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thing in the rain -09.05

by 소산공원

몽골에서 왜인지 계속 박정대 시인의 시가 생각났는데

박정대, 몽골을 검색하니 과연 몽골하고 관련된 시가 있다.


그대는 암사슴... 부터 보기 싫어지긴 하지만. 아무튼 돌멩이 이야기가 좋다네.

말로 몸으로 표현하는게 아니라 둥굴둥굴 오래 고른 돌멩이. 후후...



늑대 사냥꾼


박정대


옛날, 글자가 없던 시절에 사람들은 돌멩이 편지를 보냈다고 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돌멩이 하나를 골라 상대편에게 주면

그걸 받은 사람은 돌멩이의 생김새, 색깔, 만질 때의 느낌에 따라 보내온 사람의 마음을 짐작했겠지

그리고 다른 돌멩이를 주워 답신을 보냈지

몇날 며칠 그 돌멩이 편지를 어루만졌을 마음이 손바닥의 체온보다도 더 따스하고 눈물겹지

애틋하다는 것은 갸륵한 것이 아니고 거룩한 것

몽골에 가면 그대는 암사슴같고 나는 늑대 같겠지, 후후

내가 그대에게 돌멩이 편지를 보내자 그대는 나에게 무를 보내왔지

그대에게 돌멩이 편지를 보내면서 내가 간절히 바라던 답신은 무엇이었을까

간절한 것은 외려 말할 수가 없지

어쩌면 그냥 그대 손을 잡고 살아 있는 동안 몽골 홉스골 호수에 가고 싶었는지도 몰라

홉스골 호숫가에 작은 천막을 쳐놓고 낮에는 나무 그늘 아래서 바람의 노래를 듣고

밤에는 등불 아래서 별빛의 문장을 읽으며 삶이라는 한 계절을 그대와 함께 보내고 싶었는지도 몰라

나는 지금 그대가 보내온 무 한 조각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지

무가 물이 되어 내 안에 갸륵한 홉스골 하나 이루려면 또 오랜 시간이 흘러가야겠지

아무것도 없는 무 아래 호수 하나 생기려면 또다시 오랜 세월이 홀로 흘러와 고여야겠지

그러니 그대여, 돌멩이를 읽어줘

그것이 지금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문장이야


그리고 그대여, 읽은 돌멩이를 다시 나에게 보내줘

그게 아마 내가 그토록 바라던 답신이었을 게야

後後(후후), 몽골에 가면 아마 그 곳 사람들은 그대는 암사슴 같고 나는 늑대 같다고 말할 거야



한번 더 읽고 나니 격렬히 느끼해졌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가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좋아하는 영화들은 전부 사랑할 때 망가지고 마는 이야기들이다. 혐오스런 마츠코나 조제 호랑이나 렛미인 같은... 사랑 때문에 망가지거나 최악의 인간이 되거는 이야기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인물들.

엊그제 리뷰를 찾다가 만난 수전손택 글처럼 사랑에 주어지는 가치와 기대, 수많은 수식어들과 실제 겪는 사랑은 너무도 다르다는 것.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밖에 있을 때, 불가능보다 더 멀리 가보게 될 때, 어쩔 수 없을 때. 그런 걸 나는 왜 사랑이라고 생각할까나.


12_03_02__630594e6ab823[W578-].jpg 이 장면 너무너무너무 좋아.....



수전 손택의 말


제가 사랑이라는 주제에 매료되는 지점은,

사랑에 부과된 모든 문화적 기대들과 가치들이

실제 사랑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여하튼 내 스스로를 지탱하는 삶의 단어를 '어쩔 수 없음'으로 여긴다. 일상은 대체로 즐겁고 풍요롭고 꽤나 행복하지만, 그게 어쩔 수 없음을 이겨내진 못하는 것 같다. 그러면 지겨움을 감당해낼 힘이 없어지니까. 바닥일 때 짚고 일어날 말이 없어지니까.


사막 앞에 있는 물이 퐁퐁 솟아나는 샘에 갔을 때 바로 떠오르는 단어도 어쩔 수 없음이었다. 이렇게 바로 앞에 물이 솟아나도 사막은 끝없이 사막이겠구나. 감당할 수 없이 건조한, 커다란. 결국에 물을 마르게 할 커다란 모래 때문에 아무리 샘 앞에서 박수를 쳐대도 어쩔 수가 없겠구나. 그러니까 둥글동글 솟아다는 물들이 어찌나 사랑스러워보이는지.


KakaoTalk_20220905_213001938_03.jpg 물 사진 없고 사막 앞 초원에서 말 사진 찍는 대장님....



오전까지는 비가 적게 오다가 미팅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비가 쏟아진다. 냉장고에 먹을 게 없지만 너무 장보기 싫어서 집에 그냥 들어왔다. 이제는 단 하나 남은 호박으로 호박전을 부쳐먹었다. 호박전엔 와인이 잘 맞는다. 참, 좀 있으면 세븐일레븐에서 디아블로 2개 2만원 행사를 한단다. 전국 세븐일레븐아 기다려..


KakaoTalk_20220905_213051673.jpg


아, 요샌 나의 페이스북을 자주 염탐하는데 생각보다 글들이 괜찮아서 깜짝 놀란다. 음... 내가 이런 글을...?

괜찮은 것들을 찾다가 비슷한 생각의 글 발견. 싸이월드 시절부터 일기나 페북, 인스타 메모들을 그러모아 언젠가는. 언젠가는 정리를 해볼 수 있지도 않을까하는 그런 부지런한 생각을 해본다.




1.

긴~~ 연휴동안 가족여행을 다녀오고 청춘시대를 정주행했다.

단순하게, 누구나 부러워하는 젊고 예쁜 청년들이 동료의 눈으로 서로의 이면을 발견하는 이야기.

우리는 내보이고 싶은 낯의 정면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체적으로 서로를 드러내며, 혹은 발견하며 살아간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관심을 가지고 사람의 온갖 면을 두루 살피는 것과

그가 내보이고 싶어하는 정면을 이해하는 일이다.


깊어진다는 것은 내가 살필 수 있는 측면을 두텁게 만드는 것,

넓어진다는 것은 그의 좁은 정면을 이해하는 것일까.

오래오래, 그 사연들의 둘레를 재고 싶다.



2.

비슷한 맥락으로.

갑을 밥상연대에 다녀오고,

시 모임에서 최초의 기억에 관한 글을 쓰면서 느낀

요새의 화두.

어른은 무력감으로 자란다.

무력은 나의 가장 두터운 측면이고

정면을 좁게 만든다.


열심히 산다는건

수치스럽고 뻔뻔하고 아름답지도 않은 삶의 허무를

씩씩하게 잘 견뎌내는 것이다.


3.

나는 대부분 여러가지 감정을 동시에 표현한다.

‘어쩔 수 없지’는 말버릇이다.

나는 나의 좁은 정면이 두렵고

나의 무력이 두렵다.


2016.09




올해 청춘시대2를 다시 봤는데, 처음 봤을 때 안 보이던 게 보인다. 청춘시대 2를 관통하는 주된 주제는 '내가 모르는 나' 인데.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올해 초반에 주로 했던 생각이기 때문에 언젠간 적어보아야지. 아닐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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