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벽 꿈에 조르바가 나왔다. 조르바가 떠난 후 처음이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무언가가 고장났다고 고치러 가야한다고 한다. 그 위치를 알려달라고 하자 자연스럽게 조르바가 앞장서 가더니 까만 잿무더기 같은 곳에 날 데려간 후 한참을 쳐다본다. 이내 내가 왔는지 뒤돌아 확인하고 짧게 운다. 그런 조르바가 기특해서 한참을 보다가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어 옆에 있는 다민에게 너도 조르바가 보이냐고 묻는다. 조르바는 몸을 많이 접어 날 쳐다본다. 그런 조르바를 두어번 만지다가 문득 드디어 조르바가 꿈에 나왔다는 걸 알게 된다. 이건 꿈이구나 깨지않아야할텐데 하며 울다가. 조르바를 한 번 더 만지려할 때 흐느끼면서 잠에서 깬다. 한동안 울음이 달래지지 않았다. 조르바가 잘 도착했다고 인사하러 와준걸까. 그렇게 믿기로 한다.
2.
나는 운명같은 걸 잘 믿지 않는 편, 것보다 누가 무슨 말을 아무리 해주어도 잘 기억해내지 못하는 편인데 작년에 연꽃님이 봐준 사주는 일상 매순간에 주렁주렁 걸려있다. 2022년은 대운이 바뀌는 해라고. 나에게 큰 변화가 있을거라고. 달라질거라고.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어떤 사건 앞에 서게 될 때 이것이 그 계시인가?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인가? 하는 태도로 운명을 견줘왔다. 어제 조르바가 꿈에 나온 이후로. 고마운 눈빛으로 잘 지내고 오겠다는 그 느낌을 이제는 그냥 믿기로 했다. 이미 많은 것이 변하고 있었구나, 나는 이 변화를 부드럽게 사랑해야하는구나.
3.
내 여행의 징크스는 언제나 생리였다. 바다를 보러 간 사이판에 도착하자마자 몇 개월만에 생리가 터졌고 몇 번이고 여행이 시작되면 갑작스럽게 자궁이 배신을 했다. 역시나 몽골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질까봐 한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어려운 여행 코스를 마치고 도시로 들어오자마자 생리가 터졌다. 초원에서, 물을 쓰기 어려운 길에서 생리를 했으면 어쨌을까. 비로소 내 몸이 나를 용서해준 기분이 들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조금씩은 피곤했지만 몸이 씩씩하게 견뎌주었다. 경사진 산을 바람을 타는 듯 오르고, 사막에서도 한 걸음 더 단단하게 딛었다. 첫 여행빨인지도 모르겠지만 내 일을 끝내고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들만큼의 체력이 남았다. 그동안의 살림력으로 도구와 짐들을 함께 꾸렸다.
4.
나는 오래 나를 미워했다. 말하지 못했지만 고양이를 지키지 못한 나를, 내 몸을 소홀히 대한 나를 일상적으로 혐오했다. 그런데 몽골을 지나오니 나를 조금 용서한 기분이 든다.
조르바는 나를 미워하지 않을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인사를 전해주러 왔겠구나. 나를 원망하지 않겠구나. 내 몸도, 내 일상도 꽤 단단히 살아내왔구나. 자주 걷고, 자주 살피던 내가 이곳에서 남들을 도울 수 있었구나.
힘든 여정 안에서도 발 밑을 보는 나를. 물과 풀과 나무를 사랑하는 나를. 일상의 힘으로 씩씩하게 여행한 나를. 조금은 봐줘도 괜찮겠구나. 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에 내 운명을 쏟아내어도 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