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까또.
[쉬니까 좋냐?]
수지였다.
수지의 물음에 은설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돌았다.
은설은 휙 하고 집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휴직 이틀째 날, 바짝 정리해 둔 집은 오전 시간 잠깐의 청소만으로도 내내 단정히 유지되고 있었다.
봄맞이 집단장이라며 새로 단 커튼의 보타닉 무늬는 따뜻한 볕 아래서 싱그럽기까지 해 보였다.
창가로 옮겨 온 작은 탁자 위엔 직접 구워 본 티쿠키와 홍차가 제법 고급스러워 보이는 찻잔과 접시 세트에 담겨, 쌓아둔 두세 권의 책 옆에 놓여 있었다.
멀리 시선을 두면 신혼여행 때 사온 목각쟁반 위에 후숙 중인 열대과일들이 그림처럼 예쁘게 담겨 있는 아일랜드 식탁이 보였다.
찰칵.
찰칵, 찰칵.
은설이 새로 바뀐 집안 풍경 사진 몇 장을 찍어 수지에게 보냈다.
[응. 되게 좋아. 나 요즘 이런 거 하면서 놀아.]
[그런 거 하지 말고 그냥 쉬어라.]
[블로그 같은 데에 나오는 집처럼 꾸며 놓고, 그 집 여자들처럼 우아하게 차 마셔보고 싶었어.]
[그런 거면 소원 풀이는 한 거네. 쉬는 보람이 있구만. 그렇게 좋니?]
[응. 휴직은 개학날까지 며칠 남았나 세어가며 쉬었던 방학과는 차원이 다른 거 같아. 내일이 오는 게 두렵지 않구나.]
[그 기분은 나도 알지. 한 1년까지는 좋아. 나처럼 무한정 쭉 쉬면 쉬는 대로 다시 걱정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지만.]
[왜?]
[다시 일하고 싶다, 나는]
[아. 글쿤.]
[돌아갈 곳 있는 네가 부럽기만 하구나.]
[우리 수지, 능력자인 거 세상이 다 아니 너무 걱정은 안 하련다. 혹시 새롭게 무슨 일을 해볼까 도모하고 있는 중 아님?]
[역시. 이은설이 나를 제일 잘 안다니까. 태국에 괜찮은 물건들이 좀 있어서 쇼핑몰을 해볼까 생각만 하는 중이야, 아직은 그냥 생각 중.]
[오, 부자 되면 맛있는 거 사줘.]
[되기만 하면야, 우리 은설이 호캉스도 막 일주일씩 시켜주고 그러지.]
[야호! 꼭 그렇게 되길 바랄게.]
장단을 맞추면서도 은설은 어쩐지 수지의 계획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언제고 할지도 모르는 임신을 위해 수지는 이제껏 일을 하고 싶어도 참는 눈치였었다.
당분간은 임신 계획을 접은 것인지, 혹시 아예 가족계획 자체를 수정한 것인지 궁금했지만 은설은 수지에게 선뜻 물어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당분간은 그렇게 집에서만 쉴 거야? 쉬는 참에 뭐라도 배우지 그래?]
수지가 먼저 은설의 계획을 물었다.
[아직은 무계획이야. 시간을 정해 놓고 어딜 나가는 거 자체가 싫네. 병원도 안 다니고 있어. 병원 다니면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을 것 같아서.]
[아 그래? 진짜 그냥 쉬고 있구나. 잘 생각했어. 류현준은 뭐래? 너 병원 안 다녀도 뭐라 안 해?]
[뭐 별 말 없던데.]
라고 메시지를 적어 보내 놓고는 은설이 현준에 대한 상념으로 빠져들었다.
별 말이 없지는 않았었다.
현준에게서 종종 안부를 묻는 메시지가 왔다.
[잘 지내고 있어?]
[컨디션은 좀 어때?]
[혹시 병원 옮긴 건가.]
현준의 연락이 평온하게 흐르는 은설의 시간에 자꾸만 파동을 일으켰다.
혼자 보내는 시간들이 길어진 만큼 하루가 더 심심해졌고, 불러내면 당장이라도 달려와 줄 것 같은 현준에게 자꾸만 놀아달라 조르고 싶어졌다.
그 후엔 어김없이 죄 없이 발동한 죄책감과 잘못한 것 없이 실패로 돌아간 세 번의 인공수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은설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쉴 수가 없구나'
[아니.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있어. 마음이 좀 추슬러지면 다시 갈게.]
[그래.]
이후 현준의 연락은 다시 오지 않았다.
마음이 상한 것인지, 의사인 자신의 연락이 부담스러울까 봐 일부러 하지 않는 것인지 헷갈렸지만 은설은 굳이 현준의 생각을 확인하지 않았다.
3월 2일 이후부터는 이기적일 정도로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돌보고 싶었다.
현준도 준수도 모두 열외로 미뤄두고서라도.
은설의 휴직 이후 준수는 유난히 섭섭한 티를 냈다.
실컷 게으름을 부리다가, 또 실컷 집 꾸미기에 열을 올리는 은설의 염두에 준수가 없다는 걸 준수도 눈치를 챈 듯했다.
얼마 전, 함께 볼 영화를 고르면서 준수는 은설에게 평소에는 없던 투정을 부렸다.
“그건 은설 씨 혼자서 낮에 보러 와도 되잖아.”
팝콘의 맛을 고를 때에도,
“난 자주 오지도 못하는데. 내가 먹고 싶은 맛으로 두 개 고르면 안 돼?”
집에 가는 길에도.
“운전수 바꾸자. 이제 운전은 은설 씨가 좀 해요.”
“준수 씨, 왜 그래?”
“내가 뭘?”
“아까부터, 아니 며칠 전부터 계속 나한테 툴툴거리고 있는 거 알아?”
“네가 언제?”
준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투로 반문을 하며 운전석에 몸을 실었다.
은설이 준수를 따라 조수석에 오르며 준수에게 연이어 따져 물었다.
“방금 전에도! 뭐야, 내가 휴직해서 쉬는 게 아니꼬운 것처럼? 집에서 쉬는 주제면서 내가 뭐 준수 씨를 섭섭하게라도 했어?”
그제야 정신을 차린 준수가 서글픈 표정을 하곤 은설에게 대답했다.
“섭섭한 건 아니야. 그냥 부러운 거야.”
그럴 수 있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일단은 내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은설이 마냥 부럽고 질투가 났을 수도 있다고 은설은 생각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감정이었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오롯이 그 쉼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더더욱 부럽고 얄미울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렇지.’
은설은 울컥 차오르는 분노를 누르고 또 눌렀다.
“남자도 난임휴직 같은 거 있었으면 좋겠어.”
준수가 화살의 방향을 바꾸어 툴툴댔다.
“그러게. 정자 질이 나쁜 남자들 같은 경우는 쉬는 게 제일 약이라던데. 그런 사람들은 난임휴직 같은 거 주고 그러는 게 맞을 거야. 준수 씨도 아예 정자 질을 확 떨어뜨려가지고 병휴직이라도 내지 그래?”
은설이 참지 못하고 악담을 해댔다.
“헐. 무슨 그런 소리를 하고 그래.”
“남자도 여자처럼 고용량 호르몬치료 하고, 한 달에 몇 번씩 병원 다니면서 이런저런 시술하고 후유증 견뎌야 하고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난임휴직이란 게 남녀불문하고 생겼을 텐데 말이야.”
“빈정거리지 마. 못된 여자처럼 보여.”
“못되지고 싶어서 그러지.”
“그러지 말아요. 잘못했어요.”
“그러게 왜 건들면 안 되는 걸 건들고 그래요.”
“치······.”
의기소침해진 준수가 말없이 운전을 시작했다.
그가 조금 안쓰러워진 은설이 준수에게 다정히 말을 붙였다.
“쉬는 동안 신랑한테는 내가 잘해 줄게요. 어차피 생활비도 아껴야 하니 외식 줄여야 하고, 내가 장 봐다가 준수 씨가 먹고 싶다는 것 많이 해줄게. 쓰레기 정리하는 것도 열외 시켜주고.”
“정말?”
“응. 갖다가 버리기만 해요.”
“에이. 좋다 말았네. 그것까지 빼주지.”
“무거운 건 노노. 언제가 되었건 간에 혹시라도 내가 임신을 한 상태이면 어떡해.”
“빨리 가족계획이 마무리되어서 은설 씨가 언제고 무거운 걸 막 들어도 되는 때가 왔으면 좋겠어.”
“가족계획이 마무리되어도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거예요.”
“왜?”
“난 애를 안겠지. 짐보다 애가 무거워지면 그땐 아마 허리가 아파서 뭘 못 들 거야.”
“짐꾼의 운명을 못 벗어날 거란 얘기군.”
“받아들여요. 대신 난 우리 집 밥순이잖아. 아님 바꾸든가.”
“그냥 짐돌이를 할게요.”
며칠이 더 지나고, 은설의 배웅과 마중에 익숙해지면서 준수의 투정도 잠잠해졌다.
“돈만 많이 벌 수 있으면 계속 이러고 살고 싶네.”
어깨를 털어주는 은설의 손길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준수가 말했다.
“1년 지나면 어깨 안 털어줘도 되니 얼른 복직하라 그럴걸? 신혼도 다 지났는데 너무 붙어 있잖아, 요즘.”
“그러려나. 어찌 되었든 간에 난 요즘이 그냥 딱 좋아. 병원을 안 다녀서 그런가 은설 씨도 한결 편안해 보이고. 맨날 이렀으면 좋겠어.”
준수에겐 허전함이 없는 듯했다.
은설은 여기에 딱 하나 더,
별도 닮고 꽃도 닮은 어여쁘고 어린 존재 하나에 대한 생각이 자꾸만 더 간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