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나_09.29

by 소산공원

내 생에 아침 산책이라는 것이 존재하다니. 인생이 변한다는 뜻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게 어떤 의미도 갖고 있지 않아 더더욱 좋다. 그냥 아침 산책이 존재하는 날들이 늘어나는 것.

7시에 또 눈이 번쩍 떠졌다. 늘 아침을 사는 웅이가 출근하는 길에, 도깨비가 나오는 날이라고 전화를 주어 벌떡 일어나 산책을 갔다. 강변에서 물안개를 보아야지. 거미줄을 보면 공기에 물이 둥둥 떠다닌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아주아주 쬐곰한 거미줄도 선명히 들킨다. 아하하. 물에서 피어나는 물 안개는 못 보고, 얼마를 들였을지 모르는, 심지어 밤에는 잘 보이지도 않던 분수가 꼴꼴꼴꼴 물을 뿜어내는 것을 보았다. 아하하하.





낮엔 그나마 앉아서 일을 했다. 디자인을 할 때, 분명히 머릿 속에 어떤 상이.. 조금 뚜렷하게 그려지나 싶다가도 막상 표현하려고 보면 온데간데 없다. 어... 이게 아닌데.. 하면서 헛발질. 그 헛발질이 너무 싫어서 디자인을 오래 싫어했던 것 같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아무튼 애정을 가지려 하면 할수록 공부가 필요한 일이다. 그림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고, 글씨의 세계 너무 다양하고... 비참한 참에, 최대표가 사고 싶었던 글씨를 사게 허락해주었다. 히히. 명조계열의 글씨는 뭔가 어렵다. 정확한 무게를 맞추기 어렵다고나 할까. 작업하고 나면 너무 무겁거나, 질리거나. 그래서 늘 새로운 폰트들을 추가해주는 것이 좋다. 히히... 여튼 글씨에 대한 공부는 조금 더 해보고싶은데 시간이 있으려나 몰라? 다른 것들이 아직은 훨씬 더 즐겁고…



지난 달의 나는 안성 동네책방에서 기본소득 책 읽기 모임에 덜컥 신청해버린다. 이번 달의 내가 이렇게 살게 될 지도 모르고........ 몽골 갔다온 뒤 마음 넉넉할 때 그런 짓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덕분에 두께가 6cm는 되어보이는 책을 마주할 때마다 짱아찌 돌로 눌리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엔 드랍하려고 지기님께 포기 선언을 했더니 "안돼요 안돼" 하신다. 아 포기하면 안되는거구나.......(포기 쉬운 사람) 결국 포기를 실패하고 643페이지 중에 단 62페이지를 읽은 채로 모임에 나갔다.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기본소득 제도의 실효성을 구축해나가는 방법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는데 생각보다 기본소득의 철학서에 가까웠다.(물론 안 읽어서 모름) 기본소득이라는 건,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들을 고쳐나가면서 발전된 제도가 아니고, 지금의 현실에서 '만인의 행복과 자유'를 위해서 자본주의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하는가? 가 애초의 출발점이라는 것. 그러니까 질문의 방향이 '기본소득을 하면 인간이 행복질 것인가?'가 아니라 '인간이 행복해지려면 어떤 경제제도가 필요한가?' 인 것. 그래서 사회와 인간 사회를 어떻게 믿고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철학이 뒷받침 되고 동의된 이후에 받아드릴 수 있는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 충분한 논의없이 기본소득을 말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를 생각하다, 기본소득이란 생각의 틀을 가지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도 좋은 출발이 되겠다 싶었다. 제도를 개발하는 것은 그 일을 하는 누군가에게 맡기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어떤 것이 무너져가고 있는지, 무엇이 완전히 잘못되었는지, 무엇을 돌보아야하는지, 우리의 삶은 어떤 방향이 되어야하는지, 인간은 어떻게 행복하고 자유로워지고 존엄해지는지를 먼저 말할 수 있어야한다.

모임의 누군가가 '기본소득이라는 제도를 도입한 이후에는, 어떤 문제에 맞닥드렸을 때 고쳐나갈 수 없는 상태가 될 것 같이 극단적으로 느껴진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나, 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더 많이 스스로 죽고, 일하다 죽고, 이유없이 죽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임금은 1000배 이상 차이가 난다 하고. 이대로, 얼마나 더 망가져야 이걸 고치고 싶을까.

지하를 받치는 사람들은 죽어나가고. 멀쑥한 표정을 가진 환한 자본주의가 그 위를 화려하게 걸어가는데.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러나 정작 비극은 그다음에 올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죽음도 시신도 슬픔도 전혀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청소되어, 다른 비슷한 사연을 지닌 동네와 거리들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세련된 빌딩과 고층 아파트들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 번들거리고 말쑥한 표정으로 치장"(진은영 시인, 「용산 멜랑콜리아」) 될 때 올 것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사람이 불타면, 사람이 어이없이 죽으면, 사람들은 자기가 그 사람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만 여길 것이다. 그러고는 내일이라도 자신이 그 사람이 될까봐 저마다 몸서리치며 잠자리에 누울 것이다. 그것을 정의라고, 평화라고 부르는 세상이 올 것이다. 그 세상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이명박 대통령이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밤이 선생이다-그 세상의 이름은 무엇일까 (2009)/황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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