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차] 참는 일

호두와글 12주차

by 소산공원

불편함을 참는 일

by. 탱


용서를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애써 상대방의 입장을 상황과 입장을 이해하고 또 그것을 정당화하며, 내 마음을 다스린다.

어려웠다. 누구를 용서 한다는 것이,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러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들이..

몇 년 전 일련의 일들로 커다란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가족의 일부와 좋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아직 풀리지 않고 가슴 깊은 곳에 응어리져 있는 그 일들을 잘 잊고 살고 있었다고 생각 했는데.....

한통의 전화로 그 일들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잘 지내고 있었는데, 잘 잊고 있었는데 왜 이렇게 흔들어 놓는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냥 이대로 모르는척 넘어갈지, 아니면 마주할지 마주한다면 불편함은 나의 몪일테지만...

부모님이 만날 것을 ‘부탁’하셨고, 선약이 있음에도 그 약속을 깨고 가기로 했다.

마주한 그분은 내가 본인을 만나러 왔다는 것이 용서를 한다고 생각 하겠지만 내 심정은 아니었다. 진심어린 사과 한마디 없이 무작정 이런 자리를 만든다는 것이 너무 불쾌했다.

부모님의 부탁이었기에 나간 자리이긴 했지만 매우 불편한 자리였다.

불편한 속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고 빨리 자리가 끝나길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 그 불편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은 적막만이 흘렀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모든 상황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나는 나를 위해 용서 하기로 했다. 자주 만날 것은 아닐거란 것을 알고 있고, 훗날 책잡히기 싫어서.

만남을 가지고 이틀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찝찝하고 굉장히 불편하다. 그리고 계속 불편할 것이고..




나는 독서모임을 왜 하나

by. 시내


요즘 두개의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하나는 교회안에서, 다른 하나는 호두구판장 멤버들과. 대략 한달의 텀을 가지고 모임을 하는데 늘 책을 읽는 시점은 모임이 있는 주다. 허겁지겁 책을 읽는다. 더군다나 이번달은 두 모임의 시점이 같은 주간에 있다. 숙제를 쌓아놓고 매번 벼락치기로 위기를 모면하는 학생이 된 것 같다.

성인이 됐는데도 벼락치기가 여전하다는게 조금 당황스럽고, 왜 할일에 할일을 보태며 허둥거리는지 모르겠다. 독서모임의 시작엔 분명 내 흥미도 관여했겠지만 어느정도 타의로 시작했다는 생각도 든다. 타의로 시작했다는 것은 나를 어느정도 강제하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고 받아들여진다. 억지로 버겁게 무언가를 하고 싶었나? 싶으면 왜인지 분한 마음이 차오른다.

그럴때 내가 이것을 타의로 하는게 아니고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다 라는 최면을 거는 방법은, 사실 그 일을 주도적으로 해버리는 일이다. 그래서 허둥지둥 다른 하고 싶은 일들을 미뤄둔채 책을 읽고, 발제문을 쓴다. 심지어 모임에 가서는 신나게 떠드는 것도 나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문득 억울해지는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늘 우선순위를 내어주는게 일상인데, 나 스스로가 아닌 다른이들과의 약속은 나 혼자와의 일보다 우선한다. 결국 내가 나와의 약속을 배신했기에, 다른 이들과의 약속을 핑계삼고 억울해한다. 이렇게 열심히 살고 싶지 않다며. 나의 열심은 다른데 쓰기위해 아껴둔거라고. 엉뚱한데 열 올리고 있는 거라며.

결론은 늘 같다. 내가 하고싶은 일이던 하고싶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내기 위해선 더 열심히 해내야한다. 매번 실패하는 기분이 드는건 구체적이지 못해서 일까? 혼자의 고민이 드러나지 않아서일까? 창작의 영역에 있어서 고민은 나중에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걸 혼자 품고 있는데. 난 품이 작아서 그게 자꾸 비집고 튀어나온다. 구려서 참을수가 없다. 언제까지 다른일들을 변명거리로 삼으며 억울해할까.

심지어 뭐 그렇게 열심히 산다고. 그치만 나 치고는 너무 열심히 사는거 같다. 방구석에서 쓸모없는 일들에 열중하는게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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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을 만난 세계

by.산



지난 주엔 드디어 코로나에 걸렸다. 이틀 앓고 나흘 빈둥거렸다. 격리하는동안 영화 한 편, 책을 한 권 봤는데 우연히 '유언'과 연결되어 있다. 비마이너에서 기획한 책<유언을 만난 세계>와 드니 빌뢰브의 <그을린 사랑>이다.


<유언을 만난 세계>는 8명의 장애해방열사들의 삶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장애를 가진 몸으로 살아있는동안 세상의 바깥에서, 자신의 몸과 해방을 위해 싸우고 뜨겁게 혹은 외롭게 떠난 자리에 놓인 유서다. 그들이 삶이 남긴 것들이 유언일 수 밖에 없는 건 그 삶을 실현하고 이어받는 사람들이 남았기 때문이다.


유서란 죽은 자가 펜을 내려놓았을 때 완성되는 게 아니다. 유서는 산 자들이 그것을 음미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타자가 죽은 자의 의지 속에서 유산의 향방을 해석하려 골몰할 때, 그제야 유서는 단순한 문자의 나열을 넘어선다. 누구나 그렇듯, 죽은 자도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열사들은 산 자들의 응답을 통해, 그 응답에 따라 사후의 삶을 꾸려간다.

_유언을 만난 세계, 오월의 봄


그런데 유언을 이어나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멈추고 읽는 것'이다. 움직이면서 묵념하지 않는 것처럼 일단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 앞에 멈추어 서야한다.


그러나 유서를 읽는다는 건 어느 장소에서나, 어느 때에서나 가능한 게 아니다. 새로운 이미지들로 매 순간 채워지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시대의 유혹에 매 순간 휩쓸려 갈 수밖에 없다면, 과거는 결코 산 자들에게 대화의 장을 열어주지 않는다. 유서와의 마주침은 산 자들이 죽은 자의 흔적이 새겨진 과거 앞에 멈출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어쩌면 모든 애도는 일종의 '멈춤'의 과정을 포함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상실에 대한 고통을 극복하고 계속 삶이 흘러가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산 자들은 우선 그 앞에서 멈춰서야 한다. 아무런 멈춤의 과정없이 되찾은 일상이란 결코 애도의 결과물이 아니다. 살아서 기억될 자격이 없기에 죽어서 망각될 자격도 없는 변방의 존재들이 좀처럼 애도되지 않는 것은, 이 사회가 그들 앞에서 멈출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 세계는, 역사는 더 이상 이대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산 자들은 열사 앞에서 멈춤과 동시에, 이 야만의 시대 자체를 멈출 것을 재촉받는다.

_유언을 만난 세계, 오월의 봄


멈춤을 불러내는 이 유언의 말은, 영화 <그을린 사랑>의 유언과 닮았다. 영화는 엄마가 남긴 유언을 좇아 감춰져 있던 엄마의 삶의 흔적들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영화 마지막이 되서야 그들은 유언의 숙제를 풀게 되며 평생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엄마의 증오와 분노를 이해하게 한다. 마침내 분노의 흐름이 끊어진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너희 이야기의 시작은 약속이란다.

분노의 흐름을 끊어내는 약속.

덕분에 마침내 약속을 지켜냈구나.

흐름은 끊어진 거야.

너희를 달랠 시간을 드디어 갖게 되었어.

자장가를 부르며 위로해줄 시간은

함께 있다는 건 멋진 거란다.

너희를 사랑한다.

_그을린사랑, 드니 빌뢰브


함께 있다는 건 멋진 거란다.


어떤 유언은, 어떤 삶은, 세상을 멈추고 다른 세상을 연다. '다른 세상을 만나는 40일의 순례'를 마친 봄바람 순례단의 출발 선언문엔 이런 글이 있다. "다른 세상을, 그리고 먼저 온 미래를, 지금 여기서 살며 투쟁하는 사람들 속에서 찾고자 한다"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서러운 몸으로도 자신의 고통뿐만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들이다. 미움을 끊고, '나 하나 잘 살면 되지, 나 하나 참으면 되지'라는 생각을 멈추고. 피해자의 몸으로, 억울한 몸으로 싸우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


너무 많은 것을 빚지고 산다. 그 부끄러움 앞에 자꾸 멈춰서게 되는 봄이었다.



노동의 존엄을 찾는 사람들,

차별을 넘어 온전한 나 자신을 찾는 사람들,

인간과 자연의 연결을 회복하려는 사람들,

경제 성장이 아니라 삶의 성숙을 일구는 사람들,

전쟁연습이 아니라 평화를 연습하는 사람들,

기후위기 현장에서 정의로운 전환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투쟁하며 미래를 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고 멈추지 말고 만나 보자고,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고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누가 권력을 잡던, 대리 권력에 우리의 힘을 맡겨 두고 요청하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 각자가 삶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과 힘을 스스로 실천하며 다른 세상을 선언하려 합니다.

_봄바람 순례단 출발 선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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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by.임카


처음 나의 노동력을 팔아 돈을 번 건 언제였나

친구들이랑 엘리베이터 없는 5층 빌라에 한장에 50원짜리 치킨집 전단지를 붙였던가


필요가 생길 때 부모님께 타 쓰거나, 사달라고 해본적은 있지만 한달에 얼마씩 주어지는 '용돈'은 받아본 기억이 없다. 용돈이 당연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삼남매 중 나에게만 해당됐던 이 특별함(?)은 나도 이유를 모르겠다. 부모에게도 유독 손이 덜 가는 녀석이 있겠거니 할 뿐.


수능이 끝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알바를 구하는 것. 마침 천안에 처음 상륙한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알바생을 대거 채용하고 있었다. 당시 3,100원이던 최저시급에서 무려 200원이나 더 쳐주는 그곳은 충성을 바쳐 일하기 좋은 곳이었다. 머슴도 부잣집 머슴을 하라고 했지..

직원은 40프로 할인된 가격에 매장을 이용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5시간을 일해야 먹을수 있는 음식들을 3시간 임금으로 먹을 수 있다니..! 돌이켜보니 그렇게 나의 월급 중 많은 돈이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갔다.... 손님이 많아 한순간도 앉지 못하는 날은 최대치의 연장 근무를 찍었다. 최저임금 따윈 개나 줘버리고 초과근무 수당은 알지도 못하던 시대에 얼마나 행복한 노동이었는지. 한가한 날은 조기퇴근도 시켜주던 참 좋은 곳이었는데.... 아, 이제는 우리는 그것을 '꺽기'라고 부른다(안돼요)


입학과 함께 시작한 청주 생활. 낯선 곳에 적응 한 후 할 일은 다시 알바를 구하는 것. 시급이 안 적혀 있길래 일단 면접을 보러 간 편의점에서는 2,500원을 준다고 했다. 최저임금이 3,480원으로 올랐는데, 너무 적다고 했더니 이 동네는 일 할 학생이 널렸다나. 그래도 천원이나 후려치다니 (당신 정말 양아치....) 3,480원을 주는 곳은 끝내 찾을 수 없어 겨우 3천원대의 자리를 찾아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0대 초반을 먹여살린 편의점, 빵집, 막걸리집, 학원강사, 과외, 영화관, 약국... 마음 속에 수없이 잡혀가던 구김살 만큼은 생활이 피었으면 좋았을텐데.


내가 잔뜩 구겨지며 사는 동안 엄마도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대학에 들어갈 즈음 폭삭 주저앉아버린 집안 때문에 졸지에 가장이 된 엄마에게 가사노동에 임금노동이 더해졌다. 옛날에 부업이나 좀 했었지 밖에 나가 돈을 번 일이 없던 엄마에게는 일터도, 집도 얼마나 커다란 막막함이었을까. 일 경험이 없는 중년의 여성인 엄마는 비슷한 사정의 다른 엄마들이 그러하듯이 '여사님'이라 불리우며, 더 큰 건물과 일터를 전전하며, 집에서 하던 일들을 밖에서도 하며 돈을 벌어야했다. 그사이 나는 졸업을 하고 첫 단체에서 120만원을 받으며 일을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일이니까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해가 바뀌어도 월급은 그대로 였는데, 퇴사를 앞둔 어느 날, 회의에서 내 자리를 채우기 위한 채용공고 얘기가 나왔다. 그래도 150은 줘야 사람이 오지 않겠냐고 했다. 정말 난 월급 같은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는데, 아팠다(언젠간 말할거야...)


엄마는 가끔 쭈뼛거리며, 망설이며 전화를 할 때가 있었다. 이해 안되는 월급을 받았을 때, 용역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갈아치우려 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 때, 다른 일터의 사람들은 다 따로 받는 식대를 엄마와 동료들은 못 받아왔다는걸 알게 됐을 때, 자기 일이 아닌 업무를 요구 당할 때, 일하다 다치고 들어와 산재처리가 안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던 때, 그리고 당일 아침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았을 때. 노동이며 인권이며 떠들고는 있지만, 실은 나와도 가깝지 않았던 규정들을 보고 싸우고 오라며 대본도 써주고, 옆에서 통화 녹음도 하고, 문자도 보내고, 때론 대신 싸우기도 했다. 엄마는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할 때면 우리 딸이 뭐하는지 아냐며 되려 큰소리를 치곤 한다고 했다(엄마 제발...)


적정선의 임금 체계라는 것을 갖춘 일터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학자금을 다 갚고 적금도 붓기 시작했다. 임금의 최저선이 조금 가파르게 올랐던 해, 후리지아 두 단을 사 집에 들어가는 길에 '행복'이라는 말을 떠올린 기억이 선하다.


운이 좋았다. 엄마와 내가 일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더한 꼴을 당하지 않은 것은, 아침에 집을 나섰다 저녁에 온전한 몸으로 집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삶이 최저선을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배부른 소리처럼 느껴져 민망하다.




최저선 조차도 닿을 수 없는 사람들. 보이지 않고, 보여서도 안되는 사람들.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다른 세계를 살아야 하는 사람들. 별안간 일터가 사라진 사람들. 일 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들. '일'이 오늘과 내일을 가르는 삶 속에서 치욕을 견디는 사람들. 엉덩이 한 쪽 붙일 데 없는 일터와, 비닐로 둘러쳐진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돌아가지도 못한 사람들.. '운'에 기대어 살기에는 우리가 딛고 있는 세계는 너무 약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손 본단다. 최저입금을 업종별로 탄력성있게 적용한단다. 원하는 사람은 더 긴 시간 노동할 수 있도록 한단다. 벌써 발밑이 요동친다. 최저선이 일렁이고, 그 아래는 더 아득하다.




20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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