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_09.21-22

by 소산공원

어제는 일기를 쓰지도 못하고 쓰러져 잠들었다. 11시에 자서, 7시에 일어났으니 꼬박 8시간을 잤다. 새나라의 어린이가 된 기분이다.


미루던 병원을 갔다. 다정한 의사선생님이 있는 두정동 가정의학과. 증상을 들어보시더니 환절기 알레르기로 인한 기침인 것 같다고 알레르기 약을 처방해주신다. 환절기의 알레르기라.. 사실 그럼 바깥 공기를 자주 쐬며 산책하는 것이 병을 키웠구나!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여튼 몇년동안 기침 때문에 병원을 갔는데 갈 때 마다 진단명이 달라진다. 누구는 천식이라 하고, 누구는 역류성 식도염이라하고 이제는 알레르기라고. 어쨌든 면역반응이 떨어졌을 때 기침이 가장 먼저 오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 쉬어야할 때라고! 그치만, 가을엔 일이 많고 놀 것이 너무나 많다.


한 해 중 가장 바쁜 가을-겨울이 시작되었고. 봄-여름을 한가로이 보냈으니 이정도 각오는 해야한다. 낮에는 가해랑 정컵에 가서 일을 했다. 평화의 글쓰기 강의를 들으면서 즐겁게 즐겁게. 충남에서 평화를 만나니 더더욱 반갑고 장난치고 싶은 마음에 혼났다. 그나저나 평화 강의 충실하고 유익하고 재미있었는데 노쇼가 너무 많아 내가 다 민망...


누구 노트북이 이렇게 주인을 닮았는고...


저녁에는 현미샘 인터뷰하러. 작년에 현미샘과 같이 민주적의사소통 연구모임과 책모임을 한 적이 있다. 현미샘이 주로 이야기하는 것은 회의의 규칙을 정하고, 권한을 나누고, 결정사항을 공유하고 그 약속을 지키는 것. 어찌보면 아주 단순하고 당연한 것인데 이것들을 지키지 않아 민주적문화가 훼손되거나 심지어는 조직이 갈등상황에 빠지거나 깨지거나. 여튼 나도 그 이후론 가벼운 회의라도 회의의 약속들을 지키려 노력한다. 예를 들어 회의록을 간단하게라도 반드시 작성해서 공유하거나, 서로가 논의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일. 이것만 변했을 뿐인데도 일을 대하는 나의 전반적인 태도들이 달라졌다. 그동안 흩어져있던 일들을 조금 더 선명하게 보게 되고 마감(약속)을 지키려, 혹은 지키지 않는 것을 합의하며 일을 하게 되었다.


다꾸하는 어른 귀여워....
만수르변기...


여튼 현미샘은 내가 아는 언니들 중에도 짱 멋지고 귀엽고 이상한 언니다. 처음 북면에 살게 된 것도 99%현미샘 덕분이다. 어느 날 회의인가, 사담을 위해서인가. 아무튼 북면 은석리 현미샘 집에 찾아갔는데, 책으로 가득 둘러싸인 방에 가운데 큰 테이블이 있는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방에 한 눈에 반해버려 언제고 이사를 가게 되면 꼭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 해 겨울인가, 현미샘이 집을 지어 이사를 가게 되고, 나는 바로 이사를 결정했다. 덕분에 행복한 북면의 삶, 시골에 사는 삶을 이어나가게 되었지.

으아- 이사가고싶다.

그리운 북면


그리고 정말 우연의 일치인지. 오늘은 이사를 또 가게 될 것만 같은 새로운 집을 발견했다. 오늘은 민주샘을 인터뷰하러 공주에. 민주샘은 허송세월할 때 여성정책개발원 사업으로 연결되어 알게 되었오, 그때도 매우 똑똑한 사람란 생각을 했는데, 과연 이후의 지역에서 행보가 놀라웠다. 언젠간 반드시 청양군수가 될 사람...이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더라는. 지금은 공주로 이주하여 첫 자취를 시작했고, 인터뷰 사진을 촬영하러 집에 들렀다가 또 반해버렸다!! 전보다는 주춤하게 되는 몇가지 요소들이 있지만 어쨌든. 내년에 나는 또 어디에서 살게 되려나!



언젠간 시간을 들여 이사 이야기를 해봐도 좋겠다. 진하랑 대화를 하다가 진하를 처음 알게된 2012년부터 8번을 이사했다. 한 집에 거의 1년 조금 넘게 살게 된 꼴인데, 이사할 때마다 다 각자 다른 이야기들이 있다. 굉장한 부지런한 혼돈의 시절들을 보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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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터뷰에 동행했던 사람들의 레이어가 묘하게 겹쳐있어 재밌었다. 일에 몰두하며, 일에 하루에 7-8 혹은 9까지도 쓰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여전히 일을 즐거워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30대가 되니 일이란 키워드를 빼고 삶을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 10대, 20대 때는 일=꿈, 뭐 이런건 줄 알고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살았다면, 30대는 일=삶, 일상 자체인 것 같다. 결국 내가 하는 일들이 나를 설명한다. 내가 어떤 태도를 갖고 일할 것인지, 얼마만큼의 균형을 찾을 것인지, 얼마만큼 유능하고 혹은 무능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 30대의 일인 것 같다. 일이 더이상 꿈이 아닌 시기에도 일을 진심으로, 즐겁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퍽 도움이 된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난 엽집의 메일. 보구싶다.

그 때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요


한편으로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설명한다. 혁신가 인터뷰를 하면서 느끼게 된 것인데 이렇게 작은 지역에선 한 걸음만 나가도 모두가 연결되어있다. 다행히도 모두가 적당한 호의를 가진 관계들. 이들을 만나서 대화를 하거나 일을 하게 되면 나는 한뼘정도는 더 좋은 사람이 된다. 좋은 친구들이 늘어날 때마다, 특히 밤을 보낼 수 있는 친구들이 늘어날 때마다 사는게 조금 더 풍성해진다. 이러니 이 좋은 가을날에 쉴 새가 없지.



산책

어제는 인터뷰 끝나고 잠깐 북면의 뒷길산책. 2년 넘게 살았는데 처음 걸어보는 길이 있다니+_+ 산을 넘어서 안성으로 돌아와 명륜동 뒷길에서 걷기 시작해 시내를 한바퀴를 걸었다. 명륜동은 매력적인 골목들에, 탐나는 집들이 많다. 하지만 벽화들이 과하다.


오늘은 공주시내를 잠깐 걸었다. 마을 바로 앞에 이렇게 조구만 하천이 흐르다니. 매일 나가서 맥주 마셔도 좋을 것 같다. 친구를 마주치기 좋은 골목들도 곳곳에 있었고, 새로 생긴 예쁜 가게들도 많았다. 다만 관광지역의 정체성 답게 너무 많은 마스코트들이 이 다정한 고즈넉함을 해치는 기분이 들었다. 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한다는 것 너무 부러운 일이야.



공산성은 매번 걷기 어려운 한낮, 한여름에 와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지 못했는데 오늘은 해질 뉘엿 와서 무지무지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었다. 허허허허허 참. 사진으론 담지 못하는 사랑스러운 시간. 금새 캄캄해져 성벽 불빛을 따라 걸었다. 땀을 흘려 걸으니 좀 살 것 같았다. 걷다보니 연지라는 옛 백제연못이 나왔다. 처음보는 양식이라 낯설고 아름다웠다. 다크나이트 지하감옥도 생각나고 앙코르와트도 생각나고. 예전에 앙코르와트에 갔을 땐 별 감흥이 없었는데 요새들어 다시 가보고 싶다. 뭔가 돌...이라는 건 좀 이상하다. 바위, 돌, 자갈, 모래, 흙...! 그동안 나무와 초록이 나를 당겨왔다면 이제 흙이 나를 부르는 것인가? 뭐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 그러고보니 9월, 짧은 기간동안 한양도성-수원화성-공산성을 다녀왔다. 그것도 다 일부러 찾아간 것도 아니고 회의 때문에 근처에 갔다가 들른 것인데! 이 정도면 부른다고 봐야하지 않아? 롱스톤이 괜히 뽑혔겠냐고!(아 임존성도 있어 미쳣다리xox)



들은 것

1. aomg 채널 중 mix 음악 재생목록들 으아 좋다. EP. 19는 음악이 좋아서 듣다가 공간 느낌에 완전히 반해버렸어. 다음에 공간을 꾸민다면 화양연화 혹은 저런 버전이고 싶은데 사실 화양연화가 더 현실에 가까워............(집은 화양연화, 사과나무는 저 무드로...?)


2. 역힙꼰 듣다, 운전하며 듣기 좋길래 90년-00년 힙합 추억열차에 빠져부렀는데 운전에 위험할 정도로 몸을 가누지 못해 자제하는 것으로 밝혀져....


3. 가을 페일블루아이즈 잘 어울려서 듣다 lou reed를 듣다가 좋은 음악글을 쓰는 블로구를 발견..! 열심히 찾아들어야지. 아 근데 오늘 공주에서 갔던 와인샵에서 더벨벳언더그라운드 LP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팔라고 할 뻔했네 LP도 없는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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