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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 Oct 19. 2022

지옥소녀 만화판

그곳이 바로 지옥인지도

  가게에서 좀도둑으로 오해받고 그걸 목격한 급우에서 약점을 잡혀서 셔틀+지갑으로 전락한 마리, 예전의 스승이었던 경쟁자에게 레시피를 뺏긴 데다가 악소문에 시달리는 빵 가게 셰프인 언니를 보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유카, 다른 배우의 질투로 인해 사고를 당해 결국 장애를 갖게 되고 배역을 빼앗겨버린 사쿠라, 돈 되는 집의 동물만 치료하는 수의사 때문에 자기 애완견을 잃게 된 준코, 선의를 가지고 자신을 도와준다고 생각했던 선생님께 성폭행 미수를 당한 것도 모자라 오히려 유혹했다는 누명을 쓰게 된 유우. 일단 제1권에서 이들의 여중생이라는,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할만한 공통점을 추가로 갖고 있는 이들에게 밤 12시에 지옥통신이 열린다.      



  지옥소녀가 제시하는 복수의 댓가는 의뢰자의 영혼도 가해자처럼 지옥에 떨어지는 것인데, 저것들이 과연 자신이 지옥에 떨어질 것을 감수하면서라도 가해자를 지옥에 보낼 만한것인가는 좀 생각해볼 여지가 있긴 하겠지만, 어쨌든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 모두는 극단적인 방법에 의지하게 된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초반부의 단순한 패턴은, 이후 내용이 전개될수록 저마다 별것도 아닌 이유로 지옥통신을 사용하게 되고, 심지어 자신은 지옥에 가건 말건 상관없으니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지옥통신을 이용하는 황당한 상황까지 등장하게 된다. 게다가 평범한 학생인 다쿠마 한 명을 표적으로 삼아 악마의 자식으로 낙인찍고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지옥통신에 접근한 후에 그 결과에 대해 특정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일까지 생겨난다. 이렇듯 후반부로 갈수록 그냥 미운 사람을 없애버리기 위해 지옥통신을 이용하고, 게다가 그 대가를 피하고자 다른 사람이 지옥통신을 쓰도록 유도하는 등, 내용은 어두워지고 전개는 막장으로 치닫는다. 극혐이니 뭐니 하며 혐오 문화에 물드는 상황이 10년도 더 전에 바다 건너 옆 나라 만화에서 등장했다고나 할까. 원래 좋은 것은 못 따라 해도 나쁜 것을 따라 하기는 쉬운 법이니 말이다.     


  해결되기 힘든 억울함이 넘쳐나는 곳, 그리고 다름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가 판을 치는 일이 계속되는 곳에 지옥소녀는 옆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곳이 바로 지옥일 것 같다.          


  만화에서 애니화되는 대부분의 경우와는 달리, 이 만화는 애니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 애니를 꼭 보고 싶다.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작화가 기대된다.     


Miyuki Eto. 『지옥소녀』 전가연 역. 서울문화사, 2006. 전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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