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것과 잃지 않은 것_8.17-29

by 소산공원

1.

여행 후에 일상을 회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아하는 공간에 가는거다. PCR검사 결과를 받고 바로 도서관에 가 책모임에 필요한 책을 빌렸다. 여행 가기 일주일 전에 잃었던 카드가 하나 있었는데 도서관 카페에 물어보니 태연하게 찾아주신다. 내 그럴줄 알았지.


이번 여행엔 묘하게 잃어버린 물건이 하나도 없다. 비록 공항버스에서 좋아하는 남방 하나를 두고 내렸지만 공항버스는 아직 여행이라고 할 수 없지 않나. 오히려 가는 순간부터 물건이 사라져 바싹 긴장한 탓에 수시로 중요한 물건들을 체크했다. 이쯤되면 잃어버려도 좋지 않나 싶은 순간에 피어싱 하나가 어딘가로 빠져 사라졌다. 지금까지 잘 지켜주어 고맙다는 선물(?)로 주고 싶었는데 집에 와보니 그것마저도 가방 안에 있다. 어색하고 곤란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를 완벽하게 챙겼냐면 그것 또 아니다. 체크인 하던 카운터엔 여권와 티켓을 받지 않은 채 나왔고, 계산 후 카드를 놓고 온 것도 두어 번. 산에 올라가는 길에 더워 접어두고 덜렁덜렁 두고 온 패딩을 호철이 주워 올라와주었고, 술방에 두고 온 컵은 몽몽이 챙겨주었고 텐트 밑에 깔려있던 머플러가 누군가에 손에 의해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내가 되찾은 것은 작은 것에 불과하다.

동훈가족은 공항에 두고 온 커다란 캐리어를 오랜 길을 떠나 찾아냈고, 강은이 수선스럽게 잃어버린 휴대폰은 알고보니 겨우 다른 차에 있었고, 초원 한가운데 떨어진 만쉪의 핸드폰을 찾아 원정을 떠나기도 했다. GPS좌표와 많은 사람의 지혜로 길 한복판에 떨어진 핸드폰을 찾아낼 때의 순간은 오랜 안주거리가 될 것 같다. 사람들의 여정의 안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어디갔지"와 "찾았다"였다. 무료한 푸르공 안에서 물건을 뒤적였고, 매일 가득찬 짐을 풀고 헤치며 잃어버린 자신의 물건들을 다른 이의 손으로 찾아냈다. 모두가 무언가를 잃거나 잃지 않거나 찾거나 놓아주고 돌아왔다.



2.

여정 중에 현지인의 게르에서 키운 양을 전통의 방식으로 직접 도축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가기 직전까지도 고민을 하다가 결국 그 과정을 지켜보게 되었다. 양을 잡는 남성의 손을, 꺼낸 내장을 다듬는 여성의 손을,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 칼을쥔 소년의 손을 자꾸만 쳐다보게 되었다. 평소엔 잔인하고 징그러운 것을 조금도 보지못해 당연히 못 볼거라 생각했는데 잔인하단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이건 고마운 일이구나. 그동안 내가 모르고 있던 것, 잃었던 것은 이런 고마움의 순간이었구나. 이 손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들은 아직 턱없이 옅구나. 대신 게르에 모여 잡은 양의 고기를 먹기 전 자연스럽게 기도를 했다. 몽골에 다녀온 후로 얻은 것은 이런 고마움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다 도시로 돌아가는 길엔 겹겹히 양들을 쌓아올린 트럭을 보았다. 어떤 지지대도 별로 없이 양 머리 위에 판자를 올리고 또 한번 양을 쌓아올려 3층을 만들어냈다. 우연히 길에서 만나 눈을 질끈 감아버렸는데 우리가 들른 레스토랑에 차를 오래 세워두고 과적된 양들을 위 아래로 옮기는 작업을 오랜동안 했다. 잠깐 전까지만 해도 유목민의 양은 감사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유목의 과정에서도 반드시 저런 종류의 희생은 따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안성과 천안을 오가는 길에서 수도없이 마주쳤던 그 트럭들이 유독 아팠다. 몽골의 양들을 제대로 울지도 않던데. 이 순간에 내가 잃은 건 잃어야했던 건 뭐였나.


3.

도서관에서 나와, 집에 돌아온 후 여행 짐도 푸는 김에 대청소도 했다. 며칠 쌓인 주방의 설거지를 정리하면서 물건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물건과 일상들을 조금은 잃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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