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산책을 하고 돌아와선 별안간 앓았다. 낼 동생들이랑 나눠먹을 고추장찌개를 겨우 끓이고 일찍 누워서 끙끙 선잠을 잤다. 땀을 잔뜩 흘리고나니 모처럼 개운하게 새벽에 깨어버렸네 큰일이다.
몽골에서 돌아와서 해야할 일들이 많기에 얼른얼른 일상감을 회복하려 애썼는데 조금 탈이 났나보다. 명절엔 저고리가에서 푹 쉬어야지....
다행히 일이 좀 일찍 끝나 같이 저녁을 먹고 업성저수지 길을 산책했다. 매일 퇴근하면서 걷고 싶다고 생각한 길이었는데 오늘 딱 좋은 시간에 좋은 산책을 했다. 새가 많았고 달이 두 개씩 보이는 공원이었다.
어쩌다보니 대화주제는 연애와 사랑이었는데, 그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나누나. 사랑은 조금은 알겠는데 그럼 연애는 뭐지.
-좋아하는 것을 보면 나누고 싶은 것?
-좋은 친구들을 보면 그런 마음이 드는데요. 저는 독일에서 항상 언니 생각을 했어요.
-내 마음씀을 걱정하는 것? 다른 사람에게 응답받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것?
-저는 언니한테 전화할 때 혹시 언니가 싫어할까봐 걱정했어요.
-만지고 싶은 것? 그건 아니다. 안 만져도 좋은 관계가 있더라.
-저는 독일에서 z를....
-내 몸과 마음과 시간을 쓰는 것? 애쓰는 것?
-그건 친구들하고도 그러는데...
이런 식에 질문과 대답들이 퀴즈처럼 이어졌다. 대체 연애가 뭐지?
그렇지만 나에게 연애는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선명한 카테고리로 존재하는, 그 자체였다. 그니까 연애란 카테고리는 처음부터 존재했고 사람을 그 안에 당연히 끼워맞추는 방식이었다. 일종의 공식 같은 것들이 몸에 쌓이는 것이 연애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최근에 들었다.
어쨋든 결론 내린 연애와 다른 관계의 극단적인 차이점은 약속과 끝맺음이다. 서로 간에 주어진, 암묵적인 약속들을 서로 해내고 그걸 기대하고, 기대해도 된다고 믿는 사이. 그리고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끝낼 수 있는 사이. 연애만큼 이렇게 맺음이 분명한 관계는 또 없으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맺음이 분명한 관계를 늘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얘는 나의 좋은 친구였는데 어째서..? 그래서 나는 헤어진 연인과 잘 지내는 것들이 별로 이상하지 않다. 그냥 여운을 남긴 채로 있는 관계들이 좋달까.
여튼 연애가 그런 것이라면 연애를 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단 한명 정도는 그런 관계를 맺고 있는 것, 단단한 약속을 하고 있는 것이 나에게 균형을 갖게 해주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아니면 너무 외로울거야.
잠이 안와서 꼬냑하고 다시 모리스호텔. 읽다가 문득 몽도에 가고 싶어져서 객실 예약을 검색했는데 맙소사, 남은 방이 별로 없다. 올해는 꼭 남해로 금목서를 보러 가고싶었는데 그 시기에 잘 수 있는 방이 없다. 다행히 12월 초 연박이 가능한 날짜를 예약 걸어두었다. 작년 겨울의 초입쯤 혼자 했던 남해여행이 너무 좋아 매년 그리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가을은 겨울여행을 기다리며 날 수 있겠지.
일기쓰는 내내 반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