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w/ 코요 작가님)
이쯤 보았으면 익숙해질 법도, 더는 새삼스러울 게 없을 법도 한데, 희한하게도 매번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지난겨울, 나는 부모님과 자동차를 타고 해안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아빠는 운전석에 앉았고, 엄마는 그 옆자리에 탔고, 뒷좌석엔 내가 앉아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가볍고 짤막하게 공중을 떠돌았고 우리의 관심거리는 통화 시간에 대한 각자의 견해로 집중되었다. 내가 별생각 없이 어젯밤 엄마의 통화 내용에 대해 말문을 연 것이 시초가 되었다.
아빠는 “통화는 할 말만 간단히 하고 끊는 것”이라며 엄마가 늘 그렇게 오랜 시간 통화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대표적으로 1분이 채 되지 않는 자신의 통화 시간을 예시로 삼았다. 엄마는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로 시작해서 아빠가 너무 유별나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빠는 한 술 더 떠 “전화를 오래 붙잡고 있는 사람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라고 받아쳤다. 그것은 순식간에 예의의 문제로 번져 친구들과 한 번 통화를 시작하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공유하길 즐기는 엄마는 아빠의 말에 의하면 ‘예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뒷좌석에 앉아 “그래야 해.” 또는 “그러지 말아야 해.”로 연속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보고 있자니, 그것은 독백 같기도 했고 각각의 일인극을 보는 것도 같았다. 서로가 “맞다.”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 일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타협에 이를 수 없는 일(과연 타협이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으나)처럼 느껴졌다. 두 사람을 관찰하며 더 놀라웠던 것은 넌더리가 날 법한 그 대화 패턴에 서로가 아주 열심히 동참하고 있었다는 사실인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대화를 지속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바로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상대가 자신의 틀림을 인정하고 ‘나’의 논리에 굴복하게 만드는 것을 대화의 주된 목적으로 삼을 때, 그곳에서 우리는 진정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을뿐더러, 이룬다고 해도 그것이 건강한 방식은 아닐 것이다. ‘잘못된 너’를 증명하기 위한 대화는 안정된 조화를 이룬 형태라기보단, 한 사람을 위한 일방적 맞춤에 불과하다. 그것은 추후 미약한 자극으로 인해 다시 새로운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 또한 안고 있다.
이런 에피소드를 통해 하찮고 사사로운 이유로 언쟁하는 나의 부모를 지적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와 다른 입장에 대한 부정과 상대에 대한 왜곡의 형태로 대화를 지속해 온 순간들이 과연 나에겐 없었을까, 얼마나 만연했을까, 하는 기억을 곱씹게 되는 것이다. 상대가 나의 말을 제대로 듣고 있다고 마음대로 간주하며 나만의 생각을 남발했던 순간들이 내게도 참 많았다.
이쯤 되니 누군가를 이해하고 그와 진정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되려 현실에서 벌어지기 어려운 예외적인 사건처럼 느껴진다. 나는 적어도 대화의 중요한 요소인 ‘이해’와 ‘수긍’이라는 측면에 있어선 mbti의 순기능을 믿는 편이다. 우리 중 누군가가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가 ‘다른’ 것일 뿐이라는 감각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을 수 있으니까.
4가지 선호 지표 중에서 ‘t’ 성향이 유독 두드러진 나에게도 대화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 간주했던 과거가 있었다. 당시 나에게 대화는 승리의 문제였고, 서로 다른 입장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내가 맞고 네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공격적인 형태로 반복되었다. 더는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문 상대를 보면 이야기가 종결되곤 했는데, 어느 순간 그런 방식으로 대화에 참여하는 내가 참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의 본질은 서로의 차이를 뒤틀림 없이 마주하는 과정 자체에 있지, 옳고 그름을 결단하는 행위에 있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나의 바깥에 있는 존재들에게서 ‘다름’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신묘한 차이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을 의무적으로 좁혀 나가야 할 간극이 아닌, 존중해야 할 지점으로 바라보는 일을 마음이 허용하는 순간, 나와 다른 누군가와의 소통은 산뜻하고 즐거운 일이 된다. 내 곁에 머무르는 타인들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끼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기쁘게 대화를 나눈다.
‘남들이 우리와 다르게 살아가고 행동하며 경험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에 기뻐하는 것이 사랑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프리드리히 니체)
- 코요 작가님의 글
: https://brunch.co.kr/@singwithme/11
#수수한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