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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 Oct 27. 2022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신입사원과 무표정한 선배

나만 아는 MBTI

신입사원인 시노 사코토는 분위기를 잘 읽는다고 자주 칭찬받곤 하지만, 사실 시노는 희로애락 같은 다양한 감정이 푹신푹신한 모양의 수수께끼의 생물로 보여버리는 이상 능력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시노는 그 능력으로 인해 무뚝뚝한 표정을 한 무서운 얼굴의 직속 상사인 우츠미가 사실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임을 알게 된다.               


자신이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라야 하겠지만, 만일 남의 기분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이래저래 편리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일본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과 속마음이 사이에 차이가 많은 문화권에서는 더욱 그러겠지만, 굳이 일본이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은 채로 남의 심사를 빨리 파악하는 능력은 사회생활에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요즘 세상에 만나야 할 사람이 오죽 많은가. 자기 회사 사람 거래처 사람 협력 업체 사람 원청 사람, 학생이라면 선배 동기 후배 조모임 스터디그룹, 집에 돌아와서도 평소에 얼굴도 잊을 정도로 남처럼 지내다가 명절 때 얼굴 보게 되는 친척들, 심지어 당근 하다가 만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보게 되는 사람은 많고 그러면서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서 분위기를 읽는 데에 신경을 쓰게 되는 일이 자주 생긴다.     



사는 건 피곤한데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해야 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임의로 어딘가에 상대를 분류해버리고 쟤는 저거야라고 믿어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저 사람이 나의 친구가 될지 적이 될지 모르는 살벌한 세상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불안은 심리테스트 같은 유사 과학에 사람을 의지하게 만든다. 십여 년 전에는 혈액형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MBTI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상대의 MBTI를 알기 위해서는 내 것도 밝혀야 하는 것이 불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쟤는 저거야 하면서 상대의 언행을 해당 유형에 끼워서 맞춰 생각하는 것이 이 복잡한 세상에서 나름 살아가는 방법일 수 있겠다.     


요새 남의 마음을 읽는 캐릭터가 만화에서 가끔 등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인 듯싶다. 엠비티아이는 남의 것을 알기 위해선 자기 것도 공유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남의 생각이나 마음이 눈에 보인다면 이것 이상 편리한 게 없을 것 같다. 직장이건 학교건 나는 아는 데 남은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를 모르는 정보만큼이나 치트키가 따로 없을 것이다.     


물론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신입사원과 무표정한 선배의 주인공 시노는 이 능력을 바탕으로 먼치킨 물을 찍은 캐릭터가 절대 아니다. 회사에서 신입이 그 정도 치트키가 있어 봐야 쓸모가 얼마나 있겠는가. 때로는 남의 생각을 읽을 수 없는 것이 더 나은 상황도 분명 존재한다.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고, 시노 또한 차라리 몰랐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경우 또한 겪는다.     


하지만 시노는 자신의 이런 능력 덕에 호감형 인상이 아닌 그래서 타인에게 경원시 되는 선배의 마음을 알게 되고 그와 차츰 썸을 적립해간다. 달달하다. 그러면서도 단조로워질 무렵 되면 엑스트라나 조연급을 활용해서 변화를 준다. 그 와중에도 시노와 직속 선배인 우츠미 사이에 이벤트가 생기고 때로는 오해도 하게 되어 둘 사이가 위기를 맞는 경우마저 생긴다.     


남의 마음을 그리고 분위기를 읽어야 하는 일에 지친 이들에게, 그래서 엠비티아이 같은 것에 의지해서 자신과 타인을 어딘가로 분류하는 것이 차라리 마음이 편한 독자들에게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신입사원과 무표정한 선배는 나름 대리 만족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직종에서 감정노동이 일상화된 현실이니,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여주인공에 만화 속에서라도 몰입해보자.          



토리하라 . 『분위기를 읽을  있는 신입사원과 무표정한 선배』 이소연 . 서울미디어코믹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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