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무언가 어색한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집안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지를 간략히 설명해 주고 수지가 먼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수지는 넓은 방 하나를 온전히 게스트만을 위한 룸으로 만들어 두고 있었다.

방 안의 선반 하나에는 그동안 이 방을 베이스캠프 삼아 태국 여행을 즐겼던 손님들이 남긴 자그마한 장식품들이며 쪽지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은설과 준수 말고도 이 집에 머물다 간 손님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여기다가 뭘 좀 남겨야 될 것 같은 의무감이 드는데.”

은설이 나직한 목소리로 마음속에 적립된 부담에 대해 읊조렸다.

먼저 샤워를 하고 온 준수가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며 은설의 혼잣말 아닌 혼잣말에 대꾸를 해주었다.

“집 줄여서 이사 간다는데 짐 늘려주지 마요. 차라리 수지 씨한테 맛있는 간식을 하나 더 사줘.”

“아니야. 내 흔적을 남기고 싶어. 손가락만 한 장식품이나 기념품 정도면 짐스럽지 않겠지. 나중에 시장 구경 가면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준수와 바통 터치하여 욕실로 들어선 은설은 수지의 욕실 살림들을 둘러보았다.

수지의 성격처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욕실에는 꼭 있어야 할 것들 몇 가지만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흐음, 뭔가 어색한데.”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거실을 한 번 더 돌아본 은설은 욕실에서와 비슷한 말을 자기도 모르게 또 중얼거렸다.

“뭐지? 이 허전한 느낌······.”




은설이 방으로 돌아왔을 때 여독에 지친 준수는 까무룩 잠이 들려하고 있었다.

정말로 단잠에 들기 전 잽싸게 준수의 옆으로 뛰어든 은설이 다짜고짜 준수에게 묻기부터 했다.

“준수 씨 욕실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 들지 않았어요? 아니면 거실에서라도.”

“무슨 이상한 느낌? 귀신 나올 것처럼 싸하고 그렇진 않던데.”

“아니, 그런 거 말고.”

“그럼 뭐? 우리 집보다 인테리어가 훨씬 세련되고 예쁘구나 이런 느낌 받은 건 이상한 게 아니잖아.”

“그것도 말고.”

“그럼 뭐?”

“하, 나도 그걸 잘 모르겠네. 뭐라고 딱 집어서 말은 안 나오는데 뭔가 좀 어색하고 이상해.”

“남의 집이라 그럴 거야. ‘펜션이다’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질 거예요. 참, 내일 아침밥 먹으러 가는 길에 수지 씨한테 마트 좀 들르자고 그래요. 면도기 챙겨 오는 걸 깜박했어.”

“수지 남편 거 욕실에 있는 것 같던데. 빌려 쓰면 안 되나?”

“슬쩍 봤는데 녹이 많이 슬어 있더라고.”

“주로 안방에 딸린 욕실을 써서 그런가?”

“좋은 거던데.”




다음 날 오전, 수지를 따라나선 통로 거리는 은설의 예상보다 훨씬 고급스러웠다.

인도에는 베어내도 하루만 지나면 또 두 뼘은 자라 오를 것만 같은 아열대의 잡초들이 보도블록 사이사이로 자라올라 있었다.

"잡초 말고는 서울의 부유한 어느 동넷길 한 자락을 그대로 떼어온 것만 같아."

은설이 통로 거리 곳곳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세련된 차림의 태국 사람들과 외국인들이 절반쯤 섞인 브런치레스토랑의 풍경에선 조금 위축이 되기까지 했다.

딱 봐도 관광객 티가 나는 자신의 차림새가 TPO를 맞추지 못한 것만 같았으므로.

"야 좀 창피하다, 나."

"이쁘게 차려입은 사람들만 보니까 그렇지. 자, 저 옆에. 그 옆옆에. 반바지에 티셔츠 입은 사람들 있잖아. 다 관광객이야. 너랑 또옥 같아 보이니까 걱정하지 마."

수지가 장난스레 은설을 타박했다.

음식들을 거의 다 먹어갈 무렵 예약석인 듯 비워져 있던 은설의 맞은편 자리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와 앉았다.

흘끔 뒤를 돌아본 수지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풀어놓을 것처럼 상체를 조금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저쪽 테이블 가운데 앉아 있는 아주머니 있지? 아마도 왕족일 거야.”

“어떻게 알아?”

은설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수지에게 되물었다.

“올림머리가 아주. 아주. 아주. 높고 풍성하니까. 여긴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머리를 높게 올린다더라고.”

“정말?”

“그런 편 이래. 젊은 여자들이야 안 그러겠지만. 태국도 하이소사이어티들만의 리그가 발달해 있어. 왕족이 있는 나라라 그런지, 한국보다 조금 더 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러게 왕족이 있으면 귀족도 있겠지. 영국처럼."

"응. 그 사람들하고 서민들하고는 동선 자체가 달라.”

“그럼 저 아주머니랑 같은 레스토랑에 다니는 너도 하이소사이어티 멤버인 거니?”

“난 그냥 ‘외국인’이지. 그것도 절친이 한국에서 놀러 온 특별한 날을 맞은.”

“하하, 많이 고맙다.”

은설과 수지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준수가 무심히 한마디를 거들었다.

“한국도 다를 바 없죠, 뭐. 평범한 사람들이 어쩌다 한 번씩 큰맘 먹고 잘 사는 사람들 노는 곳에 가기도 하느냐, 아예 발도 잘 들이지 않느냐 뭐 그 차이 아니겠어요?”

준수의 말을 들으며 은설은 현준을 떠올렸다.

은설의 입장에선 이미 하이소사이어티 멤버가 되어버린 현준이었다.

현준이 데리고 가준 곳들에선 대부분의 시간들이 즐겁고 흥미로웠지만, 왠지 별세계로 ‘초대’를 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었다.

수지의 ‘하이소사이어티’ 이야기에 은설은 현준과 자신에게도 ‘확연한 동선의 차이’란 것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쩌면 그래서 난임병원 진료실 이외엔 우연히라도 마주치는 일이 없었는지도 몰랐다.

이코노미석을 타는 사람들과 비즈니스석이나 퍼스트클래스석에 앉는 사람들이 한 비행기를 타면서도 마주치기 어려운 것처럼.

‘근데 대체 태국엔 왜 온 걸까? 어제 그 뒤통수······. 현준이가 분명했는데.”




카오산로드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물을 뿌리며 서로를 축원하는 축제의식은 방콕의 골목 어디에서나 현재진행형이었고, 짓궂은 태국의 청춘들은 어리바리한 외국인들에게 물총세례를 퍼붓기 일쑤였다.

“내가 생각이 짧았어. 젖어도 되는 것들만 생각하다 보니 물 맞을 준비를 너무 티 나게 해 버렸네. 다들 나만 노리고 있는 거 같아.”

은설은 수영복 위에 햇빛만 받으면 바싹바싹 마를 재질의 얇은 카디건과 비닐백을 들고 있었다.

창문 없는 버스 문간 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은설이 기어이 양동이로 퍼붓는 물세를 맞고 말았고, 준수는 그 모습을 보고 웃겨 죽겠다는 듯 키득댔다.

은설이 반사적으로 준수를 노려보았다.

“얼굴에는 안 뿌리는 게 불문율인데 너무 짓궂었네, 저 사람이.”

수지가 얼른 은설의 역성을 들어주듯 한 소리를 하며 둘 사이를 중재했다.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물이래요. 기쁜 마음으로 맞도록 해요.”

준수가 달래주듯이 놀리는 말을 했다.

“정화는 나보다 준수 씨가 더 되어야 하는데. 몸에 나쁜 것만 먹고 운동도 안 하는 스트레스덩어리잖아요, 요새.”

뾰루퉁히 쏘아대면서도 은설 근간의 자신을 반성했다.

스트레스는 확연히 줄었지만, 스트레스를 줄이겠단 명목으로 커피며 맥주, 기름진 음식 따위의 것들을 너무 많이 먹으며 살았었다.

은설에게도 정화의 작업이 필요하긴 했다.

오래 걸리지 않아 도착한 카오산로드는 이미 신나는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길을 따라 여기저기서 축제다운 음악이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아무 음악에나 몸을 맡기고 흔들며 연신 물총을 쏘아댔다.

구석진 곳 여기저기에는 빈 물총에 물을 채워주는 아주머니들이 포진해 있었다.

준수는 다시 20대 중반으로 돌아간 것처럼 흥이 올라 카오산로드 한편에 마련된 디제이부스 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은설과 수지는 춤을 추는 무리들 뒤켠에 서서 간간이 보이는 준수의 머리통을 확인했다.

“넌 안 춰?”

이미 여러 번 겪어 본 자의 지루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수지가 은설에게 물었다.

“별로. 힘들어. 종일 놀아야 하는데 체력 안배를 잘해야지. 결혼한 지 3년 넘어가니까 적당히 각자 노는 것도 괜찮아, 이제. 넌 안 그랬어? 아직도 달달해?”

은설의 말에 수지는 빙긋 웃는 웃음을 짧게 보였다.

그리곤 인파를 헤치며 준수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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