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들의 이야기_8.17-29

by 소산공원


뜨끈한 물로 씻고 침대에 눕기만 했는데도 사막에 쏠려들어가듯 잠이 들었다. 그 느낌이 너무 생생해 깜짝깜짝 깨기도 했다. 웅이는 내가 침대 위에 슬픔을 놓아두고 간 것 마냥, 조금 삐져있다. 호옹이는 살이 조금 더 붙었고 니나는 내가 없는 내내 주변을 경계했다고 하는데 돌아오니 발 밑에서 편하게 잔다. 이제는 조르바가 집에 없어도 슬프지 않기로 했다.

도시로 돌아온 마지막 날에 톨강에서 짧은 산책을 하면서 조르바의 사진을 슬쩍 놓아주었다. 그러고 강에서 실연한 사람처럼 혼자 시원하게 울어버렸다. 몽골에 조르바의 일부를 두고 왔으니 조르바를 그리워하는 심정으로 몽골을 기다릴 수도 있겠다. 좋은 마무리. 좋은 인사.


전 날 밤은 듣고 싶었던 음악을 실컷 들었다. 몽골에서 유일한 아쉬움은 때에 따라 어울리는 노래들을 듣지 못한 것이었다. 순간마다 생각났던 음악들을 나누며 보드카와 맥주를 아쉬움 없이 마셨다. 그리고 충분히 웃었다. 다 웃으세요. 다 웃고 나가세요. 이 다정한 순간들을 어찌 지나칠 수 있을까.


마지막 날 숙소는 첫 날 묵어던 곳과 같았다. 첫 날 아침 게르문을 열었을 때 펼쳐진 초록언덕, 안개, 자작나무숲이 전해줬던 두근거림을 다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짧은 산책을 하려 자작나무 숲으로 걸어갔다. 사막을 함께 갔던 신발이라 그런지 씩씩하게 잘 올라가주었다. 자작나무의 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눈 앞에 보이는 것들을 완벽하게 가리는 몇 번의 구름이 지나가고 처음 듣는 새 소리를 듣고. 가까이 말이 풀을 뜯으러 왔다. 그리고 마침내 공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선 우연히 숲 해설가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몽골에서 많이 만났던 풀들의 이름을 돌아오는 길에 배웠다. 다음에 만나면 이름을 알려주고, 불러주어야지.


공항에서 사람들과 헤어지고 공항버스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택시를 기다리던 여행식구들을 다시 만났는데 그 짧은 사이에도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찔끔났다. 나 정말 많이 울겠구나 큰일났다!


전에는 여행에서 돌아오면 마주하는 도시가 끔찍했는데 왜인지 돌아오는 길에 슬쩍 보였던 바다와 나무와 숲이 고맙게 느껴졌다. 동네의 뒷산도, 아직 땅이 드러난 벌판도, 주변의 높은 산도 맥도 줄기도. 오래전부터 이 곳을 지켜온 것들이겠다. 별 다를게 없는 태곳적 모습일지도 모르는구나.


사랑할 것들이 곁에 투성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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