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탱
싸이월드가 복구 되었다.
아마 내 동년배는 싸이월드에 대한 기억이 남다를 것이다.
우스갯 소리로 판도라의 상자일지, 추억 상자일지 까봐야 한다. 라고는 하지만
다시 내 삶에 가장 빛나는 시간을 간직해 둔 싸이월드를 맞이한다는 것은 다시금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시간일테니까.
2022년 5월 4일 밤 10시 34분 싸이월드가 복구되었다는 메시지를 받고 설레임에 사진을 볼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밤새 보느라 잠을 못잘 것 같아서... 그리고
10대와 20대의 나는 어떤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 시절의 나는 어떤 생각들을 하고 지냈었지?
사진첩을 열어보니 고등학교부터 20대 초중반 까지의 사진들이 있었다. 이런 사진들을 찍었었구나, 이런 이야기를 했었구나 하는 생각에 웃기도 하고 때론 지금은 별거 아닌
고민 들을 엄청 심각하게 하는 것들을 보며 마음이 뭉클하곤 했다.(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별거 아닌 것들이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10대, 20대의 나는 힘들었지만 행복해 보였다.
항상 사진 속 나는 웃고 있었고 그 어린 모습에서 보이는 풋풋함이란...
30대 중반이 되고, 사회생활에 찌들어 있는 현재의 나에게 과거의 내가 보내주는 선물 같았다. 과거에도 잘 버텼으니 지금도 잘 버틸 수 있다고 말이다.
무언가를 책임 진다는게 어색했던 철없는 20대(지금도 없지만)를 지나 이제 내가 하는 것들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들이 익숙해진 30대 중반의 지금..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는건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다이어리나 방명록이 복구 되지 않았지만 지금 이걸로도 충분하다.
그때 처럼만 힘내자. 아직 많이 늦지 않았으니까. 뭐라도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
앞으로의 시간들을 사진이나 글이라도 적어서 기록하는 습관을 가져야겠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잘 것 없지만 기억들을 남기는 일들일 테니까.
by. 빈
가정의 달 답게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왔다.
결혼 후 한 가족이 더 생기다보니 쉬는 연휴라기 보다
가족으로써의 역할에 충실한 연휴였다.
정말 가족마다 문화가 다르구나 라는걸 또 한번 느꼈지만생각보다 힘들거나 부담스럽진 않았다.맞춰가는 과정이 아직은 불편할때도 있지만 아직은 좋고
서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마움을 느낀다.
내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아직은 어색해서 실감이 잘 안나는데
요럴때 아 나 결혼했지 싶다.
가족이나 친구나 직장동료나 다 조심해야하는 관계인거 같다.
나는 가족이면 모두 다 이해하고 사랑해야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아닌것 같다. 가족끼리도 배려하고 노력하고 애써야한다.
사실 이번 연휴에 가족관계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는데
생각하기 싫으니까 다음에 해야지
by. 경주박
하고 싶은 것은 많고 시도 하는 것들도 많지만 사실 끝맺음을 잘 못한다.
끝맺음이라기보다는 그냥 오래 하지 못한다.
뭐든 그런 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다.
특히, 재미가 없으면 그 기간은 더 짧아진다.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일까?
세상에 재미없는 것투성인데 참을성이 없어 힘든 중생은
오늘도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 나선다.
문득 그동안 재미없어서 포기한 것들을 생각해보면 사실 너무 많지만 그래도 요즘에 다시 해보려는 것들중에 적어보려고 한다.
첫 번째 헬스
이건 참 재미없다. 무거운 것을 드는 건 충분히 알바에서 많이 해봤다.
철 드는 게 무슨 재미일까 싶고 기를 쓰며 무거운 것을 들고 "아우 잘 먹었다, 맛있다." 하는 그 마음이 도통 이해는 안 간다.
그나마 요즘 집에서 맨몸운동을 하면서 이 부위에 "이런 자극이 가네"
이런 지적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름을 기대하게 된달까?
여름에 윗옷을 벗을 수 있을까? 일단 지금은 비키니가 더 잘 어울리는 몸이다.
두 번째 달리기
이건 좀 애매하지만 걷는 건 좋아한다. 하지만 달리는 건 싫어한다. 숨 차는 게 싫다.
사는 것도 숨찬데 쉬는 순간까지 숨차지고 싶지 않은데 그러다 보니 오래 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요즘 느끼는 건 체력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꾸준히 뛰어보려고 갤럭시워치를 샀다.
가치소비라고나 할까? 장비가 생명이니 앞으로는 잘 뛰어야지
세 번째 블로그
지금 내 블로그는 1달째 휴업중이다. 사실 따숨마켓 이후로 나란 사람이 고장이 났다.
행사 수행 이외에 또 여러 문제들이 생겼고 이 때문에 처리할 수 있는 과업의 하루 총량은 현저히 줄었고 약간의 번아웃과 무기력이 찾아왔다.
그러다 보니 업무 외의 일을 책모임, 영화, 음악 외에는 전혀 즐기고 있지 않다.
블로그도 기록하고 소통하는 게 즐거웠는데 어느새 완벽한걸 올려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에 또 멈춰있다. 글을 올리지 않아도 50명 내외로 들어오는 것을 보며 작은 만족 중이다.
하지만 아무생각이 없었던 1달의 시간이 지나 '또 시작해야지, 무언가를 또 적어야지, 이야기해야지' 이런 생각이 이제 들기 시작해 조만간 시작해볼 예정이다.
그냥 사는 게 시도와 포기 그리고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들의 반복이라고 생각한다.
끝이 미약할 걸 알지만, 또 시작해봐야지
다음편은 의지박약 인간의 꾸준히 하는 것들을 적어 볼게요.
by. 임카
오월엔 꼭 광주에 가려고 한다.
광주에 가면
철이네 친구들도
"먼데 까지 뭘라고 또 왔대"
"오월이라 겸사겸사 왔어요"
철이네 선배도
"요새 젊은 사람들도 잘 아요?"
"더 잘 알아요"
전일빌딩 경비아저씨도
"어서 왔대요"
"천안이요"
하면 "참말로 고맙소"한다.
뭐가 그렇게 고마운지, 자꾸만 고맙다고 한다.
언젠가 어떤 정치인이 망월동에 갔다가 후문 담장을 뜯어내고 도망치듯 광주를 떠난 날, 태극기 앞세운 사람들이 추모행사에 맞불을 놓겠다고 몰려왔던 날이 있다.
저놈들을 무사히 돌려보내다니 광주사람들 참 대인배라고 하자 철이는 그렇게만 볼 것도 아니라고 했었다. 조심하는거라고 했다.
오랜 세월을 편견 속에서, 침묵을 품으면서, 치욕을 견디면서 살아온 서럽고 늠름한 모습이 어째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걸까
왜 그런일을 겪었으니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도지사를 그딴 놈을 뽑는다며 제주도 사람들을 욕하고, 또 어떨땐 광주가 어떻게 그럴수 있냐며 광주 사람들을 탓하던 마음이 민망하다.
생각하면 오히려 미안한 마음인데, 하여간 광주사람들은 자꾸만 알아줘서, 찾아줘서 고맙다고 한다.
“광주 시민들이 ‘폭도’라는 말에 그토록 격분한 것은 바로 그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싸운 존엄한 인간임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동체 차원의 투쟁의 동기는 생명의 보호였다. 광주 시민들의 공동체는 삶과 죽음을 공동체 차원에서 정의했고 광주 시민들은 서로가 모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젊은이들을 지키고, 가족을 지키고, 연약한 아녀자들을 지키고, 어린아이들을 지키고, 광주 땅과 그 땅의 모든 생명을 지키고 사랑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이 공포와 분노와 해방감에서 이루어졌다면 생명을 보호하고 고향을 지키는 투쟁은 냉철한 결의에서 일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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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결코 미친 사람들, 싸움에 중독된 그런 비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은 적들이 진실을 영원히 파괴하지 못하도록, 모든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생매장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명정한 정신으로 그 자리에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투쟁의 진실을 깊은 땅 속으로 감추어 자신들의 몸과 함께 언젠가는 우리 앞에 진실로서 부활할 수 있도록 화석으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호두북클럽의 5월 모임책, 《오월의 사회과학》
by.산
6월까지 기다릴 수 없어 2022년 상반기 결산!
1-2월을 새해로 인정하기엔 마음에 준비가 안 되어있고, 4월이 올 때까지는 뭔가 새로운 마음을 가질락말락. 그러다가 5월이 되면 어? 벌써 5월이야? 하면서 한 해를 시작하는 느낌이 본격적으로 든달까. 그래서 이 시기는 까먹기 십상이기에 2022년 상반기 키워드 결산!
#조르바
조르바가 아프기 시작하고 매일매일 일기를 썼다. 다행스럽게도 그 일주일의 시간과 감정들이 잘 기록되어있다. 조르바 사진도 온갖 드라이브와 SNS에 잔뜩있어서 매일매일 과거 사진으로 올라온다. 이렇게 기록이 넘치는 시대에 없다는 건 대체 뭘까. 이 지구에서 다른 별로 조르바를 빌려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조르바가 가르쳐준 사랑, 조르바가 가르쳐준 슬픔이 내 몸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나저나 봄이 훌쩍 지나가고 있는데 아직도 조르바의 유골을 나무에 뿌려주지 못했다. 이러다 뼈까지 썩혀버리겠네!
#활동
여성의 날 행사-세월호 슬픈날기쁜날-봄바람길동무-혁명할머니의 밤까지. 어쩌다보니 한 달에 한 번꼴로 행사들을 기획하거나 연대현장에 가게 되었다. 항상 별 고민없이, 작은 규모라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일단 일을 벌이고 마는데, 그래도 아주 쪼오끔씩 새로운 혁명 동지들을 만날 때마다 정말 기쁘다! 여전히 서툴지만 호두즈 친구들하고 책고 글 쓰는 연습을 하는 것도 무우척 좋고 자랑스럽다.
이래저래 애매해서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여겨본 적이 없지만, 지역에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졌을 때 시간과 몸을 축내서 일을 만들거나 참견해왔다. 참을 수가 없어서, 혹은 재미있어서. 나는 프로(?)활동가가 아니니까 할 수 있는만큼만 한다는 마음으로 해왔다면 요새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설명할 수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과하게 의미부여하자는 게 아니라, '아유 저 그럼 사람아니에요' 하면서 발 빼는 모습이 어느 순간 꼴보기 싫다고 느껴졌달가. 내가 가진 힘을 인식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 정도는 또렷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 사장
어쩌다 사과나무 대표가 되었다. 올 초부터 계약을 핑계로 대표자 변경 얘기가 시작되었고 이런저런 소란스러운 시간을 보내다가 3월에 사과나무를 법인화하고 사장님을 훨훨 날려보내주었다.... 직원으로 월급받던 호시절이 그립다, 라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사과나무는 정말이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그래도 새로 정돈하게 될 점 하나를 찍어둔 느낌. 운영에서 우리 몫으로 두지 않았던 것들을 시내와 챙겨 하고 있다. 좋은 것은 '저 대표아니에요'라는 소리를 이제 안해도 된다는거랑, '대표님 바꿔주세요', '전데요' 하는 일 정도이려나. 시내랑 같이 있으니까 별 부담은 없지만 자꾸 욕심이 생긴다. 잘 된 일인가. 일 하는 사람도 더 있었으면 좋겠고, 그니까 돈 욕심, 일 욕심도 생긴다. 일할 동기는 자꾸 늘어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 회사로, 좋은 일들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 그런건 어디서 배우는거지.
#돌봄
천안에서 출퇴근을 할 때는 그래도 기본적인 집안일들을 꽤 성실히 했는데, 안성으로 이사를 오고난 후에는 그마저도 다 놓아버렸다. 청소기도 잘 안 돌리고 설거지도 바로바로 안하게 된다. 특히 건조기가 생기고 더 게을러졌다. 일을 많이 벌려놔서 집에서도 일을 하게 되고, 그러고보니 제일 먼저 포기하게 되는 것이 살림과 돌봄, 환대라는 걸 알게 됐다. 작년에 겨우 빼놓았던 살도 다시 찌고 운동도 안하게 된다. 일!! 이까짓게 뭐라고 나의 소중한 살림과 공부의 시간, 환대의 시간을 미루는가!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공룡의 친구들을 떠올린다. 이 사람들은 정말 말도 안되게 바쁜 사람들 같은데, 그 와중에도 환대의 시간, 살림의 시간을 놓지 않는다. 일과 환대를 공평하게 나눈다.
책방을 운영할 때 돈을 벌어야하니까 디자인 외주가 거의 주업이었다. 집중이 필요한 작업을 한참 하고 있을 때, 손님이 오는 종소리가 울리는 것이 진짜 끔찍하게 싫었다. 그 혼란스러운 감정이 오래도록 남아있어서 언제나 바빠질 때마다 그런 시간들이 올까봐 경계를 하게 된다. 바빠도 가볍게 산책해야지. 밥을 지어야지. 친구
들의 안부를 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