 먹었다고 해서 모든 화살은 아이들에게 향했다.
사건 이후 부모들은 다신 우리 아이들 같은 사고가 나지 않게 해 달라고 목소리를 내었지만, 돌아온 건 고등학생이 술을 먹었으니 불량학생 아니냐, 불량학생은 죽어도 싸다.. 애들 팔아서 돈 버는 게 좋냐 등이었다고 한다.
마지막 당시 사고 학생의 부모님이 나와서 하는 말이 아직도 뇌리를 스친다. ‘아이들 팔아서 돈 벌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짧지 않은 사회생활을 하고, 그중 반 이상을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며 자주 들었던 말이다. 아직 내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아 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이다.’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들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으로써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나는 아직 불완전하고 완벽하지 못한 사람이라서 책임을 지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사람으로서 다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해볼 것이다.
사람은 기억 속에서 잊힐 때 비로소 죽는다는 한 애니메이션 대사처럼 누구라도 기억한다면 그 사람은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살아있을 테니까. 퇴근 후 술도 안 마시고 감성에 취한 밤.
by.주박
글을 한 주 쉬었다.
글을 한번 안 적으면 2주의 여유가 생기지만 그리 쉼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냥 적을 걸 그랬나? 적었으면 기록이라도 되었을 텐데 14일의 쉼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아주 조용히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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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요새 많이 바쁜 시간이다. 새로운 일들과 새로운 일들을 하기 위한 일들...
사회적 경제 안에 있으면서 내가 이 판을 걱정하며 정책과 방향성, 미래, 직원들이 나가는 것까지 뭐 직장인이 이거까지 걱정해야 하는 것들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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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런 주도적인 역할이 좋았지만, 그 역할은 가끔 무기력함을 준다.
그런 일들을 하기에 나는 준비되어있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성장시키지 않았다.
성장하고 싶은 순간에 항상 책임과 과업이라는 키 높이 구두를 신고 커져만 갔다.
물에 뜰 수는 있지만, 그 역할을 잘 수행하기는 어려운 바람 빠진 튜브같이
나는 지금 내 일들을 잘 해내고 있지 못하다. 그냥 완료시키고 있다.
(분명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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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갈아 넣기에는 얼마 못 갈 나를 잘 알기에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이 일이 즐겁지 않을까 봐 문득 슬퍼진다.
일이 나의 일상을 지지해주지만 일 때문에 일상이 무너지는 건 원치 않는다.
모든 것들에 가장 우선은 나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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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처리할 때 나는 계획적으로 처리하고 진행하기보다는 우선순위 위주의 처리를 한다.
(마감일 순으로 정렬하는 느낌?)
아무튼 인생사를 마감 일순으로 정렬할 수 없으니 나한테 뭐가 중요하고
뭐를 제일 먼저 해야 할지 또 선택하는 순간들이 오겠지 그때 또 스스로 물어야지
'너는 지금 뭐가 가장 중요해?'
by.빈
시간이 너무 잘 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이 잘 간다.
내가 말하는 아무것은 일 외의 것들
기록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 자꾸 안 쓰게 되네..
아무 말이지만 생각나는 대로 써야지.
이것도 내 마음 저것도 내 마음.
그래도 이번 주엔 기록할 만한 일을 했다.
벼르고 벼르던 머리카락 기부를 했다.
늘 긴 머리를 유지하느라 생각만 하고 자르진 못했다.
두발 자유가 없었던 학창 시절과
이십 대 초반 아주 잠깐 이후엔 늘 긴 머리였다.
결혼식 이후에 꼭 자르고 기부하겠다 생각했는데
30cm나 잘라야 해서 자르고 난 후 내 모습을 생각하니 영 아니겠더라. 하지만 더 이상 말리는 것과 바닥의 머리들이 감당이 안돼서 점심시간에 충동적으로 잘라버렸다ㅋㅋ분명히 집에서 자로 쟀을땐 자르고 나도 머리카락이 쇄골 밑에 까진 올 거라 생각했다.
선생님께도 분명 길이는 더 이상 안 자르겠다 했는데 다듬기만 한다고 했는데 자르고 보니 어깨까지 오네..ㅋㅋㅋㅋㅋㅋ
생각보다 짧아졌지만 너무 가볍고 기분이 산뜻하다.
어울리던 말던 나만 시원하면 된 거지
단발의 매력에 빠져버릴 것 같아.
너무 기분 좋다! 머리숱이 많이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굵고 탄탄한 두 묶음이나 나왔다. 꼭 필요한 친구들에게 이쁜 가발로 갔으면 좋겠다.
귀차니즘으로 아직 못 보냈다. 담주에 꼭 보내서 기부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