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몽골여행을 기다리는 것으로 버텨보려 했지만, 여름은 너무 길지.
일을 아예 빼는 것은 부담스럽고 바다에 오래 머물고 싶어서 사과나무 식구들과 워케이션을 가기로 했다.
사과나무&객식구와 게스트까지 함께 입을 단체티까지 맞추고 강릉 사천진에서 3박 4일.
워케이션을 일주일정도 앞두고, '일이 너무 적다'는 글을 올렸는데 그 때부터 갑자기 물 밀듯 일이 들어왔다. 결국 워케이션 기간 안에 마감 해야 할 몇 가지 일들을 업은 채로 강릉으로.
강원도 날씨는 터널 하나만 지나도 급격하게 변한다. 뭉게뭉게 구름 핀 날씨에서 대관령부근의 터널하나를 지나니까 안개가 자욱. 산등성이를 하나 넘자 멀리 파란 하늘과 바다 레이어가 보인다. 오랜만에 강릉!
첫 날은 가혜가 추천한 장칼국수를 먹고 숙소 체크인을 기다릴겸 바다로.
만오천원 주고 그늘을 샀다. 파도가 엄청난 모래 경사를 만들어냈다. 제주며 강원이며 해수면이 점점 높아지고 모래사장이 줄어드는 것이 눈에 보인다고 한다. 기후위기는 이제 너무 일상. 이렇게 바다에 올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으려나.
아무튼 파도에 발만 담그려고 했는데 물이 닿으니 참을 수가 없었지. 역시나 옷을 적시고야 말았다.
내향형 사람들이 모여있어 텐션이 끓지 않는 요상시러운 밤. 시내가 제안한 휴대폰 게임을 하고. 선물하려고 챙겨간 실팔찌 만들기로 모두를 괴롭게 만들어버렸다.
다음날은 사랑하는 제주해인식당에서 물회를 먹었다. 미역국이 맛있고 국수를 무한리필해줘서 좋아하는 식당. 어제보다 파도가 잦아들어서 바다에 들어가기로 했다. 게스트와 사장님이 집으로 돌아가야해서 많이많이많이 아쉬웠다만. 짧은 시간동안 물에서 즐겁게 놀았다.
사장님과 객식구, 게스트는 마중으로 떠나고 시내랑 둘이 물놀이를 했다. 동해는 파도가 많아서 튜브만 타고 있어도 재밌다. 서핑을 하고 싶었다. 출출해져서 바다에서 짜장면을 시켜먹었다. 맛보다는 해변 앞에서 먹는 짜장면의 무드가 좋았다.
저녁엔 돌아온 게스트와 함께 전날 봐둔 펍에 갔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 예거가 들어간 칵테일을 먹었다. 열이 오르면서 컨디션이 조금씩 좋아졌다. 마지막에 시킨 그렌피딕15년을 조금씩 애껴먹었다. 혼자있었으면 홀랑 먹어버렸을텐데! 아껴먹을 줄 아는 사람이 옆에 있어서 따라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노래들을 신청해 듣고. 망상망상했던 밤.
에어비앤비로 빌린 주택에서 4일을 묵었는데 사방에 창이 있어 에어컨을 한번도 틀지 않아도 시원했다. 창문을 열어두고 자면 서늘하기까지 했다. 다만 5시만 되면 닭이 울고, 앞집의 검은 개가 하울링을 해댔다. 새벽에 계속 잠에 깼다. 일어난 김에 틈틈히 일을 하기도 했다.
게스트가 아침마다 커피를 내려주고 달걀후라이를 해줬다. 오전은 일을 하며 보냈다. 다행히 급하게 수정해야하는 일들이 아니라 오전과 밤에 일을 하고 낮에는 충분히 휴가를 즐겼다.
전 날 들렀던 펍이 서핑보드도 빌려주고 낮엔 커피도 파는 곳이라 시내는 거기에서 일을 하고 나는 패들보드를 빌려 혼자 바다에 나갔다. 왜인지 바다에 사람이 없어, 외롭고 고독했다. 일어나서 슉슉 노를 젓는 것이 당연히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밸런스보드 위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몇 번 시도를 하다 물에 빠졌는데 혼자 물에 빠지는 건 무서운 일이었다. 뭍 근처에서 몇 번 시도를 했지만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 대신 처음에 탔을 때보다 겁이 좀 덜나고 덜 고독해져서 멀리멀리 나갔다. 바다 위에서 약간 심심함을 느끼며 진짜 좋은 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에서 혼자 있는, 심심한 휴가라니.
2시간 패들보드를 타고 부리나케 씻고 시내에 있는 편집샵에 들렀다. 알고보니 강릉에 예쁜 가게들이 많았잖아! 그렇지만 다들 6시에 닫는다 하여 교동짬뽕을 먹고 예쁜 골목을 산책하고 돌아왔다.
우영우 본방도 챙겨봤다. 같이 보는 로맨스 장면을 보는 것이 꽤 즐거워 함께 영화를 보기로 했다. 게스트가 정말정말 재미있는 영화라며 추천한 '럭키'를 보았다. 용기가 대단한... 추천이었다. 시내가 재미있는 순간을 기다리고 참으며 영화를 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좀 예를 갖추려 웃었다. 게스트는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보였다. 이 후로 우리는 조금 더 편안해졌다.
다음날도 오전에 일을 하고 짐을 챙겨 나왔다. 이렇게 4일이 빨리 지나가다니.
자전거를 빌려 경포호를 한 바퀴 돌았다. 우연히 보게 된 연꽃이 정말 환상적! 아름답고 완벽한 꽃이다. 연자가 아직 드글드글하게 익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다소 사치롭지만 여행마무리로 일식 덮밥을 먹었다. 강원도에 와서 첫 먹는 회였다. 막상 먹으니 돈을 얼마를 더 내도 좋을 맛이었다. 웅이에게 한 입 먹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웅이 어멈)
가로수가 예쁜 골목에 있는 소품샵에 들러 굉장히 절제한 쇼핑을 해냈다. 집에 데려가고 싶은 그릇들이 수두룩했지만 잘 참았다. 위스키를 담으면 딱 좋을 초록색 받침을 가진 유리컵 하나를 데려왔다. 이제 위스키만 사면 돼!
허름하지만 자부심이 흐르던 커피집에 들러 진한 커피를 마시고 헤어졌다. 어제 럭키를 추천했던 용기있는 게스트는 오늘은 자신의 흑역사 아이디까지 밝혔다. 결국 더욱 가까워진 채로 헤어졌다. 게스트는 양양을 넘어 서울로, 시내와 나는 대관령 옛길을 넘어 집으로. 대관령은 옛길을 구불구불 올라갈수록 안개가 자욱해지더니 마침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에 빠져버렸다. 정훈희의 안개를 들으며, 고갯길 드라이브.
붕괴이전으로 돌아가요. 휴가 이전으로 돌아가요 우리.
역시나 집 근처에 오면서 '조르바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새 집 주차장에 들어가며 습관처럼 이 생각을 한다. 문제다. 여행 내내 갑자기 알러지 비염이 올라와 재채기와 콧물을 달고 다녔는데, 집에 오니 감당할 수 없는 콧물과 재채기가. 편하게 앓을 수 있어 좋았다. 데려온 컵에 안동소주를 따라 먹고 오랜만에 푸욱 잠을 잤다.
일기가 밀려 급한 마음에 일정만 빼곡하게 적어낸 초딩같은 일기가 되었네.
다음엔 여행노트 한 권은 꼭 챙겨가야겠다.
강릉에 있는 동안 시내에 잠깐 나갔다 들어오는 길에 바다가 보이면 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돌아서면 그리운 바다. 여름에 바다에서 오래 지낼 수 있도록 좀 본격적인 상상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