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될까._9.27-28

by 소산공원

겨우 하루 일기를 안 썼을뿐인데 어제가 벌써 흐릿하다. 생각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순간순간마다 메모를 하고 조바심을 느낀다. 그럴 필요까진 뭐람.


혁신살롱 네번째 인터뷰. 무려 두탕(?)이나 뛴 날! 내가 글 쓰지 않는 인터뷰란, 얼마나 좋은 것인고. 우리가 나눈 말들이 어떤 글로 탄생할지 궁금하다.


오전에 천안에서 만난 사람은 아산의 아파트에서 주민공동체 활동을 하다가 협동조합까지 만들어, 지역에서 3번째로(우리 2등인 것은 언급) 제로웨이스트 가게를 만든 분이다. 처음에 소식을 들었을 때, 갑자기 등장한 그룹, 우리처럼 유행에 뒤쳐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구나! 라는 얕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만나서 이야기해보니 그 역사가 상당하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가장 사랑하던, 자신을 지우고 엄마로 살던 사람이 아이의 학교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 때문에 마을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우리아이만 잘 키운다고 해서, 아이가 잘 자라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결국 서로를 돌보아야만 더 좋은 사람들을 길러낼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천안과 아산에 널리고 널린 아파트에서 각별한 공동체 활동을 이어나간다.

재작년 코로나가 갓 수입(?)될 무렵. 우한의 교민들을 아산에 수용하기로 했다는 결정이 뉴스에 나온 적이 있다. 차로를 막고 집회를 하던 주민들의 모습을 보며 한편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교민들과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나누어주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소식도 들었다. 따뜻하고 든든했던 기억. 알고보니, 그 기억의 주인공이었던 공동체. 마스크 구하느라 약국에 줄을 서고 몇만원씩을 주고 사야했던때. 아파트 카페에 '마스크 나눔을 해주실 분들은 자신의 우편함에 마스크를 넣어놓아주세요. 수거해서 전달하겠습니다' 라는 글을 올렸고, 수백개의 마스크를 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인터뷰이는 사람들은 사실 누군가를 돕고 싶어한다고, 그 방법을 제안하고 접근을 도우면 함께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협동조합의 이야기도 재밌다. 나는 2012년에 대안학교를 경험하면서, 공동체에 대한 강력한 힌트를 얻은 적이 있다. 학생들 사이의 사소한 갈등이 생길 때, 또는 심각한 문제 상황이 생길 때마다 선생님들과 마을의 주민들은 지치지 않고 치열하게 회의를 이어나갔다.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결말을 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는데 있다는걸, 지루하고 이해할 수 없는 회의들을 보며 배웠다. 그것이 공동체의 힘이지만 어쩐지 피곤한걸!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탄탄한 힘을 느꼈다. 갈등을 이겨내고, 앞담화를 잘하고, 싸우며 포기할 줄 아는 관계. 내가 사랑했던 협동조합을 탈퇴하게 되는 과정에서, 큰 실망을 했던 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어보려했던 조합원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균형. 관계를 살피는 감각와 일을 꾸리는 살림 사이에서 에너지를 잘 분배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기계적인 분배가 아니라, 10에서 7을 쓸 때 7을 온전하게 쓰고, 3을 충분히 사용하려 애쓰는 사람. 7:3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말해내는 사람. 오랜만에 닮고 싶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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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예산으로. 재식이 커피에 들러 자리를 잡고, 지연님을 모셨다 수다떨고, 다시 인터뷰하러. 지난번 호호의 북콘서트 덕분에 밤의 마르코책방에 들른 적이 있는데, 낮의 빛은 또 다른 모습이었다. 가구와 창틀, 소품들이 낡고 오래되었는데도 빛이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톤이 아름답고 질감이 특이한 튼튼한 가구들은, 오래되어 사용하기 어려운 교회의 의자들을, 지역의 목수님과 함께 리사이클링 해 만든거라고. 원래 의자였던, 모서리가 둥근 책상에 앉아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산 성공회 성당은, 100년 째 되던 해 허물어졌던 교회다. 낡아 사라지는 것들, 아무도 돌보지 않아 결국 무너지거나 빼앗기게 되는 것들에 관심을 가진 신부님은 신학대학원 시절, 이 교회를 만난다. 이 후로는 교회의 낡은 의자가 책장이 된 것와 같은 이야기.



인터뷰를 하면, 남을 통해서 나를 보게 된다. 나는 저 순간에 어떤 생각들을 했더라?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지? 메모와 동시에 이어지는 질문들. 이야기를 마주하는 순간에 나는 한눈팔지 않고 홀딱 몰입한다. 미리 준비한 사전질문지고 뭐고, 말하는 사람 눈가의 윤기를 따라다니며.


사람은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될까. 왜 누군가는 자본주의의 형형색색의 늪을 사랑하게 되고, 왜 누군가는 터널을 함께 걷고자할까. 그런 사람은 태어나면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마주치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있을까? 서서히 물들어가는 것일까? 이번 인터뷰 프로젝트를 통해 얻고자하는 대답은 이것이었던 것 같다. 혁신가는 어떻게 새로운 사람이 되는걸까. 무엇이 사람을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가.


가톨릭의 옷을 벗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으세요? '일을 때려치고 싶을 때가 있으세요?'의 응용질문이자 근본적으로는 또 다른 질문을 했다. 곰곰히 생각하시더니, 자신은 교회를 나가지 않은 적은 없지만 한번도 종교인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하신다. 신앙이 자신의 인생에서 불편한 적은 없었다며, 도리어 더 좋은 사람,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고. 신부님들은 아침을 여는 기도, 하루를 닫는 기도를 하는데, 아무리 좋은 글을 읽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도 신앙과 말씀을 통해서 얻는 것이 원천적인 에너지가 되며 그 시간으로 매일을 샘물처럼 채운다는 말을 들었다.

지연님이 또 물었다. '신부님을 지탱해주는 한가지 말씀이나 믿음이 있다면요?' 이 질문을 들은 순간부터 괜히 눈물이 터져서 눈 앞섶을 꼭꼭 누르느라 혼났네. 신부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하나님은 이땅에 인간의 몸을 하고 오셨다.' 라는 말이 자신의 핵심이라고 전해주신다. 그리스도는 인간과 같이 기쁨과, 슬픔과 고통을 함께 하고 계신다고. 이 작은 예산의 구석동네에도 계시고, 그래서 지역 속에 낡은 것들을 돌보는 일 자체가 신앙이라는 말. 갑자기 그 말들이 너무 살아있는 것처럼 울렁울렁 느껴져, 눈 앞에 인간을 입고 있는 신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숨어 있던 신이 차오르는 느낌.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 항상 궁금했던 것은 이런 것이다. 온전하고 안전한, 게다가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 흔들리고 위태로움에도 불구하고 계속 묻고 답을 내어주는 탄탄한 둘만의 공동체. 평생의 콩깍지. 그 뿌리깊은 것들이 항상 궁금하고, 언젠가는 가닿아보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름다운 절두산의 그림이 또 한번 떠올랐다.


잠깐 새는 얘기. 20대 초반, 1년 정도 교회에 열심히 나간 적이 있다. 구남친의 어무니를 통해 전도당했던 교회였고, 그 때의 남자친구는 나를 지네 엄마한테 맡겨놓고 군대를 갔다. 나는 남친보다 걔네 엄마를 훨씬 더 많이 만났다. 여튼 부지런히 혼란스런 시절이어서, 나는 또 교회도 부지런히 나갔다. 청년 예배, 새벽기도를 드리다가 찬양팀까지.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멀리 떨어져있던 남친에게 정나미가 떨어지면서 신앙심(이라 믿었던)이 짜게 식어갔다. 그치만 교회를 바로 그만 둘 수 없어 헤어진 이후에도 걔네 엄마랑 함께 몇달을 나가다, 건물을 짓기 위해 모금 홍보를 하는 목사님의 광고 시간을 참을 수가 없어 도망을 쳤던 기억.


도대체 나는 그 때 무슨 기도를 했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몇 개의 CCM과 말씀 구절 하나를 얻었다. 여호수아 1장 6절.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느니라'. 이 말을 만나고 나는 108배쯤 씩씩해졌다. 마음의 적을 없애며, 내 것이 아니었던 담대함을 기둥삼아 살아냈던 시절. 기도하는 손이 어색하지 않게, 자주 만지작 거렸던 시절.


그러니까. 사람은 어느 순간 좋은 사람이 되는가. 당신들을 통해 나를 본다. 나는 무너지면서 좋은 사람이 되어왔던 것 같다. 나와 함께 하느니라 했던 사람들을 믿으면서. 그들을 하느님으로 여기면서.


오래, 나와 사이좋게 싸우며 지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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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엔 몽골 다녀온 이후의 최고로 많은 별을 보았다. 쫌생이 총총. 밤하늘 같은 친구들과 음악을 들으면서 술을 마셨다. 저고리가에서 술을 마시면 혼자 집에서 마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더 마시게 된단말이지. 용주샘이 말려준 덕분에(남의 말 듣고 살자!)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났다. 심지어 시간이 남은 김에 욕조에 물을 쪼로록 받아두고 목욕까지 했다.



오랜만에 일을 많이 한 기분.(기분일뿐!) 물이 들어오고 진짜 노를 존나 열심히 젓고 싶다. 나는 아무래도 평온한 상태일 때보다, 한꺼번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무언가를 마주할 때 조금 더 에너지가 생긴다. 담대함이 아무래도 좀 과했나봉가. 여러 일을 동시에 해야할 때 오히려 머릿 속에 차분해져서, 서랍 속이 차곡차곡 열린다. 쓰나미가 몰려와야 패들을 젓고, 속도감은 나의 무기.


그러니 퇴근할 때 녹초가 되고. 그 몸을 이끌고 집에서 밥을 짓고 찌개를 끓인다. 그럼 이상하게 조금 기운이 올라온다. 이 또한 균형이 맞춰지는 지점. 이 밤들을 보내지 않으면 나는 금새 쓸려버리고 말 것 같아서 조금 무서워 애쓰게 된다.


몸이 닳으려나? 조금은 걱정이지만.


비켜 일기써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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