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몽골 후속모임. 사실 한 달 사이에 여행 친구들을 많이 만나긴 했지만 그래도 반가워라. 지난 영상들을 보며 29시간 즐거운 시간. 시간이 약간 이상한 리듬으로 흘러갔다.
친구들을 만나기 전에 약현성당하고 서소문성지에 들렀다. 약현성당은 나에게 중요한 공간이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미사를드리는 시간이고 흐린 날이라 그 날의 어둡고 조용한 빛을 만나진 못했지만 그래도 아름다웠어라. 서소문성지에선 지난번 못간 콘솔레이션 홀에 갔다. 산수가 흐르고 음악이 멋진 영상을 보다가 갑자기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을 담은 영상이 나왔다. 약현성당의 아쉬움을 거기서 채워줄 줄이야. 정말 신기하고 이상한 일이었다. 이것은 약간 부르심이라고 봐야하지 않나? 길을 자꾸 열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또 다른 이상한 이야기. 만쉪의 집에서 새벽까지 놀다 잠을 자고, 아침에 잠깐 깨서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 때는 분명히 그런게 없었다. 11시가 넘어 일어나서 화장실 거울을 보는데 갑자기 눈과 눈 사이에 빨갛게 피가 몰려있다. 여드름이 난 것도 아니고, 왜, 학교 다닐 때 펜뚜껑같은거 볼이나 턱에 괴고 있으면 피가 동그랗게 쏠리는 부항자국 같은 그런거..... 아무리 외면하려 애를 써도 쳐다볼 수 밖에 없는 제 3의 눈이 갑자기 생겨버린거다. 이것도 일종의 부르심이라고 보아야하나 고민이 될만큼 굉장히 뜬금없고 이상한 자국이...인도의 신인가. 어느 국적의 신이 날 부르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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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갈 때는 가방에 책 한권을 넣어갔는데 돌아올 때 책이 6권으로 불어났다. 책 찌는 체질인가보다 호호...
6권의 책 이야기.
0. 문우당
지난 주에 문우당에 다녀온 친구들이 쓸을 쓸어담았더라, 라는 소문이 들려오던데 거기에 내 선물도 몇 권 있었나보다. 문우당을 소개한 보람이 오백배는 들었다. 문우당은 2018년에 친구들과 첫 속초여행을 갔다 만나게 된 서점이다. 문우당 2층으로 가는 계단을 볼 때 충격을 받아서 움직일 수 없었던 기억. 한글과 색, 문장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 수 있는거구나. 거의 모든 칸의 글을 훑으며. 그러모으며. 거의 엉엉 울면서 서점을 돌았던 기억. 속초에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문우당에 가고 싶어서 속초를 간 적도 있다. 특히 그 때 즈음이 전집이 리뉴얼되거나 책의 표지들이 다채롭고 예뻐지던 시기였는데, 노르웨이 숲의 리뉴얼 버전을 보며 책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책을 디자인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던 생생한 기억. (그 전까지는 자발적으로 뭔가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1도 안했던 것 같다)
1. 독립출판물-사랑의 솜씨, 쓸 수 없는 문장들
이광호는 허송세월을 할 시절에 맨 처음 책을 입고 했던 작가로 기억한다. 그가 수줍게 보내던 메일이 기억이 난다. 지금은 독립출판계에서 꽤 꾸준히 오래 책을 만들고 있는 유명한 작가가 된 것 같다. 안리타는 리타의 정원이라는 예쁜 책이 있어 알게 된 작가. 무엇보다 초록색 표지가 너무 예뻐... 드문드문 펼치는 문장의 무게들이 좋다!
밝힐 것이 있는데 독립서점이나 한 주제에, 독립출판물을 단 한권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러니까 서점이 망했지....) 사실 허송세월에서는 인문학이나 소설이나 시를 주로 소개하고 싶었다. '사람이 사람다워지게 만드는 책'이 허송세월의 주된 큐레이팅 방향이었다.. 만 돈이 없어서 새 책을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로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을 사고, 읽으면 그 책을 팔고, 동네에 중고서점에 가서 사오고, 심지어는 알라딘에서 책을 사다가 500원씩을 더 붙여 팔기도 했다. 책은 비싸면서도 티내기 어려운 상품이라 책장에 새 책을 채우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300만원을 들여 책을 사도 많아야 200권정도, 겨우 책장 한 칸이 찰 정도니까.
여튼 그래서, 그러면 안되지만, 독립서적들을 받게 된 것이다. 이건 위탁 판매가 가능하고 판매 이후에 정산을 해주면 되니까 초기 셋팅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일 자체도 매우 번거롭고 어려운 일임과 동시에 나는 내가 입고하는 책들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아무튼 취향이 안 맞았던 것 같다. 독립출판물의 철학은 너무도 이해하지만 나는 편집자의 권위를 조금 더 사랑하는 사람에 가까웠나보다. 여러사람이 고심해 만드는, 만듬새가 좋은 책들을 나는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도 역시 서점이 망한건 당연한 일이었어,,, 라는 생각이 든다. 그치만 언제나 책방을 다시 열고 싶긴하다.
2. 느리의 '내 이야기', 별은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
몽골 여행 친구 느리와 동훈님의 책! 책을 쓴 사람이 이렇게 주변에 만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란말야. 느리와 동훈의 공통 키워드는 사랑꾼. 별과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
3. 책 만들기 책
이것이 또 다시 내 손에... 아마 사장님한테 이 책을 빌렸던 것 같고, 의용이한테 다시 빌려줬던 것만 같고 그러다가... 사라져버린 책. 그러나 이제는 절판이 되었다는 책ㅜㅜㅜ이것은 잠시 내 손에 오게 되었고, 꿈나무양성에 도움이 될까하여 살펴보다가 내가 무럭무럭 자라고 말았다. 세상에 디자인 9년하면서도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몰라 삽질을 해왔다니,,,, 히히,, 진규샘 고맙숩니다..근데 책 다시 안나오나요?
4. 느낌의 공동체
지난 주에 돌이 사라졌다는 소설을 쓸 무렵. 믿을지 모르겠지만 상실감에 빠져 이틀정도는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대체 돌이 뭐라곸..............아무튼 그 글을 보고 호철이 225*150, 406페이지의 돌을 선물해주었다. 갑자기 이 책을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허송세월을 할 무렵 땡땡책 협동조합에서 일하던 호철이 업무차(?) 허송세월에 들렀고, 책방에서 <느낌의 공동체, 신형철>을 사갔다고 한다. 엽집에게 소개를 받은 책이였고 사정없이 좋아서 귀퉁이를 마구 접어놓았던 책. 나를 좋은 책의 세계로 안내해주었던 또 다른 책. 그걸 중고로 팔게 되었는데(돈이 뭐라고 흑흑) 좋아하는 책이 나갈 때마다 자식을 입양보내는 심정이었다. 호철은 그 때의 나의 아쉬운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고하며, 돌 대신에 이 친구를 다시 돌려주었다. 내가 접어두었던 귀퉁이도 그대로, 꼬질꼬질한 채로 그대로. 이 책을 다시 만난 순간 마침내는, 정말 마음이 환하게. 돌이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돌이 느낌의 공동체로 돌아오다니!
느낌의 공동체. 여행의 친구들을 소개하는 아주 적절한 단어인 것 같다. 우리는 바람과 길과 흙바닥과 숲과 산과 나무와 물과 구름과 별과 스타링크와 말과 문장과 먼지와 푸르공의 진동과 피로와 보드카와 짐을 모두 함께 마주한 느낌의 공동체. 그 사이를 말하고 싶어하고, 보여주고 싶어하고, 술하고 싶어하는 사이. 언제까지나 나도, 그장면들 안에서 부지런히 노 젓고 싶다.
느낌은 희미하지만 근본적인 것이고 근본적인 만큼 공유하기 어렵다. 잠을 자려고 하는 시인과 소설가들 앞에서 내가 춤을 추기도 했을 것이고, 내가 춤을 출 때 독자들이 잠을 자기도 했을 것이다. 때로 우리는 한 배를 타게 되지만 그 배가 하늘로 날아오를지 벼랑으로 떨어질지 대부분 알지 못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줄을 알면서도 그 어떤 공동체를 향해 노를 젓는 일이다. 언뜻 거창해 보이는 이 책의 제목이 그 말의 가장 소박하고도 간절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를 나는 바란다.
<느낌의 공동체, 신형철>
5. 다시, 사랑의 솜씨와 서시.
평화가 책을 선물하면서 작은 편지를 써주었다. 나에게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이 떠오른다니.
그 시에 기대어서, 아니 그냥 업혀서 겨우겨우 살아냈던 시간들이 있었다. 남자들이 깬 유리를 치우면서도, 손의 마름뼈를 소독해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억들로 가득차있던 시절. 미워하지 않으려고, 죽지 않으려고, 죽이지 않으려고 새로 갈아끼운 유리창문에다가 윈도우 펜으로 커다랗게 서시를 적어두었던 기억.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사는 게 부끄러움으로 너무 얼룩덜룩해서. 죽는 날까지 사랑으로 좀 갱생해보려고. 낯을 가려보려고 하는 노력. 애씀. 그런걸 발견해주어 고맙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