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담판. 담판?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일찍 퇴근한 준수도 빈 손이 아니었다.

“은설 씨, 저녁밥 했어?”

신발을 채 벗기도 전에 묻는 준수의 목소리에선 약간의 흥분이 묻어나고 있었다.

“하지 말라며요. 자기가 메시지 보내놓곤 왜 물어?”

“안 읽은 줄 알았지. 잘했어요. 내가 엄청 신기한 메뉴를 사 왔어.”

“뭔데?”

“곱창떡볶이. 동네에 새로 생겼더라고. 맛있을 거 같아서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마침 오늘 정시퇴근이 가능하길래 은설 씨랑 같이 먹어보려고 사 왔지.”

신이 잔뜩 오른 목소리였다.

신발을 내팽개치듯 벗어던지고 준수가 호들갑스럽게 떡볶이가 든 비닐봉지를 식탁 위에 올렸다.

"짜자안~."

불에 그을린 곱창이 떡볶이 위로 그득하게 쌓여 있는 게 비주얼이 아주 그만이었다.

“우와, 이젠 떡볶이에 별 걸 다 섞네.”

맛도 꽤 괜찮았다.

오래간만에 입맛이 도는 메뉴를 접한 은설이 야무지게 두 입 쨰를 욱여넣고는 맥주 꾸러미를 꺼내왔다.

“어? 맥주? 마누라가 웬일로 이런 걸 다 사 왔어?”

“다 먹고 행패 부리려고.”

“반 캔만 먹어도 헤롱거리면서 뭘. 한 캔 다 먹으면 기절 아냐? 술 아까우니까 마누라는 반 캔만 먹어요. 나머지는 다 내 거!”

은설과 갖는 간만의 술자리에 신이 잔뜩 오른 준수가 연신 ‘크-’ 소리를 내며 맥주를 들이켰다.

“캬~ 좋네! 이게 사는 맛이지! 오래간만에 마누라랑 맥주 한 캔 하니까 기분이 아주 꿀이네. 꿀!”

“다음번 술자리는 3년 뒤가 될지도 몰라요.”

“왜?”

다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티가 풀풀 나는 목소리로 준수가 물었다.

“시험관도 해보고 싶어.”

그제야 맥주가 등장한 이유를 알아차렸다는 듯 준수가 표정과 목소리를 자못 진지한 투로 바꾸며 말했다.

“하고 싶으면 해.”

“정말?”

“응.”

"진짜?"

"이 사람, 속고만 살았나."

“뭐야. 이렇게 한 방에 오케이 할 줄 알았으면 맥주 안 사 오는 건데.”

“헐. 원하는 대로 해줘도 뭐라 그러네.”

“한 가지 더 말할 거 있어요.”

"또? 뭔데?”

“나 난임휴직 신청하려고.”

“휴직? 그런 것도 할 수 있어?”

“응. 일 년 정도 쉬면서 시험관 하고 싶어.”




준수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긍정도 부정도 없이 무심한 눈빛으로 마른안주를 바라보며 맥주캔만 반복해서 홀짝일 뿐이었다.

준수의 눈치를 보던 은설이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준수의 의사를 물었다.

“싫어요? 나 휴직하는 거?”

그제야 준수가 무던한 목소리로 답을 했다.

“해.”

“응?”

“해. 휴직.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할 수 있다는데.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 한데 기회가 있으면 써먹어야지.”

“너무 쿨 한 거 아냐? 우리 대출도 갚아야 하고 시험관은 시술비용도 만만찮은데.”

“대출 땜에 허리띠는 좀 더 졸라매야겠지. 시험관 시술비용은, 모자라면 빚 좀 더 내지 뭐. 일억이나 일억천이나.”

“내가 따로 좀 모아둔 게 있어서 일단 빚은 안 내고 진행할 수 있어요.”

“은설 씨 딴 주머니?”

“이럴 때 꺼내 쓰려고 찬 거야. 불만 있어요?”

“아니. 없어. 대신 나도 만들래.”

“소소하게 살짝 작은 주머니면 오케이.”

“아싸.”

“고마워요. 준수 씨가 반대하면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사실 고민 많았어.”

“아예 시작을 안 했을 때야 잘 모르니까 그냥 그런 거 하기 싫다 떼도 부리고 그럴 수 있지. 그치만······."

"그치만?"

"이미 세 번이나 마누라 몸고생, 맘고생하는 거를 다 봤는데 내가 어떻게 반대를 하겠어.”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설득한다고 포기가 될 일이 아닌 걸 알잖아. 나는 그냥 빨리 해볼 거 다 해보고 마누라가 스스로 마음을 정해서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어.”

“나도요. 나도 그러고 싶어.”

“그러려면 시험관 시술을 하고 넘어가긴 해야 할 거라고 생각했어. 대신······.”

“대신 뭐?”

“횟수나 기간은 좀 정해놓고 했으면 좋겠어.”

“아.”

“‘될 때까지 한다’ 그런 건 아니었으면 해.”

“나도 그러고 싶진 않아요.”

“기왕 휴직까지 하는 거 진짜 열심히 딱 1년만 해보고 그만두는 건 어때?”

“글쎄. 이게 기간으로 딱 자를 수 있는 건지 모르겠네."

"······."

준수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눈치였다.

상황을 파악한 은설이 수업에서나 보일 법한 말투와 매무새로 차분히 설명을 이었다.

"몸 상태 따라서 한 번 시술에 몇 개월이 걸릴 수도 있는 거니까. 과배란 예후도 지금과는 차원이 달라요. 복수가 찰 수도 있고, 그럼 바로 이식 못 해."

"아······."

준수가 그제야 그동안 주워 들었던 풍월들의 조각들을 머릿속에서 맞춰가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결정을 내리긴 어려워요. 변수를 무시할 수 없으니까. 나름으론 시험관 시술도 세 번까지만 해보는 걸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 그럼 딱 세 번 만 해보자. 그 뒤론 그냥 하늘에 맡기는 걸로 해요.”

“일단 한번 해보고. 그러고 나서 결정해도 늦진 않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마누라가 해볼 만하니 될 때까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한다 그럴까 봐 그러지.”

“그렇진 않을 거예요. 인공수정만으로도 충분히 힘은 들거든. 시험관 시술이 더 하면 더 하지 덜 하진 않을 테니.”

“에휴, 마누라 고생할 거 생각하니 그것도 걱정이네.”

아마도 앞선 걱정을 하는지 준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상념에 빠져들었다.




“샘, 휴직한 거 아니었어요?”

“휴직했죠.”

“근데 왜 여기서 일하고 있어요?”

“어머, 그러게. 은설샘이 왜 아직 교무실에 있는 거야?”

교무실을 지나가다가 은설을 본 동료교사들 마다 깜짝 놀라 한 마디씩 해댔다.

“아직 2월 29일 이잖아요.”

“그러니까. 진즉에 후임한테 업무 인수인계 하고 끝냈어야 하잖아.”

“그냥 제가 일 마무리하고 들어가는 게 속이 편해서요.”

손가락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바삐 일하고 있는 은설에게 자꾸만 말을 거는 주변의 관심을 보다 못한 김 선생이 은설의 곁을 정리하고 나섰다.

“은설샘 업무 후임이 김유리샘이에요.”

“아······.”

김 선생의 한 마디에 모두가 아직도 업무에서 손을 놓지 못한 은설의 상황을 이해하는 눈치였다.

“이 사람이 모질지를 못해서 아직도 이러고 있다니까요. 애초에 생기부랑 입학이랑 담임업무를 한 사람한테 몰아준 게 잘못이지.”

김 선생이 화가 묻어 나는 목소리로 은설이 일 년 내내 떠안고 있던 업무의 강도에 대해 성토를 했다.

“정말이야?”

다들 놀란 눈으로 교무부장을 노려보자 시선에 부담을 느낀 교무부장이 멋쩍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내가 올해 교무부장이 처음이었잖아. 매년 그런 식으로 업무분장을 했더라고. 올핸 내가 이은설 선생이 맡았던 업무를 다 쪼개 놨어.”

은설을 둘러싼 모두가 한 마디씩 은설의 역성을 드는 와중에도 은설은 업무에만 몰두했다.

어떻게든 오늘 안에 업무를 마쳐야만 내일부터 옳게 휴직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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