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주차) 꿈이라서 다행이다

by 소산공원

꿈이라서 다행이다

by.산


꿈에서 나는 버스를 운전한다. 익숙하고도 낯선 골목을 쫓기며 헤매다, 버스를 하나 발견한다. 형체는 보이지 않지만 그게 버스라는 것만 알고 올라탄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가 운전을 해야한다는 걸 안다. 버스엔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몇 타고 있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별로 상관이 없다. 나는 2종 오토인데, 버스는 스틱이다. '대형면허가 없는데 괜찮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운전석을 찾는다. 운전석은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앞 유리창에 아주 가까이 있다. 장난감 같은 버튼이 많고 조그마한 핸들이 달렸다. 내 몸을 구겨 넣으면 앉을 수 있을 것도 같다. 나머지 하나는 유리창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는 보통의 운전석이다. 나는 고민하다가 보통의 운전석에 앉는다. 자리에 앉으니 막상 몸에 맞지 않는다. 발을 길게 뻗어야 발가락 끝에 겨우 페달이 밟힌다. 스틱은 왜인지 천장 높이 달려있다. 나는 온 몸을 길게 늘린 채로 운전한다. 버스에 비해 내가 키가 작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태영이한테 스틱을 배워두길 잘했지.' 짧은 기억을 더듬고 어설프게 운전을 해낸다. 누가 나 대신 운전을 한다고 할까봐 경계한다. 좁은 골목을 온통 헤집으며 다니는데 버스의 공간감을 가늠할 수가 없다. 반드시 옆 차에, 간판에, 자전거에 부딪쳤을거라고 확신한다. 어딘가 부딪친 것 같은데 충격은 직접 닿지 않는다. 뒤에 앉는 몇 명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안전하기를 바라면서 차는 어딘가에 도착한다. 종착지는 골목 안의 허름한 가게 앞. 내리고 보니 내가 몰아 온 버스는 유치원 버스 같은 작은 것. 그제서야 장난감같은 조그마한 운전석을 이해하면서 꿈에서 깬다.


오늘 아침의 꿈이다. 기록을 하다보니 처음 꾼 꿈이 아니란 게 느껴진다. 꿈에서 나는 자주 불안하다. 반복적으로 꾸는 꿈들의 대부분의 레파토리는 신체의 무언가가 몸을 빠져나가는 감각과 관련있다. 이가 한 개씩 빠지다 못해 후두둑 뱉어내는 꿈. 이를 핥고 밀어내는 혀의 감각들이 너무 생생해서 '꿈일거야 걱정마' 하며 깨었났는데, 또 이가 빠지면서 '현실이구나' 하며 괴로워하는 꿈. 꿈인지 아닌지 분별하려하는 불안한 마음. 목에 머리카락이 걸려서 하나를 길어 올렸는데 줄줄이 머리카락이 매생이처럼 걸려 올라오는 느낌. 목에 머리카락의 결이 한올한올 고스란히 감각되며 식도와 연결된 내장들이 머리카락을 따라 올라올까봐 불안한 꿈.


꿈에서 갓 깨어나면 몸에 오소소한 감각들이 남아 있다. 팔을 쓰다듬으며 꿈에서 느낀 감정들을 되내인다. 그게 꿈이라서. 꿈에서 나는 괴로워서 안심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숨긴 것들을, 적어도 나는 나에게 들키고 있구나.


사는 건 다 그렇지 않나. 그런 말을 할 때 나는 무기력하고 씩씩하다. 그 말 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지 않나. 말들을 꿀꺽 삼키면 목구멍에 개미굴만한 구멍들이 집을 짓는다. 진짜 하고 싶은 말들은 어딘가에 툭하고 숨어버리고, 그 길을 꿈에 함부로 맡긴다. 그러면 가끔 꿈에서 후드득. 목구멍을 따라 끄집어내면서. 꿈이 나를 지킨다. 꿈의 나는 분하고 두렵고 억울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마음들을 꿈이라고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 편으로는,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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