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요 Nov 01. 2022

층계참에 스커트가 울린다 1권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게 어울리는 것

  사쿠라가모리 고등학교 사교댄스부 2학년 하루마 키키는 ‘파트너’(여자) 역할을 동경하여 사교댄스를 시작했었지만, 자신의 큰 키에 맞는 역할인 ‘리더’(남자) 역을 하고 있었다. 키키는 자신의 ‘파트너’인 소꿉친구 네무노키 시온으로부터 페어 해산을 통보받게 되자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좀처럼 새로운 페어를 결성하기 힘들었던 키키는 방과 후에 층계참에서 평소에 동경해 온 파트너의 댄스를 혼자 추게 된다. 그런 키키의 모습을 본 작고 가냘픈 1학년 토리바미 미치루는 “제 파트너가 되어 주세요”라며 키키의 손을 잡는다.

    

  이 작품은 여여 동성애 요소가 있는, 소위 백합(GL) 물로 분류된다. 이쪽에 거부감이 있는 분들은 열람을 삼가 주시길.     

키키가 춤을 추고 있는 저 위치가 바로 층계참이다


  층계참에 스커트가 울린다는 사교댄스를 소재로 하는 만화이다. 사교댄스는 남녀가 페어를 이루는 것이 정석이지만, 남자 부원이 부족해서 여자끼리 자주 페어를 하게 된다는 설정이다. 남녀 페어 건 여여 페어 건 간에 남자 역을 리더라고 부르고 여자 역을 파트너라고 부른다. 개인적으로, 사교댄스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진 못하지만, 영상 몇 개를 시청해봐도 그렇고 역할 명칭을 봐도 그렇고, 춤을 출 때 남자 쪽에서 움직임을 주도해야 할 것 같다. 리더가 파트너를 회전시키거나 받쳐주는 장면이 영상에 꽤 자주 나온다. 움직임 자체는 파트너 쪽도 꽤 많지만, 리더 쪽이 훨씬 체력적인 부담이 클 것 같다.     


  그런데 작품 시작 부분에 언급되는 키키의 키는 172cm인데 반해, 옆에 선 미치루와 비교해보면 적어도 20cm는 차이 나게 보인다. 이 정도면 기술이건 뭐건 따질 것도 없어 보인다. 기술은 노력으로 극복이 가능하지만 신체적인 조건은 극복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사교댄스라는 장르 특성상 키 큰 리더와 키 작은 파트너의 조합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층계참에 스커트가 울린다의 등장인물들, 특히 후배인 미치루는 이런 고정관념에 도전한다. 자신은 리더만 한다는 미치루는 선배 키키가 사실은 파트너를 동경해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선배에게 자신의 파트너가 되어 줄 것을 간청한다. 그러나 키키는 소위 관성의 틀을 깨는 데에 망설인다.      


안 어울리는 짓을 해서 상처받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게 더 편하니까.

  원하는 것이 따로 있지만 시선 때문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억지로 자신에게 요구되는 것을 연기해온 키키의 마음을 이보다 더 강하게 표현하는 대사가 있을까. 귀엽고 여성스러운 것을 좋아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급속하게 커버린 키 때문에 원하는 것이 아니라 맞는 것을 해온 키키에게 미치루는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찾아본 기회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의 대상일 수 있다.      


  Boy meets girl을 Girl meets girl로 옮겼다고나 할까. 새로운 세계로 자신을 인도해 주는 인물이고, 그 인물은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주는 존재, 키키에게 미치루는 그런 존재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절대 쉬운 거 아니다. 비록 하고 싶은 것은 있지만, 편견이라 불러도 좋고 규범이라 불러도 좋고 심지어 적성이라 불러도 좋은 것 때문에 결국 자기에게 어울리는 것을 선택해야 했고, 이제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도 잊어버리는 일이 살다 보면 꽤 자주 있다.

“어울린다”는 것이 처음엔 남이 보기에 내게 어울리는 거였지만 어느샌가 내가 보기에도 꽤 “어울린다.” 어울리는 것을 하면 편안하고 잘 해내면 칭찬도 받는다. 하지만 과연 나는 행복한가. 미치루가 선배에게 집요하게 들이대는 것은 선배의 이 지점을 정확하게 읽었기 때문이었다.     


  키키와 미치루보다 훨씬 오래 살아온 내게도 그동안 살면서 좋아했지만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묻어두어야 했던 것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몇 가지가 생각난다. 지금이라도 시작해 볼 수 있는 것이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망설여진다. 하지만 그게 키 작은 사람이 리더를, 키 큰 사람이 파트너를 추는 것보다 더 하기 힘든 일일까.      


  아직도 용기가 부족한 나와는 달리 키키는 미치루가 내미는 손을 결국 잡는다. 즐거워 보인다. 멋지다. 하지만 혹시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된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쉽지 않은 싸움일 거다. 부디 이들이 앞으로 이들을 바라볼 시선에 맞설 수 있기를. 그리고 미치루와 키키가 다른 어느 누구 못지않게 빛나는 페어의 리더와 파트너가 되길 바래본다.     


  층계참에 스커트가 울린다는 선배 키키와의 페어였다가 이유를 밝히지 않고 해산을 통보해버린 소꿉친구 시온,

그리고 후배 미치루에게 고백하는 같은 반 안조가 키키-미치루 페어와 함께 또 다른 이야기의 축을 이룬다.

이 조연급들—특히 시온—은 작품의 전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뇌관을 가진 인물인 만큼 앞으로 어떻게 쓰일지가 궁금하다. 더블 주인공인 미치루가 의외로 나중에 뭔가를 터트릴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든다. 미치루가 리더만 하려 하는 이유도 충분히 몇 화는 풀어낼 수 있는 떡밥이다.          



  올해 9월에 국내에서 제1권이 정발 된 이 작품은 일본에서는 2권까지 출간되었고, 작가인 우타타네 유우는 단독 단행본으로 층계참에 스커트가 울린다가 첫 작품이다. 작품과 작가 모두를 앞으로 계속 보고 싶다. 기대해본다.     



우타타네 유우. 『층계참에 스커트가 울린다』 이슬 역. 제1권. 학산문화사, 2022.

踊り場にスカートが鳴る

작가의 이전글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신입사원과 무표정한 선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