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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의 선택 Part.2

지위 소비의 메커니즘,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

by 성민기
"왜 더 비싼 물건일수록 더 사고 싶어 질까?"

"왜 친구가 명품백을 사면 사고 싶어 질까?"


이 질문들은 단순한 경제학적 수요공급 법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때로는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가격이 오를수록 오히려 더 사고 싶어지는 이 역설적 소비심리를 행동경제학에서는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라고 부른다.


베블런 효과: 과시욕이 부른 소비의 역설

이 개념은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이 1899년 저서『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에서 처음 제시했다.

유한계급은 한자로 有閑階級
있을 유, 한가할 한 자를 쓴다.

참고로, 여기서 '유한'이란 한계가 있다의 뜻이 아니다.

한가롭다 '한가한 계급', 즉 '여유 있다'의 의미다.


그는 "상층계급의 두드러진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자각 없이 행해진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이다.


과시소비란 단순히 물건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나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드러내기 위한 소비 행위다.


이때 소비자는 제품의 기능이나 필요성보다는 그 물건이 상징하는 '이미지'와 '지위'를 산다.

이를 지위재(Positional Goods)라고 하며, 지위재란 이처럼 남과 비교하여 우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상품을 가리킨다.


같은 가방이라도 연예인이 들면 '더 좋은 가방'이 되고,

같은 시계라도 누가 차느냐에 따라 품격이 달라진다.

결국 우리는 상품 자체가 아니라, 그 상품을 통해 '나를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가'를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가격이 오를수록 사고 싶어진다

베블런 효과의 핵심은 가격 자체가 희소성의 신호가 된다는 점이다. 너무 비싸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 수 없는 물건은 소수만이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욕망을 자극한다. 금값이 계속 오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베블런 효과

그래서 고가의 사치품, 한정판, VIP 전용 제품일수록 경쟁적으로 구매하려는 심리가 발동된다.


명품 소비가 대표적이다.

고급 시계, 한정판 가방, 슈퍼카 등은 기능이나 성능을 넘어서 '누가 소유할 수 있는가'가 핵심 가치를 결정한다. 이른바 소비의 희소성 프리미엄이다.


현대적 명품소비는 '투자'로 진화한다.

최근 과시적 소비는 더 진화하고 있다.

단순한 사치에서 벗어나 이제는 투자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리서치회사 번스타인의 루카 솔카스 연구원은 이를 ‘트레이딩 업(trading up)’ 현상이라 부른다.


이제 중산층도 명품 소비의 중심 고객이 되었고, 이들은 단순히 사치가 아니라 재테크 수단으로 여긴다.

명품 가방이나 고급 시계는 중고 리세일 시장에서 상당한 자산가치를 유지하며 오히려 자산처럼 거래된다.

유안타증권은 이를 '명품의 투자 자산화'라 분석하며,

미술품·보석 등 일부 한정된 영역에서 시작된 '소비의 자산화'가 이제 명품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짝퉁 소비와 과시 경쟁의 확산

이러한 과시소비 구조는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를 만들어낸다.

낙수 효과

상류층이 희소한 최고가 상품을 소비하면, 중산층은 그보다 약간 낮은 수준의 명품을 소비하고, 하위계층에서는 모조품(짝퉁) 소비까지 확산된다. SNS 속 셀럽들의 인증샷은 이 심리를 더욱 가속시킨다.

누구나 가능한 한 '위로 올라가는 모방'을 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지속적으로 소비를 확장시킨다.

그리고 명품 시장은 이 심리를 정교하게 설계하여 프리미엄 등급, 한정판, VVIP 마케팅 등을 강화해 간다.


홈쇼핑에서의 과시 소비 심리

홈쇼핑 역시 이 과시소비 심리를 활용한다.

"한정수량입니다." → 희소성 자극

"최상위, 최고급, 프리미엄 구성입니다." → 지위 욕구 자극

"VVIP 고객을 위한 특별 패키지" → 소수만을 위한 프라이빗 제안

고가 상품일수록 이러한 심리는 더 강하게 작동한다. 단순한 물건을 넘어서 '나의 선택이 특별하다'는 착각을 심어준다. 그리고 '이 구성은 지금 이 시간에만!' 이 한마디가 고객의 비교 심리를 흔든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소비하는가?

우리는 단순히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가격이 오를수록 사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이유는 그 물건이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희소한 지위의 신호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베블런 효과의 본질이다.


소비는 종종 나의 필요가 아니라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작동한다. 그러나 비교의 프레임을 자각하는 순간, 우리는 한 발 물러서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이건 정말 내가 원한 선택인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선택인가?"


이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면 비교의 선택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Thorstein Veblen, 『유한계급론 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 1899.

조선일보, “명품 시장, 소비에서 투자로… ‘트레이딩 업’ 시대의 시작”, 2023.

유안타증권 리포트, 2023.

나무위키, ‘베블런 효과’ 항목, 2024.

두산백과, ‘베블런효과’,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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