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불편을 먼저 본 사람이 새로운 출발을 만든다
창의성은 새로운 것을 떠올리는 능력처럼 보이지만, 그 시작은 언제나 ‘보는 힘’에서 나온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보고 스쳐 지나가지만, 그 안에서 무엇을 발견하는가는 저마다 다르다. 관찰은 창의성을 만드는 첫 단계다.
그리고 이 작은 첫걸음이 스타트업 세계에서는 종종 전혀 새로운 시장과 브랜드를 만들어낸다. 보통 스타트업은 거대한 기술보다 아주 작은 불편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출발한다.
사람들의 손끝, 표정, 선택의 망설임 같은 대기업이 놓치는 사소함을 먼저 보고, 빠르게 실행한다.
심리학자 제임스 기브슨(J. J. Gibson)은 지각은 입력이 아니라 능동적 탐색(active exploration)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보다 무엇을 ‘읽어내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관찰이 힘을 갖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세상에 이미 보이던 장면 속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불편을 발견하는 것. 그 작은 발견이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관찰을 통한 혁신 사례:
미충족 욕구의 발견
① 토스(Toss) – “송금은 왜 이렇게 복잡해야 할까?”
토스가 관찰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감정이었다.
사람들이 송금을 할 때 불필요한 절차 속에서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사실.
비밀번호, 공인인증서, 보안카드… 문제는 보안 기술이 아니라 “너무 많은 단계”였다.
토스는 이 하나의 관찰을 붙잡았고 발견은 간단했다.
사람들은 ‘안전한 송금’보다 “빠르고 확실한 송금 경험”을 원했다. 그 작은 발견이 송금 3초, 간결한 인터페이스, 그리고 금융 UX 전체를 바꾸는 혁신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기술보다 ‘작은 불편을 먼저 본 눈’이 만든 브랜드다.
② 배달의민족 – “사람들은 음식 주문을 할 때 무엇을 불안해할까?”
배민은 시장을 관찰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행동을 관찰한 브랜드다. 사용자들은 메뉴 사진을 유난히 오래 보고, 리뷰를 여러 번 훑고, 결제 직전에서 멈추곤 했다.
이 작은 행동 안에는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숨어 있었다. 배민은 이 감정을 발견했다.
그리고 디자인, 글, 인터페이스 모두를 사용자가 느끼는 이 미세한 불안을 줄이는 방향으로 바꾸었다.
그 결과 배민은 음식 배달 앱이 아니라 감정을 설계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③ 마켓컬리 – “신선함은 시간의 문제다”
사람들은 장을 보면서 품질보다 신선도와 시간에 불만을 느낀다. 대부분의 유통 기업은 물류 기술만 발전시키려 했지만, 컬리는 ‘시간’을 관찰했다.
사람들이 아침에 신선한 식재료를 받고 싶어 한다는 패턴. 기술보다 시간의 구조가 더 중요한 문제였다.
이 작은 관찰이 새벽배송이라는 새로운 경험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관찰이 업(業)을 바꾼 대표적 사례다.
④ 노션(Notion) – “사람들은 기능이 아니라 조합 가능한 공간을 원한다”
수많은 지식노동자들이 노트 앱, 업무 앱, 캘린더 사이를 오가며 작은 일을 하면서도 뇌가 분산되는 모습을
노션은 오래 관찰했다. 발견은 명확했다.
사람들은 “강력한 기능”보다 “모든 것을 한 곳에 깔끔하게 놓을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그 결과 문서 + 데이터베이스 + 프로젝트 관리가 하나로 연결되는 새로운 형태의 도구가 탄생했다.
기능이 아니라 사람의 작업 흐름을 관찰한 브랜드다.
⑤ 글로시에(Glossier) – “사람들은 브랜드의 말보다 사람의 얼굴을 믿는다”
뷰티 산업은 늘 모델 사진을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글로시에는 소비자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사람들도 브랜드 메시지보다 실제 사용자 후기, 셀피, 피부 질감을 더 오래 본다는 사실. 발견은 간단하면서도 혁명적이었다.
고객은 광고보다 “나와 비슷한 사람의 이야기”를 믿는다. 글로시에는 이 관찰을 브랜드 중심 철학으로 삼았다. 이미지보다 관계, 광고보다 대화. 관찰이 브랜드 세계관을 만든 대표적 사례다.
관찰의 힘을 완성하는 두 가지 전략
관찰은 조용한 시작이지만, 그것을 시장을 바꾸는 '발견'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방법론적인 깊이'와 '실행력'이 필수적이다.
전략1): 공감적/시스템적 관찰의 깊이
성공적인 관찰자는 사물을 '주변인처럼 익숙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외부인처럼 낯설게' 보며 미처 인지하지 못한 비효율성을 포착한다.
선택적 주의의 해제: 일상적인 불편함은 습관이 되어 사람들이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를 통해 무시하기 쉽다. 창의적 관찰자는 바로 이 주의의 구멍에 집중한다.
구조적 비효율성 파헤치기: 그 불편함이 '기존 시스템이나 프로세스의 어떤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었는지 파고드는 시스템적 관찰이 필요하다. (예: 토스 사례)
전략2): 발견을 가치로 전환하는 실행력
아무리 훌륭한 발견이라도 실행 가능한 전략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관찰은 혁신의 씨앗이지만, 실행력은 그것을 열매 맺게 하는 토양이다.
기술/물류적 실행: 마켓컬리가 새벽배송이라는 '발견'을 혁신으로 완성한 것은 '풀 콜드 체인(Full Cold Chain) 시스템' 구축과 같은 물류 및 기술적 실행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브랜드 세계관 설계: 글로시에가 '광고보다 사람의 얼굴'을 믿는다는 관찰을 발견한 후, 소비자가 참여하고 소통하는 커뮤니티 중심의 브랜드 세계관을 성공적으로 설계하고 유지하는 실행력이 뒤따랐다.
즉, 관찰 → 발견 → 실행의 삼각형이 완성될 때 혁신이 발생한다.
관찰의 번역:
불편을 편함으로 바꾸는 생방송
관찰의 원리는 스타트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생방송 현장에서도 매일같이 작동한다. 방송을 할 때 나는 늘 한 가지를 먼저 본다.
고객이 지금 어떤 불편을 느끼고 있는가.
그리고 그 불편을 해결하겠다는 설명이 아니라, 그 불편을 ‘편함의 언어’로 번역해 말할 때 고객은 움직인다.
그래서 생방송 오프닝에서 가장 쉽게 꺼내는 이야기는 날씨 상황이다.
춥고, 덥고, 공기가 안 좋고, 비나 눈이 오는 이야기 등.
날씨는 설명이 필요 없는 불편이기 때문이다. 고객은 이미 몸으로 날씨를 느끼고 있다.
오프닝에서 날씨를 말하는 건 그냥 흘러가는 잡담이 아니다. 그날 고객이 겪고 있는 불편을 대신 말해주는 신호다. 이 공감의 신호가 열리면, 상품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리고 상품마다 조금씩 다르게 적용된다.
예를 들어,
패션 상품은 늘 입을 옷이 없는 상황, 고르기 귀찮고 실패가 두려운 불편에서 출발한다.
뷰티 상품은 피부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불안, 비교와 시간 부족에서 생기는 불편에서 시작된다.
건강기능식품은 관절·두뇌·뼈 건강이 예전 같지 않다는 몸의 신호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할 때는 효능부터 말하지 않는다. 먼저 그 불편을 이야기해 공감을 만들고, 그다음 인체적용시험 결과로 근거를 제시할 때 고객은 안심하고 지갑을 연다.
또 하나, 주문 방식 안내까지 바꾼다.
고연령 고객에게는 자동주문이나 상담원 연결이 편하고, 젊은 고객에게는 모바일 연결과 간편 결제가 빠르다. 이렇게 같은 상품이지만 다른 주문 경로로 안내한다. 이 차이는 기술이 아니라 불편을 어디에서 느끼는지에 대한 관찰에서 나온다. 즉, 고객의 불편함을 연구하고 주문을 쉽게 할 수 있게 해야 매출을 올릴 수 있다.
관찰은 결국 ‘발견의 힘’을 만든다
스타트업들을 보면 혁신의 시작은 기술도, 자본도 아니라 사람의 작은 불편을 오래 바라보는 일이었다.
한 손의 불편, 결제 전의 망설임, 시간의 구조, 작은 리뷰 하나, 쓰는 사람의 하루 리듬 등.
이 작은 조각들이 누군가의 관찰 속에서 하나의 발견으로 바뀌고, 그 발견이 결국 새로운 브랜드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관찰은 ‘무엇이 일어나는지’ 보는 일이고, 발견은 ‘왜 그것이 중요한지’를 깨닫는 일이다.
그 단서를 가장 먼저 포착하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새로운 길을 만든다.
참고문헌
Gibson, J. J. (1979). The Ecological Approach to Visual Perception.
Kahneman, D. (1973). Attention and Effort.
Martin, B. & Hanington, B. (2012). Universal Methods of Design (Behavioral Observ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